
후반 추가시간 1분이 흘러갈 즈음 우리측 지역에서 포르투갈 코너킥 때 공중볼 다툼을 하던 포르투갈 수비수 페페가 헤딩을 하였으나 그 공은 역습을 노리던 손흥민에게 굴러가고 말았습니다. 손흥민은 그 공을 몰고 우리측 지역부터 포르투갈 문전을 향해 그대로 단독 질주합니다. 잘만 하면 골키퍼와 1:1대로 마주치는 상황까지 만들 수 있습니다. 손흥민은 70m를 달려 페널티 에어라인까지 다다랐습니다. 동시에 포르투갈 선수들도 소위 ‘ㅈ나게’ 쫓아가서 손흥민 주위로 몰려듭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손흥민을 에워쌉니다. 앞에 3명, 뒤로 4명 총 7명의 포르투갈 수비수들이 손흥민을 포위했습니다. 마치 연약하기 그지 없는, 그러나 뛰는 데는 누구보다 뒤지지 않는 아프리카 사슴인 임팔라 한 마리를 포위한 사자 무리 같았습니다.
이제 손흥민은 골키퍼와 단독찬스를 만들지 못하고 완전히 갇히고 말았습니다. 공을 몰고 빠져나갈 틈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울돌목에서 이순신의 배 12척이 일본 구루지마의 배 300척과 맞서는 상황과 같습니다. 어마어마한 압박감과 공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동시에 몰려옵니다. 포르투갈 수비수 페페가 손흥민을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립니다. 나머지 6명도 침을 흘립니다. 섬뜩합니다.
고립된 손흥민, 찬스가 물건너 간듯 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절망의 순간, 한 줄기 빛이 보였습니다. 왼쪽에서 황희찬이 달려오는 것을 손흥민은 마스크 사이로 희미하게 보았던 것이었습니다. 희망의 빛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손흥민은 7명의 포르투갈 선수들의 동작과 자세를 포착합니다. 커다란 구멍을 발견한 것입니다. 넓게 벌린 다리였습니다. 제주어로 ‘가달’(제주어로 사람의 다리를 말합니다)이라고 부릅니다. 골을 넣기 위해서는 그곳이 공을 보낼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손흥민은 그 ‘가달’ 사이로 왼쪽에서 달려오는 황희찬을 향해 알맞은 속도로 보냈고, 그러니까 패스했고, 공은 황희찬의 발끝에 달라붙었습니다. 골 에어라인에서 황희찬은 골키퍼와 단독으로 마주쳤습니다. 골문은 아주 넓어 보였습니다. 황희찬은 공을 왼쪽 구석을 향해 힘차게 찼고, 그러니까 슛팅했고, 공은 포르투갈의 골문 구석에 그대로 꽂혔습니다. 축구에서 이것을 골인이라고 합니다. 그래, 골인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기적적인 골이 들어갔을 때 골!골!골!골!골!골!골!골!골!골!이라고 최소 10번 이상 외칩니다. 세상이 뒤집어졌습니다. 중세시대 한 때 대항해시대를 이끌며 세계를 주름잡던 이베리아 반도의 제국, 그 포르투갈이 몰락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제국이 몰락’하는데는 단 13초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어느 신문은 이 상황을 두고 “13초의 역습”이라고 했습니다. 손흥민은 13초 만에 ‘도하의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이 2:1 역전하고, 이대로 가면 16강에 올라갑니다. 그때까지 우루과이가 가나를 2:0으로 이기고 있었으므로 다득점에서 우리가 앞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5분입니다. 추가 시간을 너무 많이 준 것이 아닌지 원망스러웠습니다. 이것에 대하여 SBS 해설 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축구 스타 이승우는, 1:1 동점 상황에서 추가 시간을 6분밖에 주지 않자 “아, 추가 시간이 너무 짧네요. 다른 경기는 10분도 주던데”하며 아쉬워했는데, 우리가 역전하자 이제는 “아, 추가 시간을 너무 많이 준 거 아닙니까!!” 라며 그때마다 말이 바뀌는 우리 안의 복잡하고 괴벽스런 인간 본성을 드러냅니다. 그럼에도 중계방송을 보는 많은 사람들은 이 조변석개朝變夕改 같은 이승우의 말에 더 기분 좋아합니다. 이승우 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축구팬들은 다 그랬으니까요!!
시간은 느리게 아주 느리게 흘러갔고, 우루과이가 가나를 2:0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쪽 경기가 먼저 끝났습니다. 우리 나라 선수들은 기뻐할 틈도 없이 저쪽의 상황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저쪽은 8분이 남았습니다. 우루과이 축구 스타 수아레스가 울듯한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30초 마다 시간을 잽니다. 가나가 한 골만 넣어주길 바랬습니다. 찬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나는 골을 넣지 못했고, 우르과이도 찬스를 잡아 슛팅을 날렸으나 번번히 빗나갑니다. 다시 30초가 흘렀습니다. 우루과이 공격수 카바니가 페널티 지역에서 가나 선수의 발에 넘어집니다. 그러나 심판은 휘슬을 불지 않았습니다. 정당한 몸싸움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가슴이 ‘자락 털어지고 금착헌’ 순간이었습니다. 다시 30초가 흘렀습니다. 양팀은 공방을 주고 받았지만 지쳤는지 서로 위험한 상황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다시 30초씩 13번 흘러 시간은 8분이 지나 이제 곧 경기가 끝날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우루과이가 가나의 페널티 지역 인근에서 반칙을 얻어냅니다. 거리상 30m 조금 안되었습니다. 메시나 호날두, 우리 나라의 이강인이 차면 골을 넣을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우루과이에겐 그런 선수가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래도 모릅니다. 정말 마지막 순간입니다. 우루과이가 가나 선수의 벽을 넘겨 슛팅을 했습니다. 그러나 슛은 약했습니다. 우루과이가 가나의 골문을 향해 날려보낸 공은, 그 연분홍 빛깔의 공인구 ‘릴라’는 연인의 품에 안기듯 수줍게 가나 골키퍼의 가슴에 살포시 안겼습니다. 동시에, 심판이 종료 휘슬을 불었습니다.
*이 글은 2022년 월드컵 예선 마지막 경기 관전평을 대학교 밴드에 올린 글을 다시 이곳으로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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