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de


Merde(너, 똥)



불유쾌함을 유쾌함으로 바꾸는 기쁨의 상징
몸과 마음이 깃들어 있는 물질로서 하나의 정신...냄새가 아닌 하나의 고매한 관념
모멸과 파열을 느끼게 만드는 총칼(허위의식)을 대신하는 하나의 숭고한 언어



1815년 6월 18일 워털루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대세는 기울었다. 프랑스 나뽈레옹의 패배가 확실시 되고 있는 가운데 나뽈레옹 근위대는 하나의 방진(方陣)을 최후 진지로 구축하고 흐르는 물속의 바위처럼 패군의 흐름 속에서 밤이 될 때까지 버티고 있었다. 그 방진은 ‘깡브론느’라는 한 이름 없는 장교가 지휘하고 있었다. 그들은 영국군에 완전히 포위되었다. 밤이 오고 죽음도 더불어 왔다. 고립되고 단절되어 저마다 죽음을 기다릴 뿐이었다. 몸서리쳐지는 단말마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고양이가 쥐를 가둬놓고 마지막 발톱을 세우고 있다. 영국군이 포탄을 장전하였다. 밤의 적막이 깨졌다. 밤의 어둠 속에 번뜩이는 호랑이 눈처럼 영국군 포대의 모든 도화선이 대포로 다가갔다. 죽음이 아른거린다. 그러나 이 최후의 순간, 한 영국군 장교가 승리에 도취되어,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큰소리로 외쳤다.

“용감한 프랑스 병사들이여, 항복하라!”

마지막 근위대의 지휘자 깡브론느가 장엄한 죽음과 비참함 앞에서 대답했다.

“Merde!”(너, 똥)

승리자 없는 승리 앞에 절망한 그는, 깡브론느는 감연히 일어섰다. 그는 칼을 찾듯이 말을 찾은 것이다. 그것은 포성을 분쇄하는 숭고함, 으르렁거리는 뇌성에 던지는 모멸이다. 파열을 느끼게 한다. 격한 경멸로 가슴이 터지는 것이며, 천국에서 하느님을 만난 단테처럼 하염없이 충만된 고민이 폭발한 것이다. 그는 패배 뒤에 오는 승리의 거대함에 압도되지만, 그것의 허망함을 안다. 그는 적의 승리에 침을 뱉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수와 힘과 물량에 압도되면서 그는 마음속에서 하나의 말, “Merde!”, 똥을 발견한 것이다.

깡브론느는, 이 이름 없는 전사는, 파국 속에 가슴을 누르는 하나의 거짓, 즉 적들이 그에게 던진 뼈저린 조롱, ‘항복과 죽음’에 심연의 불꽃처럼 격노했다. ‘Merde, 즉 똥은 ‘항복하라’는 죽음의 비참한 말에 “메롱!”하며 던지는 유쾌한 엄숙함이자 비장함이다. ‘똥!’에 영국군은 똥 씹은 얼굴이 되었다. 영국군은 약이 올랐다. 패배자의 굴욕감을 느낀 영국군 장교가 소리쳤다. “쏴라!” 대포는 불을 뿜었고, 언덕은 진동하고, 포문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산탄을 토하였다. 뭉게뭉게 솟아오른 화약연기가 떠오르는 달빛을 받아 희뿌옇게 퍼져 올랐다. 그리고 그 연기가 흩어진 뒤 방진은 사라졌다. 나뽈레옹의 근위대는 모두 죽었다.1) 

이제 시대와 배경은 바뀌어 병자년 조선시대로 넘어왔다. 이른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이다. 백척간두에 처한 조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역시나 밤의 어둠처럼 두려움만이 있을 뿐이다. 항아리에 갇힌 물고기였다. 성 밖은 청군이 호시탐탐 성 안으로 기어 올라오려고 하고 있고, 성안에서는 강화조약이라는 기만의 항복과 결사항전의 두 갈래 길에서 왕(인조)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던 중 하루는 왕이 예조 판서 김상헌(결사항전파)에게 성 안 민촌의 동태를 살피는 일을 맡겼고, 그럴 때마다 김상헌은 서날쇠라는 사람을 눈여겨보았다. 서날쇠의 집 마당은 깔끔했고, 대장간은 단정했다. 서날쇠는 뼈가 굵었고 오금이 깊었다. 홑겹 무명 적삼을 입고도 추운 기색이 없었다. 서날쇠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루는 서날쇠의 집 뒤란에 두 줄로 묻힌 장독들을 가리키며 김상헌이 물었다.

“김장이냐?”
“아닙니다. 대감께서 아실 일이 아니옵니다.”
“말해라. 무엇이냐?”
“똥을 달래서 약을 만드는 중입니다.” “지력을 돋우고 벌레를 잡는 데 쓰이옵니다.”
“열어봐라.”

서날쇠가 장독 뚜껑을 열었다. 날이 선 악취가 김상헌의 골을 쑤셨다. 창끝에서 버려진 냄새였다. 똥 건더기는 가라앉아서 보이지 않았고, 맑은 국물 가장자리에 앙금이 내려 있었다. 국물에서 푸른 미나리색이 비치었다.

