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상대성이론과 공간의 가분성
양자역학이 미시 세계의 불연속성을 드러냈고, 일반상대성이론이 시공간의 곡률을 드러냈다면, 이 둘을 함께 취했을 때 시공간 자체가 양자적 단위를 가진 구조물임이 드러난다. 양자중력은 바로 이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로벨리의 양자중력은 공간도 양자화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전개되는 아직 확증되지 않은 가설이다. 그럼에도 그의 방정식은 특별한 상황(블랙홀, 빅뱅 초기)을 설명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틀로 평가받는다.
로벨리는 양자중력을 설명하기 위해 직관적인 사고실험을 제안한다. 바로 극도로 작은 공간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관찰하려는 영역에 입자 하나를 놓아야 한다. 그런데 그 입자는 앞서 보았듯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작은 영역에 가두려 할수록 아주 빠른 속도로 달아나버린다. 위치와 속도가 관찰할 때마다 바뀌는 것이다. 입자가 아주 빠른 속도로 달아난다는 것은 아주 많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 다시 로벨리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연결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1) 에너지는 공간을 휘게 한다. 에너지가 많다는 것은 공간이 아주 많이 휜다는 뜻이다. (2) 아주 작은 영역에 많은 에너지가 집중되면 그 결과로 공간이 심하게 휘게 되어, 붕괴하는 별처럼 블랙홀 속으로 꺼져 들어간다. (3) 그러나 입자가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입자를 공간 영역의 기준점으로 쓸 수가 없다. (4) 요컨대 우리는 임의적으로 작은 공간 영역들을 측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고 시도하면 이 영역들이 블랙홀 속으로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잠시 공간의 개념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앞서 언급한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의 4가지 핵심을 현대적 해석을 바탕으로 하나씩 살펴보자. 비록 비전문가의 직관에 불과할지 모르나, 이 내용 속에 이미 양자중력의 핵심 원리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1) "에너지는 공간을 휘게 한다. 에너지가 많다는 것은 공간이 아주 많이 휜다는 뜻이다."
이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의 핵심 원리이다.
중력의 근원은 질량이 아니라, 그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인 에너지이다. 아인슈타인은 우주를 3차원의 공간(Space)과 1차원의 시간(Time)이 결합된 4차원 시공간(Spacetime)이라는 하나의 무대로 보았다. 그리고 중력은 이 무대 위에서 물체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아니라, 에너지 때문에 시공간이라는 무대 자체가 휘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가장 유명한 비유는 "고무판 위의 볼링공"이다.
팽팽하게 펼쳐진 거대한 고무판을 '아무것도 없는 평평한 시공간'이라고 상상해 보자. 그 위에 무거운 볼링공(태양과 같은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을 올려놓으면 고무판의 중심이 깊게 움푹 파인다. 이것이 바로 에너지에 의해 시공간이 휘어진 상태이다. 이제 그 주위로 작은 구슬(지구와 같은 행성)을 굴려보면, 구슬은 볼링공에 의해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움푹 파인 고무판의 경사를 따라 자연스럽게 볼링공 주위를 맴돌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중력'이라고 부른다. 즉, 지구는 태양이라는 힘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태양의 막대한 에너지(질량)가 만들어낸 시공간의 '내리막길'을 따라 가장 자연스러운 경로(측지선, geodesic)로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에너지가 많다는 것은 공간이 아주 많이 휜다는 뜻이다"라는 문장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에너지'의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
$R_{ab} - \frac{1}{2}Rg_{ab} + \Lambda g_{ab} = {8\pi G}T_{ab}$ (제6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론" 참조)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에서 시공간을 휘게 하는 원천은 우변의 스트레스-에너지 텐서($T_{ab}$)라고 불리는 물리량이다. $T_{ab}$는 특정 시공간 지점에서의 에너지와 운동량의 분포 및 흐름을 나타내는 수학적 도구이다. 이 텐서가 바로 시공간을 휘게 만드는 원천, 즉 중력의 원인을 설명한다.
$T_{ab}$는 단순히 하나의 숫자가 아니라, 중력 원천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종합적인 물리량이다. 이 텐서에는 에너지 밀도, 운동량, 압력(내부에서 바깥으로 미는 힘)과 스트레스(서로를 잡아당기는 인장력)가 모두 포함된다.
