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의 맞대응 전략으로서 협력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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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캐나다 인이 도보 여행 중이었다. 그들은 회색 곰 한 마리가 자신들의 뒤를 빠르게 쫓아오는 모습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두 사람은 즉시 달리기 시작했고 곰은 그 뒤를 맹렬히 추격했다. 갑자기 둘 중 한 사람이 멈춰 섰다. 그는 배낭을 미친 듯이 뒤지더니 운동화를 꺼내들었다. 놀란 친구가 헐떡이며 말했다. “그 운동화가 곰보다 빨리 달리도록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는 “맞아. 하지만 이 운동화가 너보다 빨리 달리도록 도와줄 거야.”라고 대답했다1)

이 장면을 보면서 생각나는 것은 지금 대恨민국의 2030 세대들의 행동이다. 남의 불행에 아랑곳 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이익에만 몰두하는 매우 ‘이기적인’ 생존 전략말이다. 물론 저 젋은이는 친구의 불행을 바라지 않는다. 친구가 죽어야 자기가 살아남는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살기 위해 최고의 생존전략을 생각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 즉 남을 이해하지 않는 자신만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 뿐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대恨민국 2030 세대들을 비난할 수 없다. ‘남을 이해하지 않는 능력’은 지금 대恨민국 2030세대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안정화된 적응 전략’이기 때문이다. 반면 현재 대恨민국 사회에서 협력의 전략은 남에게 착취만 당하고 몰락을 재촉할 뿐이다.

그러나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남을 이해하지 않는 능력’(이기주의)과 협력(이타주의)은 생물학적 본성의 한 부분으로 진화해온 적응 전략이라는 점에서 때때로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 생존 전략인가라는 문제에 직면하곤 한다.

164년 전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 에서 이 세상의 모든 생물체들은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35억 년 전 어느날 우연히 발생한 어떤 분자물질로부터) 진화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진화론이고 이 가설은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그 진화의 ‘분자물질’이 DNA임을 밝혀냄으로써 과학적 사실로 입증되었다.

생명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주변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한다. 진화는 돌연변이를 일으킨 어떤 유기체의 어떤 특성이 현재의 주변 환경에 더 적합하고, 이런 특성이 생존과 번식률의 차이, 혹은 선택을 통해 다음 세대에 우세하게 나타나면서 일어난다. 진화의 메커니즘은 아주 긴 시간 동안 걸쳐 축적된 변화들에 의해 설계된 각각의 기능들이 주변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선택되어지는 이른바 ‘자연선택’이다. “시간이 흐르는 중에 유기체들은 그 환경에서의 생존과 번식에 적합한 설계를 얻는다.” 말하자면 유기체의 각 기관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해온 ‘적응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더 커지거나, 더 빨라지거나, 독성이 더 강해지거나, 날카로운 이빨과 손발톱이 생기거나, 냄새와 소리에 더 민감해지거나, 더 높고 멀리 날거나, 우아한 날개와 꼬리와 든든한 뿔로 건강미를 과시하거나, 뇌를 발달시켜 더 영리해지거나 등 생존과 번식을 위해 각자에게 필요한 기능들이 설계되고 진화한다. “진화는 수단이 아니라 적응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자연선택될 뿐이다.”2)

‘축적된 변화들에 의해 설계된 기능’ 중 우리의 몸과 마음도 적응의 결과로 자연선택되어 진화하였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자연선택이 거둔 승리의 유산”이다.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이어야 하고 교활해야 하고 때론 배신도 불사하여야만 했다. 자연선택이 선호하는 ‘자’는 “공동체의 공공성을 위해 이빨과 발톱을 포기”하는 자들이 아니다.3) “나약함에 너그럽지 못하고, 고통에 무관심하며, 강한 것, 건강한 것을 선호한다.” 그렇게 선택된 유기체들은 다른 개체들을 돌보거나 배려하지 않고 자기희생 없이 경쟁에 몰두하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 결국 생존투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많은 자원을 획득하고 건강한 배우자를 얻어 번식에 성공하고 자신과 똑같은 복제품(유전자)을 세대를 거치며 후손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선택이 선호하는 이기성의 승리를 위해 ‘남을 이해하지 않는 능력’으로 각자도생하는 사회가 바로 지금의 대恨민국이다. 경쟁하는 이기적 개인들만 가득한, 중앙권위체가 사라진 원시 "자연상태”의 정글과 같은 대恨민국, 그래서 이곳에서의 삶은 “외롭고, 누추하고, 역겹고, 거칠고, 궁핍하다.” 4)

