⑪ 양자역학의 3가지 측면

양자역학은 세상을 어떻게 설명할까요? 카를로 로벨리가 제시하는 입자성, 비결정성, 관계성을 통해 물질의 본질을 파헤칩니다. 하이젠베르크와 디랙의 이론을 바탕으로, 고정된 실체가 아닌 상호작용하는 사건으로서의 우주를 만나보세요.

세계 속에 있는 것은 확정된 속성을 가진 서로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만, 게다가 상호 작용할 때만 속성과 특징을 갖는 존재들인 것이다. 양자세계는 일시적이고 불연속인 사건들과 상호 작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상호작용은 사건이다.(카를로 로벨리,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김정훈 옮김, 쌤앤파커스, 2023, 제1장 106쪽.)(이미지 출처: AI도움을 받아 pages 제작)

서론

지금까지 로벨리의 번역서 여섯 권이 펼쳐 보인 사유를 따라가기 위해, 나는 로벨리가 제시한 공간의 역사를 더듬어 보았다.

로벨리는 고대의 절대적 공간 개념에서 출발하여, 뉴턴의 기계론적 우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보여준 곡률로 뒤틀린 시공간까지 살펴보며, ‘공간’이라는 대상이 결코 고정된 무대가 아니라 물질과 에너지의 영향을 능동적으로 반영하는 장(場)임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이어 양자역학의 세계로 넘어가 플랑크 상수가 열어 준 미시 세계의 입구를 살폈고, 아인슈타인은 광전효과를 통해 빛이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임을 보여주었다.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과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은 물질의 위치와 운동이 관찰 이전에는 단 하나로 결정되지 않고, 오직 확률로만 예측 가능한 양자중첩 상태임을 확인해 주었다. 차일링거 실험과 이중슬릿 실험은 간섭현상을 통해 이러한 중첩 세계를 설명해 주었다.

그 과정에서 로벨리는 공간을 구성하는 기본 양자인 전자기장, 그리고 그 장을 따라 움직이는 광자와 전자가 어떻게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의 성질을 가지는지를 설명하였다.

이러한 관찰은 공간을 빈 그릇처럼 비어 있는 배경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물질·에너지·관찰 행위가 서로 얽혀 만들어 내는 관계적 구조로 바라봐야 함을 드러낸다. 전자의 위치는 전자 단독의 속성이 아니라, 전자기장·슬릿의 모양과 폭·광원과 검출기의 배치·관찰자의 개입 등과 맺는 상호작용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빛 역시 단순히 직진하는 입자가 아니라, 공간 전체에 확률적 파동으로 퍼져 있다가 관측 순간 불연속적인 값으로 수렴된다. 모든 물질은 입자성을 지니는 동시에, 관측되기 전에는 확률적 존재로 남아 있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따른다.

이러한 양자적 행동은 물리적 대상들이 ‘무대 위의 배우’가 아니라, ‘무대 자체와 얽힌 존재’임을 보여주는 객관적 근거가 된다.

그렇다면 공간은 무엇인가? 전자는 어디에 ‘있는가’? 관찰자는 무엇을 ‘본 것인가’?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로벨리가 제시한 양자역학의 핵심 원리, 곧 ‘관계성’으로 향해야 한다.

그러나 로벨리의 양자역학의 관계성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그 기초가 되는 두 가지 요소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양자 존재가 입자의 성질을 드러내는 방식, 그리고 측정 이전까지 상태가 단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 비결정성이 바로 그것이다. 이 두 특징은 양자가 ‘무엇과 관계하느냐’에 따라 성질을 드러낸다는 관계성의 기반을 이룬다.

따라서 로벨리가 제시하는 자연의 입자적이고 확률적인 구조—입자성과 비결정성—를 먼저 정리한 뒤, 관계성으로 이어가자.

카를로 로벨리는 양자역학의 입자성과 비결정성, 그리고 관계성에 대한 원리를 자신의 저서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김정훈 옮김, 쌤앤파커스, 2018, 131~137쪽)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양자역학의 입자성과 비결정성

입자성

자연에는 근본적으로 입자성이 존재한다. 물질과 빛의 입자성은 양자역학의 핵심이다. 이는 데모크리토스가 직관으로 파악했던 물질의 입자성과 정확히 같지는 않다. 데모크리토스에게 원자란 작은 조약돌 같은 것이었던 반면 양자역학에서 입자들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세계가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발상의 뿌리는 고대 원자론이며, 양자역학은 압데라의 대 철학자의 자연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대로 되살린 것이다.

진자의 진폭을 측정하고 그것이 5센티미터와 6센티미터 사이의 어떤 값을 갖는다고 가정하면, 양자역학 이전에는 그 사이에 무수히 많은 가능한 값들이 있으니까 진자의 가능한 운동상태도 무한히 많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양자역학은 그 사이 진폭 가능한 값이 유한한 수로만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자에 관해서 알지 못하는 정보도 유한한 것이다.