"에너지가 공간을 휘게 한다"는 말은 사실 "$T_{ab}$가 시공간의 곡률을 결정한다"는 의미이다. 즉, 시공간은 단순히 질량 때문에 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지나는 운동량, 그리고 그곳에 작용하는 압력과 스트레스 등 모든 요소에 의해 종합적으로 휘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T_{ab}$는 물질과 에너지가 시공간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설명하는 아인슈타인 이론의 핵심 기호라고 할 수 있다.
이 방정식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좌변 전체는 시공간의 곡률, 즉 휘어진 정도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우변은 시공간을 휘게 만드는 '원인', 즉 물질과 에너지의 상태를 나타낸다.
"물질(에너지)은 시공간에게 어떻게 휘어져야 할지 명령하고($T_{ab}$), 시공간은 물질에게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명령한다($g_{ab}$)." 즉, 우변의 에너지와 물질($T_{ab}$)이 존재하면, 그에 맞춰 좌변의 시공간 기하학($g_{ab}$)이 결정된다. 그리고 행성이나 빛과 같은 다른 물질들은 그렇게 휘어진 시공간의 구조를 따라 가장 자연스러운 경로로 움직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중력'이라고 부르는 현상의 본질이다.
(2) "아주 작은 영역에 많은 에너지가 집중되면 그 결과로 공간이 심하게 휘게 되어 붕괴하는 별처럼 블랙홀 속으로 꺼져 들어간다.”
이것은 블랙홀의 형성 원리를 에너지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에너지의 총량이 아니라 '에너지 밀도', 즉 얼마나 좁은 공간에 에너지가 집중되어 있느냐이다. 어떤 질량(에너지)이든 특정 반경(슈바르츠실트 반지름) 안으로 압축되면, 그 내부의 중력(시공간의 휘어짐)이 너무나 강해져 내부의 그 어떤 힘도 버티지 못하고 무한히 수축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중력 붕괴'이며, 그 결과로 블랙홀이 탄생한다.
이 문장은 거대한 별의 붕괴뿐 아니라,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높은 에너지의 입자 하나를 극도로 작은 한 점에 모으는 것만으로도 블랙홀이 생길 수 있음을 가리킨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입자는 당구공처럼 명확한 위치와 크기를 가진 고정된 '알갱이'가 아니다. 모든 입자는 동시에 파동(Wave)의 성질을 가지며, 특별한 상호작용이 없을 때는 특정 공간에 넓게 퍼져 있는 '확률의 구름' 또는 '파동 묶음'과 같은 상태로 존재한다. 즉, 입자의 위치는 "여기!"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없고, "이 영역 어딘가에 있을 확률이 높다"라고만 말할 수 있다.1)
"입자를 한 점에 집중시킨다"는 것은, 이렇게 넓게 퍼져 있는 파동 묶음의 범위를 인위적으로 극도로 좁히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는 그 입자의 위치를 매우 정밀하게 측정하려는 시도와 같다. 예를 들어, 넓게 퍼진 파동 상태의 전자를 아주 작은 상자 안에 가두려고 시도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여기서 물리학의 대원칙인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등장한다. "입자의 위치를 더 정확하게 알려고 할수록(즉, 더 작은 한 점에 가두려고 할수록), 그 입자의 운동량은 반대로 더욱 불확실해지고 그 평균값은 엄청나게 커진다.”는 원리다. "마치 살아있는 작은 벌레를 손가락으로 눌러 한 점에 고정시키려는 것"과 같다. 벌레를 더 강하게 누를수록(위치를 고정시키려 할수록), 벌레는 빠져나가기 위해 더욱 격렬하게 움직이며(운동량이 커지며)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튈 것이다.
입자의 운동량이 커진다는 것은 곧 그 입자의 운동 에너지가 엄청나게 커진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높은 에너지의 입자 하나를 극도로 작은 한 점에 집중시키는 것"은 어떤 입자든 (심지어 에너지가 낮은 입자라도) 우리가 그 입자를 극도로 작은 공간에 가두려고 '시도'하는 행위 자체가,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그 입자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부여하는 결과를 낳는다.
결론적으로, 이 문장은 "어떤 입자든 그 위치를 플랑크 길이 같은 극도로 작은 영역으로 좁히면, 그 대가로 입자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갖게 된다"는 양자역학의 근본 원리를 보여준다.