그럼에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에게 “환경의 일부”가 된다는 점, 수많은 세대를 거쳐 온 시간 여행에서 “몸체를 공유”하고,5) 서로 같이 존재하며 서로 의지했다.

토양식생, 세균과 그 숙주, 동물과 식물들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 꿀벌과 식물의 상생, 포식자의 존재를 경고하고, 음식을 나누며, 숙주가 되어준 우리 몸에 고마움을 느낀 장내 세균들은 외부의 바이러스 침입을 막아 면역력을 키워주고, 문화를 만들어 고상한 영혼을 갖춘 문명화된 방식으로 행동하는 ‘어떤 동물’은 유전율을 높이기 위해 친족에게 희생하고, 동생을 보살피고, 양육하고, 서로에게 없는 것을 교환함으로써 호감을 얻고, 공동체를 위해 충실히 일하며, 흔히들 너그러운 행동이라고 말하는 도덕성의 귀감을 보여준다.6)

우리는 이러한 행동을 호혜적 이타주의라고 부른다. 즉, 서로 협력하여 보상받고 따라서 서로의 이익이 되며 결국 자신의 생존율과 번식률을 높이는 상호 호혜성에 입각한 행동을 말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의 모든 일’은 독립적이지 않고 모두 “협력사업”7)이기 때문이다. '유전자가 독립적이거나 서로 구분되지 않고 다른 몇몇 유전자와 더불어 활동하며 여러 종류의 단백질 발현에 관여하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인류의 입장에서 '식량이 줄고 인구가 증가하여 집단끼리 경쟁이 인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에 선택압으로 작용하여 더 협력적인 생활방식, 예컨대 수렵을 위한 협력, 집단 방어를 위해' 자연선택은 ‘생존전략’으로서 협력을 선호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어느 개체에게나 최선책은 사리사욕의 추구이고 이기성은 상호 배신을 낳으므로 협력은 퇴보할 수 있고, 이런 비관적 상황에서는 늘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배신자’가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따라서 협력은, 이러한 배신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자연선택될 확률이 높아지거나 아니면 ‘퇴보’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입장에서, 배신의 행동에 어떻게 대응할 때 협력이 선호되었는가?

이것은 협력이 진화하는 작동 방식을 말하는 것인데 결론부터 말하면 배신에 대한 대응은 처벌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엑셀로드가 이것을 밝혀냈다.

로버트 엑셀로드는 『협력의 진화』 (이경식 옮김, 시스테마, 1984)라는 책에서 그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론을 이용하여 배신을 처벌함으로써 협력이 진화하는 작동방식을 보여줬다.

이 책에서 로버트 엑셀로드는 죄수의 딜레마라는 게임 모형을 기반으로 만든 맛대응 전략Tit fot Tat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최적의 생존전략을 찾았는데 ‘배신-앙갚음-용서-협력’의 순환적 과정을 거치면서 배신보다 협력의 전략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왔음을 보여줬다.

게임의 횟수에 따라 배신(협력)과 협력(배신), 배신과 배신 각각의 선택에서 얻은 점수의 합계를 말하는 것인데 배신보다 협력할 때 높은 점수를 얻었다는 것이다.(구체적인 선택 상황에 따른 점수 분포를 알고 싶으면 책을 보라)

그러나 처음에는 배신의 전략이 우세했다. ‘일회성 죄수의 딜레마’ 게임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회성 게임은 두 개체의 상호작용이 무작위적으로 일어나고 반복되지 않으며 다시는 서로 거래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낯선자에게 어떻게 호감을 갖을 수 있겠는가!

