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슬릿 실험: 파동성의 증거와 양자역학의 태동
토머스 영(Thomas Young)이 19세기 초에 수행한 이 이중 슬릿 실험은 빛의 본질에 대한 고전적인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빛이 파동의 성질을 갖는다는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였다.
먼저, 광원에서 방출된 단색광의 빛은 단일 슬릿을 통과하며 파동의 본질적인 특성인 회절 현상을 일으킨다. 이 회절을 통해 빛은 좁은 틈을 지나도 직선 경로를 벗어나 넓게 퍼져 나간다. 다음 단계에서, 이 회절된 빛이 두 개의 좁고 평행한 이중 슬릿을 동시에 통과할 때, 두 슬릿은 각각 새로운 파동의 출발점처럼 작동하며 다시 회절파를 방출한다.
이 두 개의 회절파는 공간을 진행하며 중첩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파동의 마루와 마루, 또는 골과 골이 만나는 지점에서는 두 파동이 보강간섭(가운데 밝은 부분: 더 넓은 영역)을 일으켜 빛의 세기가 최대가 되고, 반면에 마루와 골이 만나 상쇄간섭(어두운 위아래 얇은 줄)이 일어나는 지점에서는 파동의 에너지가 서로 상쇄되어 빛의 세기가 최소, 즉 "0"에 가까워져 어두워지게 된다.
이러한 보강 간섭과 상쇄 간섭의 결과 빛이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오른쪽의 스크린에는 빛의 입자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밝은 줄무늬(보강 간섭)와 어두운 줄무늬(상쇄 간섭)가 교대로 나타나는 패턴(간섭무늬)이 형성된다. 보강 간섭과 상쇄 간섭의 최종적인 결과(무늬)는 이 파동들이 스크린에 도달했을 때 나타난다. 이 주기적인 패턴은 빛이 파동으로서 행동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19세기 고전 물리학은 이 실험을 통해 빛의 파동성을 확립하였으나, 20세기에 들어서 전자를 비롯한 물질 입자를 이중 슬릿에 하나씩 발사하는 실험을 진행했을 때도 동일한 간섭 무늬가 나타나는 놀라운 결과가 확인되었다.
이 현상은 빛뿐만 아니라 모든 물질이 파동의 성질과 입자의 성질을 동시에 지니는 파동-입자 이중성이라는 양자역학의 근본 원리를 확립하는 객관적인 근거가 되었다. 전자가 스스로 하나의 입자이면서도 두 슬릿을 동시에 통과하는 양자 중첩 상태를 통해 공간을 탐색하며 간섭 무늬를 남기는 이 행위는, 양자 세계의 기묘함과 불확정성을 명확히 드러내주었다.
파동 함수와 양자 중첩
전자가 광자에 의해 원자에서 이탈하여 공간을 유영하는 '파동'은 곧 그 전자의 '모든 가능한 상태의 중첩'을 나타낸다.
양자 중첩은 전자가 공간을 탐색하는 방식의 핵심이다. 전자는 하나의 상태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측정되기 전까지 모든 가능한 상태를 동시에 갖는다.
전자의 파동을 함수로 표시하면 $\psi$ 이다. 이는 수학적으로 여러 고유 상태의 선형 결합으로 표현된다.
$\Psi = c_1 \psi_1 + c_2 \psi_2 + c_3 \psi_3 + \dots$여기서 $\psi_n$은 특정 운동량이나 위치를 갖는 상태이며, $c_n$은 그 상태로 발견될 확률 진폭이다. 전자는 $\psi_1$부터 $\psi_n$까지 모든 상태를 실제로 동시에 소유한다.
전자는 스스로 자신의 모든 잠재력을 펼쳐 보이며 공간을 채워 나간다. 이는 마치 "나는 A 경로로도 가고, B 경로로도 간다"라고 선언하며 비행하는 것과 같다. 이 중첩된 상태 덕분에 전자는 장애물 앞에서 갈림길을 고민하지 않고, 모든 길을 동시에 탐색하는 파동의 특성을 발현한다.
로벨리는 이를 다음과 같이 양자의 '위치 중첩'이라고 설명한다.