따라서 앞선 문맥에서처럼 '에너지가 시공간을 휘게 해 블랙홀을 만든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지점의 미시 세계를 탐사하기 위해 그 위치를 정밀하게 측정하려는 행위 자체가 그 지점에 폭발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그 에너지 때문에 바로 그 지점이 블랙홀로 붕괴해 버릴 수 있다는 놀라운 가능성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3) "그러나 입자가 블랙홀 속에 빠져들어 가면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입자를 공간 영역의 기준점으로 쓸 수가 없다.”
이 부분은 블랙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과 그것이 '측정'이라는 행위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다.
사건의 지평선은 정보의 경계선이다. 일단 입자가 이 경계를 넘어가면, 그 입자에 대한 어떠한 정보(빛, 신호 등)도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즉, 우리에게는 그 입자의 존재 자체가 '관측 불가능'해진다. 물리학에서 어떤 공간 영역을 정의하고 측정하려면, 그곳에 있는 '무엇(기준점)'과 상호작용(예: 빛을 쏴서 반사된 것을 보기)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기준점이 블랙홀 안에 있다면 상호작용이 불가능하므로, 그 공간 영역은 우리에게 측정 가능한 좌표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사실상 우주의 지도에서 지워지는 셈이다.
(4) "요컨대 우리는 임의적으로 작은 공간 영역들을 측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고 시도하면 이 영역들이 블랙홀 속으로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단락의 핵심 결론이다. 이는 '플랑크 길이'라고 알려진, 우주에 존재하는 물리적인 '최소 길이'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아주 작은 무언가를 보거나 측정하려면, 그 크기에 맞는 매우 짧은 파장의 빛(입자)을 사용해야 한다. 현미경의 배율을 높이는 것과 같다. 그런데 입자의 파장이 짧아질수록 그 입자의 에너지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이제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공간 영역(예: 플랑크 길이, 약 $10^{-33} cm$)을 측정하려고 하면 그에 걸맞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짧은 파장을 가진 입자(탐사선)가 필요하다. 이 입자는 필연적으로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지게 된다. 이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입자를 우리가 측정하려는 그 작은 영역에 집중시키는 순간, 2번 문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 지점의 에너지 밀도가 임계점을 넘어 블랙홀이 형성된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측정하려던 바로 그 공간 영역이 블랙홀이 되어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버린다.
따라서 "가장 작은 공간을 측정하려는 행위 자체가 측정 대상을 파괴(블랙홀 형성)하여 측정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역설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이는 우주의 공간이 무한히 매끄러운 연속체가 아니라, 마치 디지털 이미지의 픽셀처럼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근본적인 최소 단위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로벨리는 이에 대하여 "이것은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을 함께 취하면 공간의 가분성에 한계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는 의미이다. 특정 척도 이하로는 더 이상 접근할 수가 없다. 실제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로벨리,『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152쪽) 일반상대성이론으로 기술하는 ‘연속적인 시공간 모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지점이다.
플랑크 길이
로벨리는 여기서 묻는다. 그렇다면 공간의 최소 영역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는 그것이 문맥상 플랑크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로벨리는 존재하는 최소 길이 방정식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L_p=\sqrt{\frac{\hbar G}{c^3}}$
$L_p : \ \text{플랑크 길이}$
$\hbar:\ \text{디랙 상수(플랑크 상수 } h \text{ 를 } 2\pi \text{ 로 나눈 값)}$,
$\quad \frac{h}{2\pi} = 1.054\times 10^{-34}\ \text{J·s}$
$G:\ \text{뉴턴 중력 상수},\quad 6.674\times 10^{-11}\ \text{m}^3\ \text{kg}^{-1}\ \text{s}^{-2}$
$c:\ \text{빛의 속도},\quad 2.998\times 10^{8}\ \text{m/s}$
즉, 양자역학($\hbar$), 중력이론($G$), 상대성이론($c$)의 세 가지 근본 상수를 조합하여 얻은 길이 단위이다.
$L_p = \sqrt{\frac{(1.054 \times 10^{-34})(6.674 \times 10^{-11})}{(3.00 \times 10^{8})^{3}}}$
$\approx 1.616 \times 10^{-35}\,\mathrm{m}$
즉, 약 $10^{-35}\,\mathrm{m}$ 수준이다. 이는 원자핵 크기($\sim10^{-15}\,\mathrm{m}$)보다 무려 20 자릿수($10^{20}$ 배)나 작다.