김상헌은 푸른 똥국물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적들이 다가 오지 않아 성첩이 고요한 날에도 군량은 똥이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적병이 넘어 들어와서 성이 깨지는 날이 새벽인지 저녁인지 모르겠다. 그 상념이 푸른 똥국물 위에 어른거린다. 군량이 흩어져 똥이 되어도 똥을 끌어 모아 군량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었다.

하여, 김상헌은 문득 생각했다. 성안의 종친과 사대부, 군병과 백성들의 똥을 모두 거두어 성첩에 쟁여 놓았다가 적병이 성뿌리에 붙어 기어오를 때 바가지로 퍼서 끼얹으면 적병들은 물러설 것이고, 요동에서 남한산성까지 먼 길을 걸어와서 여기저기 찢기고 부르튼 적병들이 똥물을 맞으면 상처가 곪고 썩어서 움직일 수 없을 것이라고. 이른바 똥 폭탄이다. 하지만 “똥을 성첩에 쟁여 놓은들 삭지 않은 날똥이 추위에 얼어붙어서 적병들이 성벽을 기어오를 때 바가지로 퍼서 끼얹을 수 없고, 곡괭이로 찍어서 똥얼음을 던져야 하겠는데, 얼음을 던지느니 돌멩이만 같지 못할 것이옵니다.” 서날쇠가 말했다. 김상헌은 “그렇겠구나... 그렇겠어.”라고 물러섰다.

김상헌은 똥국물에 시선을 박은 채 중얼거렸다. “사물은 몸에 깃들고 마음은 일에 깃든다. 마음은 몸의 터전이고 몸은 마음의 집이니, 일과 몸과 마음은 더불어 사귀며 다투지 않는다.” 김상헌은 서날쇠에게서 일과 사물이 깃든살아 있는 몸을 보는 듯했다.2)

‘Merde’, 즉 똥은 몸의 찌꺼기가 아닌 하나의 언어이고 촌철살인의 무기로서 불유쾌함을 유쾌함으로 바꾸는 기쁨의 상징이다. 김상헌이 서날쇠로부터 느끼는, 몸과 마음이 깃들어 있는 물질로서 하나의 정신이다. 창자(대장)끝의 냄새가 아닌 하나의 고매한 관념이다. 그러므로 똥은 싸움에서 압도된 물리력(논리)에 대항하며 던지는 모멸과 파열을 느끼게 하는 것이고 격한 경멸 -“너, 똥 굵다”- 로 가슴 터지게 만드는 총칼(허위의식)을 대신하는 하나의 숭고한 언어다. Merde, 즉 똥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 나중에 쓸 일이 있으니 반드시 지정된 장소에 싸라!!

다시 시대와 배경은 조선 연산군 때이다. 말 한마디에 유배가고 사약 받고 능지처참 당하는 일이 일상의 돼버린 시대다. 교리 이장곤이라는 사람도 그중 하나다. 그는 연산군이 ‘원수는 원수로 갚아야 하는 것이 맞지’라는 질문에 ‘임금은 덕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올바른 말을 했다가 임금의 심사를 뒤틀리게 한 죄로 거제도로 유배당했다.

하지만 이교리는 유배 중 사약 내린 것을 낌새채어 도망하기로 마음먹고 주인집의 배려로 천리길 함경도로 내달음 쳤다. 먹지도 못하고 관군을 피해 산길로 숲길로 돌아다녔고, 그런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도망 다니느라 얼마나 굶었는지 기운은 빠져 정신은 아롱아롱 보이는 물건은 모두 똑똑치 아니하였다. 그러던 중 멀지 아니한 곳에 흘러가는 물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그 편으로 기어갔다. 얼마 아니 가서 물컹하고 손에 잡히는 것이 있었다.
“밥이다!”
그가 먹으려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똥이었다. 보리밥이 채 다 삭지 아니한 똥이다. 그는 낙심하고 시냇가로 기어와서 물을 움켜 마셨다.

이교리는 물을 마신 까닭에 목은 타지 아니하나 오장이 댕기기는 참을 수 없어 아까 밥으로 생각했던 것을 다시 한 번 가보려고 간신히 일어나 비척거리며 걸어갔다. 가서 보니 똥은 똥이나 보리쌀알이 그대로 많이 있다. 그는 이것저것을 생각할 것도 없이 손으로 움키어가지고 도로 시냇가로 나와서 보리쌀알을 물에 일어 골라서 입에 넣어 목으로 넘겼다.

그 뒤에야 그는 눈에 보이는 물건이 똑똑하여질 뿐이 아니라 마음은 천리길도 한숨에 달려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3)

똥은 밥이다. 우리 몸을 건강하게 유지시켜 준다. 몸과 마음은 순환의 이익을 위해 자연과 하나로 깃들여진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이란 하나도 없다.(끝)

주)1)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에서 인용 편집
2)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서 인용 편집
3)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서 인용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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