전자의 확률구름과 위치 중첩
광자와 부딪힌 초기에 위치 A에 있던 한 전자가 일정 시간 뒤에 최종 위치 B에 다시 나타날 확률을 어떻게 계산할까? 1950년대 리처드 파인만은 A에서 B까지 가는 가능한 모든 경로들을, 즉 전자가 따라갈 수 있는 모든 경로들(직선, 곡선, 지그재그..)을 고려하여 각 경로마다 하나의 수를 계산해내고 그다음에 이 모든 수들을 합하면 확률을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전자가 A에서 B로 가기 위해 마치 '모든 가능한 경로'를 지나가는 것 같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구름 속으로 퍼져 나갔다가는 신기하게도 B지점에서 모여서 다른 것과 다시 충돌한다는 것이다.
양자 사건의 확률을 계산하는 이러한 방식을 파인만의 '경로 적분'이라고 부른다. 전자는 한번 나타났다 곧이어 다시 나타나는 동안에 정확한 위치를 갖고 있지 않다. 마치 '확률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듯하다. 이것이 양자의 위치 중첩이다.
양자 중첩 현상에 대한 핵심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광자에게 에너지를 받아 이탈한 전자가 처음에 좁은 영역에 뭉쳐 있는 파동 묶음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이유도 중첩 덕분이다. ② 고전적인 입자가 하나의 속도(운동량)를 갖는다면, 전자의 파동 묶음은 서로 다른 무수히 많은 상태 중첩이다. ③ 이 다양한 운동량들이 결합되어 특정 지점에서 파동들이 보강 간섭을 일으킬 때, 전자의 존재 확률이 그 지점에 집중된다. ④ 시간이 흐름에 따라 파동 묶음이 퍼져나가는 이유는, 다양한 운동량 상태가 서로 다른 속도로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⑤ 전자는 두 슬릿을 동시에 통과하는 상태를 중첩하여 스크린에 간섭 무늬를 남긴다. ⑥ 측정 순간 중첩이 붕괴되고, 전자는 하나의 고유한 위치 상태로 수렴한다.
양자의 기묘함
카를로 로벨리는 양자의 기묘함에 대해서 자신의 저서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2023), II장 "중첩", 59~71쪽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양자의 기묘함은 '양자 중첩'이라고 부르는 현상에서 볼 수 있다. 양자 중첩이란 어떤 의미에서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속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가 "전자는 더 이상 하나의 경로를 따라가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전자는 여기나 저기 중 어느 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둘 다에 존재한다. 마치 한 번에 여러 위치에 있는 것 같다. 영국 물리학자 폴 에이드리언 모리스 디랙(Paul Adrien Maurice Dirac, 1902~1984)은 이 기묘함을 '중첩 원리'라고 부르며 양자론의 개념적 기초로 삼았다.
하지만 양자 중첩은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중첩의 결과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결과를 '양자 간섭'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관찰하는 것은 중첩이 아니라 간섭인 것이다.
로벨리는 양자간섭과 양자중첩을 설명하기 위해 차일링거(Zeilinger) 간섭 실험을 소개한다.
차일링거 실험
차일링거 실험이란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 대학의 안톤 차일링거(Anton Zeilinger)가 양자 간섭을 관찰하기 위한 레이저 광선 실험이다.
그는 몇 개(여기서는 4개)의 광자로 이루어져 있는 약한 레이저 광선을 왼쪽 그림(차일링거 실험 그림 ①)과 같이 왼쪽과 오른쪽 두 경로를 따라가도록 하고 두 경로는 다시 합쳐졌다가 다시 한번 갈라져 두 개의 광자 검출기에 도달하도록 하는 실험을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로벨리는 한쪽 검출기를 '위쪽', 다른 쪽을 '아래쪽' 검출기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때 두 경로를 모두 열어두면 모든 광자(4개)가 아래쪽 검출기에 도달한다.(차일링거 실험 그림 ②, 위쪽) 두 경로 중 하나(왼쪽 또는 오른쪽)를 손으로 막으면 광자의 절반(2개)은 아래쪽 검출기에 도달하고 나머지 절반은 위쪽 검출기에 도달한다.(차일링거 실험 그림 ②, 중간과 아래) 도대체 왜 한쪽 경로에 손을 대면 다른 쪽 경로를 따라가던 광자가 위쪽 검출기에 도달하는 것일까? 아무도 모른다.