우리는 이 길이를 ‘플랑크 길이’라고 부르며 수치로 말하면 약 $10^{-35} m$ (약 $10^{-33} cm$)이다. 이 정도의 극도로 작은 규모라야 양자중력이 나타난다. 이런 규모에서는 공간과 시간의 본성이 변한다. 바로 양자 공간과 양자 시간이 된다.
플랑크 길이는 양자중력 효과가 무시할 수 없게 되는 최소의 길이 스케일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시공간이 더 이상 연속적이지 않고, 양자적 구조(불연속성)를 가질 것이라 추정되는 임계 길이이다.
이보다 작은 영역을 탐구하려 하면, 양자역학적 불확정성과 일반상대론적 중력 효과가 동시에 크게 작용하여 기존 물리학(양자역학 + 일반상대성이론)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해진다. 즉, 플랑크 길이는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이 동시에 작용하는 물리적 경계를 상징한다. 이보다 작은 스케일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시공간 개념이 무너지고, 양자중력(quantum gravity) 같은 새로운 물리학적 이론이 필요할 것이라 예상된다.
예를 들어, 블랙홀의 특이점 근처나 빅뱅 초기 우주에서는 플랑크 길이 단위에서의 현상이 중요해진다. 원자핵의 크기는 약 $10^{-15}m$, 전자의 콤프턴 파장(입자의 정지 질량에 의해 결정되는 고유한 길이 척도, 즉 전자라는 존재 자체가 가진 정지 에너지를 길이의 척도로 환산한 근본적인 상수)은 $10^{-12}m$이다. 플랑크 길이는 이것보다 20 자릿수 이상 더 작은 거리로, 일상적 감각으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만약 원자를 태양계 크기로 확대한 뒤 비교한다면, 플랑크 길이는 그 안에서 하나의 먼지 알갱이보다도 훨씬 작은 존재라 할 수 있다.
물리학자들은 이 영역에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고전적 중력)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에 새로운 이론을 요구한다. 따라서 “중력이 양자 효과를 나타내는 최소 크기”를 플랑크 길이라고 부른다. 중력이 양자화된다는 것은, 전자기력·약력·강력처럼 중력도 양자역학적 입자와 확률적 성질로 기술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고전 물리학에서는 힘과 에너지가 연속적으로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에너지가 불연속적인 단위(양자)로만 존재한다. 예를 들어 전자기장은 광자(photon)라는 입자로 양자화된다. 즉, 빛의 세기를 아무리 줄여도, 기본 단위인 광자(에너지 순서대로, 감마선 > X선 > 자외선 > 가시광선 > 적외선 > 전파) 하나보다 더 작게 쪼갤 수 없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중력은 질량과 에너지가 시공간을 휘게 만드는 현상이다. 시공간은 연속적이고 매끄럽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만약 중력도 다른 힘들과 마찬가지로 양자화된다면, 중력도 입자로 매개되어야 한다.
물리학자들은 이 가상의 입자를 그래비톤(graviton)이라고 명명했다. 그래비톤은 질량이 없고, 스핀(spin)이 2인 보손으로 가정된다. 그래비톤은, 전자기장의 광자처럼, 중력장의 최소 단위라고 할 수 있다.
“중력이 양자화된다”는 말은, 중력이 ‘그래비톤’이라는 입자로 전달될 수 있다는 것, 시공간 자체가 연속이 아니라 양자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그리고 플랑크 스케일에서는 일반상대성이론이 깨지고 양자중력 이론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비톤은 중력의 매개 입자로 가정된 보손이다. 보손은 스핀이 정수(0, 1, 2, …)인 입자이다. 인도 물리학자 사티엔드라 보스(Satyendra Nath Bose)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양자역학의 입자들은 크게 페르미온(물질, 스핀 반정수)과 보손(에너지(힘), 스핀 정수)으로 나뉘는데, 이 구분은 단순한 분류가 아니라 자연의 행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중력장의 양자인 그래비톤은 바로 이러한 보손의 한 종류이다. 즉, 전자기력이 광자(스핀 1, 질량 0)에 의해 매개되고, 강력은 글루온(스핀 1, 질량 0), 약력은 W/Z 보손(스핀 1, 질량 유)에 의해 매개되는 것처럼, 중력 역시 양자화된 장(quantum field)을 가진다면 이를 매개하는 입자가 존재해야 한다는 논리인 것이다. 2015년 LIGO가 중력파(Gravitational wave)를 직접 검출했다. 중력파는 고전적 관점에서 시공간의 파동이며, 이를 양자적으로 해석하면 그래비톤이 집합적으로 만들어내는 파동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아직까지 그래비톤 단독으로는 관측된 적이 없다. 그 이유는 중력의 세기가 워낙 약해 검출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자장론(표준모형)에서는 그래비톤을 포함하지 않는다. 일부 양자중력 이론(초끈이론, 섭동 이론 등)에서는 그래비톤을 가정하지만, 로벨리의 루프 양자중력에서는 그래비톤보다는 공간 그 자체를 양자화한 스핀 네트워크를 더 근본적인 구조로 본다. 그래비톤은 근사적 개념으로만 등장한다. 그래비톤은 아직 실험적으로 발견되지 않은 가설적 입자이지만, 질량 0, 스핀 2 보손, 중력의 양자적 매개체로 예측되기 때문에 양자중력 연구에서 필수적 논의 대상이다.