이후 횟수가 정해져 있지 않은 무수히 ’반복되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경험했던 대부분의 사회적 상호작용은 매번 다른 낯선 사람과의 관계보다는 같은 집단에 속한 사람들과 여러 번 반복적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한 개체가 상대를 알아보고 이전 만남의 결과를 기억한다면, 협력이나 배신할 가능성을 결정하기 위해 여태까지 상호작용의 내력을 참조할 수 있다. 특히 인간은 기억 용량이 커짐에 따라, 이전의 상호작용을 기억할 수 있고 그것을 근거로 이전에 협력한 상대에게는 보상을 주고 배신한 상대에게는 처벌로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8)

이러한 이유로 맛대응 전략이 위력을 발휘했다. 맛대응 전략은 “처음에는 협력하고, 이후에는 먼젓번에 상대가 했던 행동을 모방”하는 것이다. 무조건 협력하지 않는다. 먼저 배신하지 않고, 만약 상대가 배신하면 다음 만남에서 배신으로 앙갚음함으로써 상대가 배신하지 못하게 한다. 이후 배신자를 용서하며 협력을 재개한다. 협력은 보상하고, 앙갚음은 지속적인 배신을 막으며, 용서는 비난과 맞대응의 다툼을 방지하는 것이 협력 전략의 특징이다. 이처럼 무조건 협력하는 것보다 배신에 대한 응징의 맛대응 전략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진화 과정에서 점차 맛대응 전략을 선택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맛대응 전략은 배신자에게 일종의 처벌을 가하는 것이다. 배신자를 처벌하는 전략은 분노, 복수심으로 표현된다. 우리는 이것을 ‘이타적 처벌’이라고 부르는데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한 상대방을 처벌하는 것을 말한다. 이 분노와 복수의 감정은 유전자가 진화 과정에서 이타적 처벌을 장려하기 위해 뇌에 장착한 모듈(회로)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궁극의 목적은 협력을 극대화하고 이익을 얻음으로써 자신의 생존과 번식 전략을 높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9)

이리하여 맛대응 전략은 개체군 집단내에서 일정 빈도를 초과하게 되고 ‘진화적으로 안정된 생존전략’이 된다. 이기성에서 벗어나 굳이 ‘남을 이해하지 않는 자기만의 능력’이 아닌 상호 협력함으로써 보상을 얻는 소위 서로 돕는 논제로섬(Non-zero-sum) 게임10)이 된다. 이제부터는 배신해서 이익을 얻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협력의 진화 메커니즘은 배신하면 처벌로 응징하고, 이후 용서하고, 다시 협력하는 순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진화에서 하나의 적응 전략이 다음 세대에 나타날 빈도는 앞 세대에서의 성공에 비례한다. 따라서 ‘맛대응 전략’ 이 성공적일수록, 동일한 전략을 쓰는 개체끼리 마주칠 확률이 더 커지며 상호 협력을 통해 보상을 얻을 가능성도 더 커진다. 이것이 바로 협력이 진화한 이유다.11)

‘협력이론’은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시사한다. 바로 배신에 대한 응징의 가치다. ‘맛대응 전략’은 도발에 즉각 응징하여 실제로 더 좋은 점수를 얻었음을 보여주었다. 만일 상대방이 주제넘게 배신했는데도 반응을 자제한다면, 상대방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낼 위험이 있다. 배신에 대한 응징을 오래 내버려둘수록 상대는 배신하는 게 이득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양상이 굳어질수록 나중에 깨뜨리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배신에 대한 응징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의미다.12)

이 시사점은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프랑스 공화국은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는 알베르 카뮈의 정의론과 부합한다.

카뮈의 이 말은 단순한 윤리적 외침이 아니라, 정의의 실천과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철학적 성찰이다. 정의란 단순히 처벌이 아니라, 잘못된 과거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그것에 상응하는 처벌을 포함한다.