두 경로가 모두 열려 있을 때 위쪽 검출기에 광자가 하나도 도달하지 않게 되는 이 현상은 양자간섭의 한 예이다. 오른쪽과 왼쪽, 두 경로 사이에 '간섭'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앞서 설명한 이중 슬릿 실험과 관련하여 설명하면 '위쪽 검출기에 광자가 하나도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중슬릿을 통과한 광자가 화면에 도달했을 때 나타나는 간섭무늬 중 '빛의 세기가 "0"에 가까운 상쇄간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나는 아래쪽 검출기에 나타나는 4개의 광자, 즉 빛의 세기가 아주 강한 보강간섭이 나타난다.
슈뢰딩거의 이론에 따르면, 광자의 파동 $\psi$는 두 부분, 두 개의 파동으로 나뉜다. 그중 하나는 왼쪽 경로를 다른 하나는 오른쪽 경로를 따라가고, 이 둘이 다시 만나면 파동 $\psi$가 재구성돼 아래쪽 검출기로 가는 경로를 따라간다. 그런데 한쪽 경로를 손으로 막으면 파동 $\psi$는 재구성되지 않고 둘로 나뉘어 한 부분은 위쪽, 다른 부분은 아래쪽 검출기로 향하게 된다.
우리는 이 파동 $\psi$를 관측하지 못한다. 각각 왼쪽이나 오른쪽 중 한쪽 경로만 통과하는 개별 광자만 관측하는 것이다. 광자는 파동처럼 두 경로를 모두 통과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광자가 어디에 있는지를 관측하면, 항상 어느 한쪽 경로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양자중첩'은 하나의 광자가 '왼쪽과 오른쪽 둘 다'를 지나가는 것이다. 왼쪽을 통과하는 상황과 오른쪽을 통과하는 상황, 이 두 상황이 양자적으로 중첩된 것이다. 그 결과 광자는 더 이상 위쪽 검출기로 가지 않게 된다. 두 개의 경로 중 아래쪽을 막아 위쪽으로 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놀라운 일은, 광자가 두 경로 중 어느 쪽을 따라가는지 관찰자가 관측하면 간섭이 사라지는 것이다.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광자의 경로를 바꾼다. 보지 않을 때는 광자가 항상 아래쪽 검출기로 향하는데, 어느 경로로 가는지 관찰하면 광자가 위쪽의 검출기에 도달할 수 있다.
양자역학 교과서에는 하나의 광자가 어느 경로를 지나가는지 관찰하면 그 $\psi$ 는 한쪽 경로로 도약한다고 쓰여 있다. 만약 지금 광자가 오른쪽 경로를 지나가는지 관찰한다고 할 때, 광자가 보였다면 $\psi$ 파동은 통째로 오른쪽을 도약한다. 그런데 관찰했을 때 광자가 보이지 않으면, $\psi$ 파동은 왼쪽으로 통째로 도약한다. 어느 쪽이든 간섭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즉, 관찰하는 순간 파동함수는 '붕괴'한다.
'양자중첩'이란, 말하자면 하나의 광자가 두 경로에 모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관찰자가 광자를 보면, 도약하여 한쪽 경로에만 존재하고 간섭이 사라진다. 앞서 설명한 이중 슬릿 실험에서 빛의 광자는 두 슬릿을 동시에 통과하는 상태를 중첩하여 스크린에 간섭 무늬를 남긴다(중첩 상태). 중첩 상태는 광자가 스크린에 안착(측정)하는 순간 붕괴된다.1)
슈뢰딩거 고양이
슈뢰딩거는 이 양자의 기묘함을 설명하기 위해 유명한 사고실험을 생각해냈다. 바로 그 유명한 '고양이 실험'이다.
고양이 한 마리가 상자에 갇혀 있다. 그 상자에는 2분의 1의 확률로 양자 현상이 일어나는 장치가 들어 있다. 만약 양자 현상이 일어난다면 그 장치에 있는 수면제 병의 뚜껑이 열리면서 고양이는 잠이 든다. 양자론에 따르면, 이때 고양이의 파동 $\psi$ 는 '깨어 있는 고양이'와 '잠든 고양이'의 '양자적 중첩' 상태에 있으며, 우리가 실제로 고양이를 볼 때까지 그 상태가 지속된다.
