⑬ 실체성의 해체: 시공의 양자적 구조를 향하여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가? 로벨리는 이를 '확인된 환각'이라 부릅니다. 헬골란트의 하이젠베르크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통해 고정된 실체를 해체하고, 관계와 사건으로 이루어진 양자 세계의 투명한 진실을 탐구합니다.


하이젠베르크가 북해의 성스러운 섬으로 여행하고서 열어놓은 양자론의 세계는 "아찔함, 자유로움, 쾌활함, 가벼움"이었다. (이 사진은 카르스텐 슈테거(Carsten Steger)가 제작한 "헬골란트의 항공 사진"이다. CC BY-SA 4.0에 따라 사용.)

'확인된 환각'으로서 세계

로벨리는 우리가 세상을 직접 '보는' 것처럼 느끼지만, 실제로는 '관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세상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무의식적으로 불일치를 탐지하여, 필요한 경우 수정하는 것이다.

이때 입력되는 정보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해 주는 입력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예상과 상충하는 입력이다.

이것은 뇌가 일반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일 수 있다. PCM(예측 처리 모델, Predictive Coding Model) 가설에 따르면,, 의식은 신체와 세계가 가변적이어서 끊임없이 변하는 입력을 예측하려는 뇌의 활동이다. 그리하여 표상을 만들어 내고, 관찰된 불일치를 기반으로 예측의 오류를 부단히 최소화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또 19세기 철학자 이폴리트 텐의 말을 빌리면, "외부 지각이란 외부 사물과 조화를 이루는 내면의 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잘못된 지각을 로벨리는 '환각'이라 부르는 대신, 외부 지각을 '확인된 환각'이라고 명명한다.

현실에 대한 개념적 지도: 양자론

로벨리가 보기에 인간은 누구나 세계에 대한 내부 지도를 가진 존재이다.

시각적 상은 우리 각자의 뇌에 순식간에 발생하고, 지식의 성장은 수십 년에서 수세기에 걸쳐 인류 전체의 긴밀한 대화 속에서 아주 느리게 진행된다. 전자는 경험의 개인적 조직화와 관련되어 심리적 세계를 형성하고, 후자는 경험의 사회적 조직화와 관련되어 물리적 토대가 된다. 그러나 이 둘은 같은 것이다. 우리는 세계에 대한 자신의 ‘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이 지도와 현실 사이의 불일치를 발견할 때마다 그 지도를 수정한다.

우리의 예상에 의문을 제기하고, 세계를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고,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세계상을 업데이트한다. 현실에 대해 생각하는 새로운 지도를, 세계를 조금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지도를 찾아낸다. 그것은 양자론이다.

로벨리는 양자역학이 현실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근본적으로 흔들어놓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제 세상이 사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그것이 낡은 편견임을, 도움이 되지 않는 낡은 수레임을 깨달아야 한다.

템페스트의 마법: 실체성의 해체

이리하여 단단해 보이던 물질 세계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에 등장하는 프로스페로의 대사, "주춧돌도 없이 지어진 환영처럼... 그 안의 모든 것도 녹아내려 구름 한 조각 남지 않고" 해체되었다. 양자론은 18세기 기계론적 세계관이 쌓아 올린 견고한 물질의 탑을 허공으로 녹여버렸다. 이것은 시인의 상상이 아니라 엄밀한 실험과 이론이 도달한 '실체성의 해체'이다.

양자역학이 발견한 바에 따르면, 세계는 딱딱한 사물(Things)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의 그물망을 짜는 사건(Events)들로 묘사된다. '개체'는 이 그물망의 일시적인 매듭에 불과하다. 개체의 속성은 이러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순간에만 결정되며,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결정된다. 사물은 다른 사물 속에 비친 것일 뿐이다.

이러한 관계론적 시각은 인간의 자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고독하고 독립적이라 믿었던 '나'라는 자아조차 결국은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 속의 잔물결'일 뿐이다. 우리는 현상을 관조하는 초월적 주체가 아니라, 현실 그 자체의 일부로서 자연선택을 통해 '의미 있는 정보'를 다루는 법을 배운 자연의 조각이다.

헬골란트의 유산: 관계들로 이루어진 투명함

결국 양자역학이 벗겨낸 것은 우리 눈에 드리운 고전적 세계관이라는 환각이었다. 이폴리트 텐의 말처럼 "고전적 세계관은 확증되지 않은 환각"이었던 반면, "양자론의 실체 없이 파편화된 세계야말로 현재로서 세계와 가장 잘 어우러지는 환각"이다. 양자의 발견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세계상은 아찔함, 자유로움, 쾌활함, 그리고 가벼움이다.

젊은 하이젠베르크가 헬골란트의 성스러운 섬에서 보았던 것은 바로 이 관계들로 이루어진 세계의 투명한 아름다움이었다. 사물들이 서로를 비추는 이 거울 놀이 속에서, 우리의 삶과 세계는 부드럽게 흘러가는 덧없는, 그러나 빛나는 실재가 된다.

그럼에도 로벨리는 말한다.

리처드 파인만의 말처럼, “양자역학을 정말로 이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가 상호작용하고 있지 않을 때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가? 사물이 한 상호작용에서 다른 상호작용으로 도약할 때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가? 양자역학이 모호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이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우리 상상력의 한계 때문이다. 우리가 양자 세계를 ‘보려고’ 하는 것은, 마치 땅속에서 살던 두더지가 히말라야 산맥의 형성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과 같다.

우리는 거시 세계에 적응 진화한 뇌를 가지고 여전히 미시 세계의 낯선 문법을 해독하려 분투하는 중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두더지의 시각적 한계를 인정하고, "존재는 오직 상호작용의 사건에서만 드러난다"는 양자적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논리는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다.

물질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의 산물이라면, 그 물질이 놓이는 무대인 공간과 시간 또한 고정된 배경일 수 없다. 시공간 역시 관계 자체에서 창발하는 양자적 구조여야 한다.

이 관점이 바로 로벨리가 루프 양자중력(LQG)으로 넘어가는 출발점이다. 이는 로벨리가 양자역학의 관계적 해석에서 출발해 궁극적으로 시공간마저 해체하고 그것을 관계적 양자 구조로 재구성하려는 시도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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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재는 로벨리 물리학을 소개하는 동심헌(童心軒)의 기획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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