플랑크 길이의 물리학적 의의는 단순한 수학적 정의가 아니라, 자연의 기본 상수(빛의 속도, 중력 상수, 플랑크 상수)를 조합해 나온 값이다. 따라서 인간이 만든 단위가 아니라, 자연 법칙 자체가 정해주는 “최소 길이 눈금”이라고 할 수 있다. 양자중력은 이 길이를 출발점으로 삼아 우주 구조를 설명하려 시도한다. 플랑크 길이는 우리가 현재의 물리학으로 다가갈 수 있는 ‘우주의 가장 작은 눈금자’이다.
로벨리는 플랑크 길이(약 $10^{-35} m$) 크기 이하에서는 시공간이 매끄러운 연속체가 아니라, 요동치는 양자 거품(quantum foam)처럼 보일 것이라 예측한다. 플랑크 길이의 규모보다 엄청나게 큰 우리의 규모에서는 공간은 매끈하고 평평하며 유클리드 기하학으로 기술된다. 그러나 우리가 플랑크 규모로까지 내려가면 공간은 부서지고 거품이 인다는 것이다.
이 영역에서는 일반상대성이론의 ‘연속적 시공간’ 개념이 무너지고, 확률적 중력 요동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근처나 빅뱅 직후 우주의 극한 상태에서 이러한 효과가 드러날 수 있다.
플랑크 길이의 현실적 의미
플랑크 길이는 물리학적으로는 단순한 수학적 정의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시공간과 물리 법칙의 한계를 드러내는 상징적 경계라는 의미를 가진다.
첫째, 자연 상수로부터 도출된 "우주의 최소 눈금자”이다. 플랑크 길이는 플랑크 상수($\hbar$), 빛의 속도($c$), 만유인력 상수($G$)라는 세 가지 기본 상수를 조합해 얻어진다. 즉, 인간이 임의로 정한 단위가 아니라 자연 법칙 그 자체가 규정한 최소 길이 척도이다. 따라서 플랑크 길이는 우주 자체가 “더는 잘게 쪼갤 수 없는 단위 눈금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둘째, 시공간의 양자화 경계이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시공간은 매끄럽게 휘어지는 연속체이다. 그러나 플랑크 길이 이하에서는 시공간이 더 이상 연속적이지 않고, 양자 요동으로 인해 “거품”처럼 들쭉날쭉할 것이라 예상된다. 즉, 플랑크 길이는 고전적 시공간 개념이 붕괴되는 경계를 뜻한다.
셋째, 중력의 양자 효과가 나타나는 크기다. 전기력이나 자기력은 이미 양자화된 광자라는 입자로 설명된다. 중력도 플랑크 길이 스케일에서는 그래비톤이라는 양자 입자로 설명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플랑크 길이는 중력이 고전적 곡률에서 양자적 입자 현상으로 전환되는 임계 규모이다.
넷째, 물리학의 도달할 수 없는 불가능한 에너지 영역이다. 현대 입자 가속기(LHC)가 도달하는 에너지는 약 $10^4GeV$ 수준인데, 플랑크 에너지는 무려 약 $10^{19}GeV$ 이다. 이는 기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실험 접근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따라서 플랑크 길이는 실험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자연의 벽을 상징한다.