따라서 고양이는 '깨어 있는 고양이'와 '잠든 고양이'의 양자적 중첩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는 고양이가 깨어 있는지 자고 있는지 우리가 모른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다. 즉, '깨어 있는 고양이'와 '잠든 고양이' 사이의 간섭은 차일링거 실험실의 두 경로를 따라가는 광자 사이의 간섭과 마찬가지로 고양이가 깨어 있거나 잠들어 있을 때는 일어날 수 없다. 차일링거 실험에서 광자가 '양쪽 경로를 모두 통과할 때만 간섭이 발생했듯이, 고양이가 '깨어 있는 고양이'와 '잠든 고양이' 둘 다 일 때, 즉 '양자적 중첩 상태'에 있을 때만 간섭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양이는 깨어 있지도 않고 잠들어 있지도 않은 상태가 있을까? 여기에 양자의 수수께끼가 있다.
이처럼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중첩이라는 양자의 특성을 일상적 규모로 옮겨 온 사고실험이며, 관찰되기 전까지 상태가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다는 양자 세계의 기묘함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다. 중첩된 상태는 외부와의 상호작용 순간 단 하나의 값으로 수렴하며, 고양이가 ‘깨어 있음’과 ‘잠듦’을 동시에 담고 있다가 우리의 관찰과 함께 어느 한 상태로 확정된다는 이러한 구조는 앞서 다룬 이중 슬릿 실험과 차일링거 실험의 본질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여기까지가 양자중첩의 핵심이다. 양자는 하나의 경로, 하나의 위치, 하나의 상태로 존재하지 않고, 가능한 모든 상태가 겹쳐진 확률의 파동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관찰은 그 확률 구조, 즉 파동함수를 붕괴시켜 전자나 광자처럼 불연속적인 입자의 특정한 값으로 드러나게 한다.
다세계 해석과 숨은 변수 이론: 로벨리의 비판
앞서 살펴본 이중 슬릿 실험, 파동함수와 중첩, 차일링거 실험, 그리고 슈뢰딩거 고양이까지의 논의는 양자 세계가 고전적 직관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 결과 물리학자들은 ‘관측 이전에 양자는 실제로 어떤 상태에 있는가?’라는 질문과 맞닥뜨렸고, 이 물음에 답하려는 과정에서 두 가지 해석이 등장했다. 바로 다세계 해석과 숨은 변수 이론이다.
다세계 해석 — 모든 가능성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주장
다세계 해석은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예로 들며, 고양이가 깨어 있는 상태와 잠든 상태가 각각의 실제 세계에서 모두 실현된다고 말한다. 즉, 양자 중첩을 ‘한 세계 안의 모순된 상태’로 보지 않고, ‘여러 세계의 분기’로 해석해 문제를 우회한다.
그러나 카를로 로벨리는 이 해석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가 결코 관찰할 수 없는 수많은 세계를, 오직 불확실성을 피하려는 목적만으로 가정할 가치가 있을까?
그에 따르면 다세계 해석은 실험적 예측력도 늘리지 못하고, 실재 세계를 설명하는 능력도 확장하지 못한 채, 불확실성을 ‘세계의 무한증식’으로 덮는 방식이다. 즉,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외부로 밀어내는 해석에 불과하다.
숨은 변수 이론 — 결정론을 되찾으려다 상대성을 위반하는 길
숨은 변수 이론의 대표 격인 데이비드 봄의 해석은 입자가 사실은 명확한 위치와 궤적을 가지며, 우리가 모르는 추가 변수(숨은 변수)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본다. 겉으로 확률처럼 보이는 것은 단지 우리가 정보에 접근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숨은 변수 이론은 결정적 세계를 회복하는 대가로 상대성 이론의 핵심인 국소성(locality)을 정면으로 위반한다. 숨은 변수가 실제로 존재하려면, 멀리 떨어진 두 입자가 광속을 초월한 즉각적 작용을 주고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벨의 정리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그는 만약 세계가 국소적이며 숨은 변수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얽힌 입자들이 보여주는 상관관계는 반드시 특정한 한계를 넘을 수 없다고 증명했다. 이 한계가 바로 벨의 부등식이다. 그런데 실제 실험에서 얽힌 입자들은 이 부등식을 반복해서 위반하며, 고전적·국소적·결정론적 세계가 설명할 수 없는 강한 상관관계를 드러냈다.