그렇다면 일제 이후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 협력이론을 어떻게 적용해 볼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과거의 불의가 제대로 단죄되지 못했던 경우가 반복되었다. 일제강점기 협력자(소위 '친일파')에 대한 처벌은 미진했고, 오히려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일부는 해방 이후 주요 권력기반의 일원이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4.19 혁명이라는 민중의 응징 속에 하야했으나, 사법적 단죄 없이 해외에서 생을 마감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장기 독재 체제를 구축했지만, 제도적 책임 추궁 이전에 암살로 죽음을 맞았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군부 쿠데타와 5.18 등 중대 범죄에 대해 뒤늦은 형사 책임을 받았지만, 정치적 타협 속에 사면되었다. 이처럼 협력의 파괴(배신)에 따른 응징은 때때로 지연되거나 생략되었고, 용서는 사회적 합의 없이 권력 논리에 의해 선행되었다.

이처럼 현대 정치사에서는 협력이 배신으로 무너졌음에도, 이에 대한 응징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용서는 종종 사회적 합의 없이 선행되었다. 이러한 불완전한 순환 구조는 협력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공동체의 정의 감각을 흐리게 만들었다.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세계의 지도자들에게 『협력의 진화』를 읽으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협력의 작동방식을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협력은 단순한 도덕 감정이 아니라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며, 이 기제가 지속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배신에 대한 명확하고 즉각적인 대응’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는 보복의 정당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향후 협력의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메커니즘이다. 협력은 책임 있는 행동을 유도하고, 응징은 협력의 규칙을 유지하게 하는 하나의 조절 장치다. 용서는 그 다음이다.

만약 이러한 순환(배신 → 응징 → 용서 → 협력)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상호 신뢰가 무너진 채 각자도생의 경쟁 상태로 퇴행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일종의 사회적 자연상태, 즉 통제 없는 이기적 경쟁이 난무하는 시스템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정치적 갈등이 누적되고, 응징도, 용서도 없이 배신이 반복되면, 사회는 지속적인 긴장과 갈등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실제로 20세기 후반 동유럽 공산권의 몰락은, 이데올로기적 억압과 상호 불신이 팽배한 사회에서 인간의 본능을 무시한 채 협력의 순환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았던 실패 사례다. 이는 응징과 보복의 강제만으로 협력이 유지될 수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남긴다.

리처드 도킨스가 말했듯, 협력은 진화의 산물이며 인간 사회의 미래를 구성하는 핵심 전략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일부 사람들은 분노나 실망, 두려움 속에 공동의 협력보다는 개인의 생존 전략에 몰두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젊은 세대에서 더욱 뚜렷하게 관찰된다. 타인에 대한 이해보다는 자신을 보호하고 효율적으로 경쟁하는 능력을 우선시하는 현상은, 협력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토대가 약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사회가 다시 협력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단순한 도덕적 호소를 넘어 구조적 신뢰 회복과 책임 있는 응답의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것이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며, 협력의 진화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될 것이다. (끝)


📌 주(註)

1) 헬레나 크로닌, 『공작과 개미』 , 홍승효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6, p121)

2) 스티븐 핑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김한영 옮김, 동녁사이언스, 2007, p247~248)

3) 헬레나 크로닌, 앞의 책 p24

4) 로버트 엑셀로드, 『협력의 진화』 , 이경식 옮김, 시스테마, 2009, p25)

5)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 홍영남 이상임 옮김, 을유문화사, 2018, p13)

6) 헬레나 크로닌, 앞의 책, p404

7) 리처드 도킨스, 앞의 책, p103

8) 로버트 엑셀로드, 앞의 책 p121

9) 이대열, 『지능의 탄생』, 바다출판사, 2021, p272-274

10) 헬레나 크로닌, 앞의 책, p409

11) 위의 책 p411

12) 로버트 엑셀로드, 앞의 책, p217

*2023년 9월 내가 가입한 대학교 동창 네이버 밴드에 올린 글을 다시 이곳으로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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