다섯째, 우주론적 의미를 갖는다. 빅뱅 직후 우주가 시작된 첫 $10^{-43}s$ (플랑크 시간) 동안은 물리학적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플랑크 길이 규모에서 양자중력이 지배했기 때문이다. 블랙홀 내부의 '사건의 지평선' 안쪽, '특이점' 근처도 플랑크 길이 스케일의 양자중력이 필요하다.
여섯째, 현실적으로 일상이나 기술적으로는 직접 경험하거나 측정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나 과학적으로는 양자역학과 중력을 통합해야 하는 “미지의 문턱”이다. 따라서 플랑크 길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현대 물리학이 풀어야 할 궁극적 과제를 상징하는 값이다.
휠러–드위트 방정식
이 난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벨리는 휠러-드위트 방정식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로벨리는 이 방정식의 해가 텅 빈 공간 속의 장(field)이 아니라, '공간 그 자체'의 얽히고 설킨 구조를 가리키고 있음을 간파했다. 그 수학적 해답은 닫힌 선들, 즉 '루프(Loop)'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로벨리가 구축해 나가는 '루프 양자중력'의 출발점이다.
휠러–드위트 방정식2)은 1960년대 존 휠러와 브라이스 드위트가 일반상대성이론을 양자화하려는 시도 속에서 제안한 식이다. 이 방정식은 우주의 ‘상태(state)’를 기술하는 파동함수($\Psi$)를 정의하며, 시공간 전체의 구조를 양자역학적으로 서술하려는 최초의 방정식이다.
$\hat{H}\Psi = 0$
이 방정식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시간 변수가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양자역학의 슈뢰딩거 방정식은 시간에 따라 변하는 데 비해, 휠러–드위트 방정식은 시간항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우주의 양자적 기술에서는 “전체적 시간”이 흐르지 않으며, 시간은 더 이상 기본적 좌표가 아니라 관계적이고 파생적인 개념이 된다. 이것이 바로 로벨리가 후에 ‘관계적 시간’과 ‘시간의 부재’ 문제를 깊이 탐구하는 동기가 되었다.
로벨리는 바로 이 식의 구조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그 해가 단순한 장의 진동이 아니라 ‘공간 자체의 얽힘’이라는 사실을 파악했고, 그것이 루프 양자중력의 첫 단서가 되었다.
대다수가 이 '시간이 없는 결과'를 실패로 간주할 때, 로벨리와 스몰린3)은 이를 물리적 실재로 받아들였다. 이들은 이 방정식의 해($\Psi$)를 구하기 위해 좌표 대신 '닫힌 고리(Loop)'를 기본 변수로 사용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방정식이 풀린 것이다. 로벨리는 이 해(solution)들이 “공간 속에서 닫힌 선들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닫힌 선은 ‘고리’ 혹은 영어로 루프이다. 스몰린과 제이콥슨은 닫힌 선에 대해 휠러-드위트 방정식의 해를 구할 수 있었다.” (로벨리,『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158쪽)
방정식은 공간이 매끄러운 판이 아니라, 서로 얽히고 매듭지어진 고리들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여주었다. 즉, 휠러-드위트 방정식은 공간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무엇으로' 짜여 있는지를 묻고 있었던 것이다.
바야흐로, 루프 양자중력이론이 "천천히 세워지고 있"었다.(끝)
🔖 주(註)
1) "아인슈타인은 공간이 전자기장과 같은 하나의 장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한편, 양자역학은 모든 장이 양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양자는 확률운을 통해서만 기술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 두 아이디어를 합쳐서 생각하면 공간, 즉 중력장은 전자기장과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공간 역시 알갱이 구조를 띠게 된다. 결국 공간 알갱이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카를로 로벨리,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김보희 옮김, 쌤앤파커스, 2021, 43쪽)↩
2) 본문의 휠러-드위트 방정식은 위키백과 (휠러-드위트 방정식)를 참조하였고, 설명 부분은 로벨리의 저서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김정훈 옮김, 쌤앤파커스, 2018.)와 AI를 활용하여 정리하였다.↩
3) 로벨리가 미국에서 양자중력 관련 한 학회에서 알게 된 인물이다. "그는 테드 제이콥슨과 함께 휠러-드위트 방정식의 기묘한 해법을 찾아낸 인물이었다."(카를로 로벨리,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김보희 옮김, 쌤앤파커스, 2021, 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