이 결과는 숨은 변수를 도입한 고전적 비국소성 모델이 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벨의 정리가 비국소적 모델이 성립할 수 없다”는 말은, 양자의 비국소성이 숨은 변수 이론이 상정하는 고전적 방식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는 뜻이다. 자연은 국소적·결정론적 모델이 예측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상관구조를 실제로 드러내며, 이 상관관계는 어떤 숨은 변수를 도입한다고 해도 재현되지 않는다.
결국 벨의 정리는 ‘국소성 + 숨은 변수’라는 고전적 세계관 자체가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이는 숨은 변수가 아니라, 양자 얽힘 그 자체가 드러내는 양자적 비국소성이 자연의 실제 특성임을 분명하게 한다.
복잡한 양자계에서 드러나는 치명적 균열
숨은 변수 이론은 단일 입자 수준에서는 겉보기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두 입자, 세 입자, 더 복잡한 얽힘 구조가 등장하는 순간 이론은 급격히 일관성을 잃는다.
파동함수는 3차원 공간이 아니라 추상적 힐베르트 공간에서 정의되며, 복잡한 상태일수록 그 구조는 단순한 ‘숨은 변수’로 환원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다. 결국 숨은 변수 이론은 단순한 상황에서만 작동하고, 복잡계에서는 붕괴한다.
양자론이 말하지 않은 것을 억지로 채우려는 두 관점
로벨리는 다세계 해석과 숨은 변수 이론이 양자론의 본질인 불확실성, 관계성, 비결정성을 회피하려는 시도라고 본다.
다세계 해석은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관찰할 수 없는 세계'를 무한히 생성하고, 숨은 변수 이론은 결정론을 갈망하는 나머지 상대성을 포기해야 한다. 둘 다 양자론의 본질을 설명하기보다, 양자가 말해주지 않은 것을 억지로 보충하려는 철학적 위안의 장치에 가깝다.
여기서 로벨리는 한 걸음 물러서서 묻는다. “우리는 왜 굳이 $\psi$(파동함수)를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처럼 해석하려 하는가?” 그는 이러한 해석적 시도가 공통적으로 "세계의 불확정성과 확률을 어떻게든 피하려고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psi$ 는 자연의 실체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의 사건들로부터 얻는 정보를 계산하는 수단이다. 날씨 예측이나 회사의 손익 전망처럼, $\psi$ 는 실제 존재가 아니라 확률을 정리하는 도구에 가깝다.
특히 로벨리는 $\psi$ 에 실재성을 부여하지 않으려는 접근을 ‘인식론적 해석’이라고 부른다. 이 관점에서는 $\psi$ 가 세계 그 자체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의 구조를 표현한다고 본다. 즉, 양자 현상은 세계 바깥의 숨겨진 실체에서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가 세계와 맺는 관계 속에서 정보가 재배열되며 드러나는 사건이다.
로벨리는 이러한 인식론적 해석의 예로 큐비즘(QBism)과 ‘입체파(Cubism)’의 비유를 소개한다. QBism은 양자론을 “세계의 완성된 형태”를 묘사하는 이론으로 보지 않고, “관찰자가 가지는 정보의 변화”를 다루는 틀로 해석한다. 정보는 우리가 관찰할 때 증가한다. 그래서 $\psi$ 는 우리가 관찰할 때 변하는데, 이는 외부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우리의 정보가 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로벨리는 이 정보를 다루는 방식을 20세기 초 브라크와 피카소의 큐비즘(입체파) 회화에 비유한다. 큐비즘 그림에서 하나의 사물은 단일한 관점이 아니라 여러 시점의 이미지가 겹쳐진 형태로 표현된다. 사물의 “실제 형태”를 묘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가 바라보는 다양한 시점과 그 변화를 화면 위에 펼쳐놓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QBism은 우리가 세계를 절대적인 모습으로 그리는 작업을 포기하고, 관찰을 통해 얻게 되는 정보의 재구성 과정을 양자론의 핵심으로 이해한다.
즉, 인식론적 해석은 양자 세계가 다가오는 방식이 우리가 세계를 관찰하는 시점과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다. 양자 상태는 관찰 전에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가 바뀔 때마다 정보가 업데이트되는 동적 사건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로벨리는 양자 세계의 핵심이 불확정성과 확률에 있음을 천명한다. 이 두 요소는 결함이 아니라 자연의 규칙이며, 관찰자가 세계와 맺는 관계 속에서만 상태가 확정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따라서 로벨리는 양자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관계 속에서만 양자의 상태가 결정된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그가 제안하는 관계적 해석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양자역학의 특징
지금까지 플랑크의 관계식 $E =h \nu$ 에서 시작해 파동과 행렬의 두 표현, 슈뢰딩거 파동함수의 중첩에 이르기까지 양자 세계의 구조를 살펴보았다. 로벨리는 이 과정에서 양자역학이 지닌 세 가지 근본적 특징이 있음을 제시한다.
첫째는 입자성이다. 광자와 전자는 파동처럼 공간 전체에 퍼지지만, 측정 순간에는 한 점에 안착하는 개별 사건으로 드러난다. 이 ‘입자로서의 성질’은 에너지의 양자화, 광전효과, 단일 광자 간섭 실험 등으로 검증된 객관적 사실이며, 양자가 공간 속을 연속적으로 가득 메우는 고전적 파동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둘째는 비결정성이다. 전자의 경로, 위치, 운동량은 측정 이전까지 특정 값을 갖지 않는다. 전자는 하나의 확정된 경로를 따라가지 않고, 가능한 모든 경로를 중첩한 상태로 존재한다. 이 확률적 구조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제시한 바와 같이 자연의 근본적 한계이며, 단순한 지식 부족이 아니라 세계 자체가 확률적 규칙에 따라 작동한다는 물리학적 근거를 제공한다.
이 두 특징―입자성, 비결정성―은 양자 존재가 고전적 의미의 ‘사물’이 아니라 사건과 상호작용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임을 시사한다. 전자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은 그것이 무엇과 상호작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하나의 고정된 성질을 지닌 실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성질이 결정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양자 세계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핵심 특징이 드러난다. 양자 상태는 개별적 속성보다 관계적 구조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며, 이 관계가 속성의 실재성을 결정한다.
셋째, 관계성이다.
“물질의 양자(광자.전자)는 무엇을 기준으로 그 성질을 드러내는가?”“전자는 무엇과의 관계 속에서 ‘위치’를 갖게 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일관된 대답을 제시한 사람이 바로 로벨리이며, 그가 제안한 관점이 바로 양자역학의 관계적 해석이다. 다음 장에서는 로벨리의 관계적 관점이 어떻게 양자 세계를 재해석하는지 소개하겠다.(끝)
🔖 주(註)
1) 양자역학의 기본 원리에 따라 광자 또는 전자가 '두 경로를 동시에 지나는' 양자 중첩 상태($\psi$)는 외부와의 상호작용, 즉 관찰이나 측정 행위를 통해 붕괴된다.
차일링거 실험에서 '경로를 손으로 막는 행위' 또한 광자의 경로 정보를 비가역적으로 확정하는 측정에 해당하며, 이는 곧 파동 함수($\psi$)를 하나의 확정된 상태로 수축시키는 파동 함수의 붕괴를 유발한다.
이 붕괴의 결과, 양자($\text{광자/전자}$)는 파동성을 잃고 입자처럼 행동하게 되며, 두 경로를 따라 진행하는 파동들 간의 위상 관계가 깨져 양자간섭 현상이 소멸된다. 이는 '양자는 경로 정보가 확정되면 간섭 능력을 잃는다'는 닐스 보어(Niels Bohr) 등이 정립한 상보성 원리에 따른다.
이 글의 도입부에 설명한 이중 슬릿 실험에서 빛의 광자가 스크린에 '안착(측정)'하는 순간 양자 중첩 상태($\psi$)는 파괴된다. 이 측정 행위는 양자역학의 표준 해석(코펜하겐 해석)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전자의 중첩된 모든 가능한 위치 상태들을 단 하나의 고유 상태(불연속적 고정값)로 강제적으로 결정한다.
따라서 중첩 상태는 측정 전(파동으로 간섭)과 측정 후(입자로 확정)를 분리하는 경계 역할을 하며, 이 붕괴 현상이 바로 이중 슬릿 실험에서 경로 정보가 획득되는 순간 간섭 무늬가 사라지고 입자 패턴만 나타나는 물리적 원인이 된다. 이는 양자역학이 내포하는 '비결정성'과 확률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객관적 근거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