양자역학의 첫 번째 의미는 한 체계 내에 존재할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다는 것, 즉 존재할 수 있는 가능한 상태들의 수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자연의 근본적인 입자성에 대한 데모크리토스의 통찰이 양자역학의 첫 번째 핵심이다. 이 성질은 플랑크 상수로 정량화된다. 플랑크 상수는 에너지·운동량·각운동량과 같은 물리량이 불연속적인 단위로 양자화될 때 그 규모를 결정하는 기본 척도다. 이러한 양자화가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은 연속된 배경이 아니라, 최소 단위를 가진 입자적 구조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플랑크 상수와 중력상수, 빛의 속도가 결합해 정의되는 플랑크 길이는 약 \(10^{-33}\,\text{cm}\)에 이른다. 이 척도는 공간과 시간이 더 이상 고전적 의미의 연속적 배경으로 성립하지 않는 경계를 가리킨다. 이 스케일 아래에서는 기존의 공간·시간 개념이 의미를 잃는다. 즉, 이는 자연이 허용하는 ‘이론적 분해 가능성의 경계’다. 플랑크 길이 이하에서는 거리·시간·에너지의 정의 자체가 불가능해지므로, 자연은 이 규모를 ‘최대 가분성의 한계’로 드러낸다. 다시 말해, 물리적 세계는 이보다 더 작은 구조로 연속적으로 쪼개지지 않는다. 양자역학은 이와 같은 근본적 최소 척도의 존재를 통해 자연의 구조가 본질적으로 불연속적임을 보여준다.

비결정성

이 세계는 입자적인 양자 사건들의 연속이다. 사건들은 불연속적이고 입자적이며 개별적이다. 그것들은 한 물리계와 다른 물리계 사이의 개별적인 상호작용이다. 전자장의 양자인 전자나 전자기장의 양자인 광자는 공간 속에서 경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과 충돌할 때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나타나는 시간과 공간은 예측할 수 없다. 이것이 비결정성이고, 양자역학의 두 번째 근본적인 특징이다.

양자의 비결정성 때문에 세계는 사물들이 끊임없이 무작위적 변화를 겪고 있다.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다. 물론 우리는 어디에나 있는 이러한 요동을 보지 못한다. 너무 작아서 우리가 거시적인 물체를 관찰할 때처럼 큰 척도로 볼 때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돌멩이’의 원자들은 끊임없이 쉬지 않고 진동하면서 요동치고 있다. 양자역학은 이러한 것들이 변화무쌍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준다. 세계는 끊임없는 요동이며, 미소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미시적으로 우글거리고 있는 곳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의 움직임은 충동에 의해 엄격하게 결정된다고 가정하였다. 그러나 후계자인 에피쿠로스는 스승의 “엄격한 결정론”을 수정하여 고대 원자론에 비결정성을 도입한다. 마치 뉴턴의 결정론적 원자론에 하이젠베르크가 비결정성(불확실성)을 도입한 것과 비슷하다. 비결정성은 “불특정 시간에 불특정 장소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확률성은 양자역학으로 빚어진 세계의 두 번째 주요 발견이다.

양자역학의 관계성

하이젠베르크의 관계성

색은 빛의 진동수, 즉 패러데이 선들이 진동하는 속도이다. 이는 또 빛을 방출하는 전하들의 진동에 의해 결정된다. 이 전하들은 바로 원자의 내부를 돌고 있는 전자들이다. 그래서 스펙트럼을 연구하면 전자들이 핵의 주위에서 어떻게 진동하는지를 알 수 있고, 또 역으로 전자가 핵 주위를 도는 전자의 진동수를 계산하여 각 원자의 스펙트럼을 예측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왜 원자가 방출하는 빛은 모든 색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몇 가지 특정 색만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즉, 그 스펙트럼은 연속적인 색이 아니라, 몇 가지 분리된 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왜 연속이지 않고, ‘불연속적’인 것일까?

보어는 원자 내의 전자들의 에너지가 오직 어떤 ‘양자화된’ 값만을 가질 수 있다면 이러한 현상(전자 방출 시 특정 색과 스펙트럼 색이 불연속적인 이유)이 설명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열쇠는 입자성이지만 이번에는 빛이 아니라 원자 속 전자들의 에너지 입자성이다. 자연의 입자성이 아주 일반적인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닐스 보어는 전자가 핵으로부터 어떤 ‘특별한’ 거리에서만, 다시 말해 어떤 특정한 궤도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그 척도는 플랑크 상수 $h$ 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전자들은 허용된 에너지를 갖는 한 원자 궤도와 다른 원자 궤도 사이에서 ‘도약’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이른바 그 유명한 양자도약이다. 보어는 모든 원자의 스펙트럼을 계산하고 심지어 아직 관찰되지 않는 스펙트럼들도 정확하게 예측해낸다.

그렇다면 전자가 ‘도약’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하이젠베르크의 이론에서는 입자들의 위치는 모든 순간 기술되지 않고 오직 특정한 순간의 위치만 기술되는 것이다. 즉, 입자들이 다른 무언가와 상호작용하는 순간만 말이다. 그것은 바로 양자역학의 세 번째 초석인 사물의 관계적 양상이다.

즉, 로벨리의 관계적 관점에서는, 전자는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상호작용에서만 속성을 드러내는 존재다. 다른 무언가와 충돌할 때에 어떤 장소에 물질화된다.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의 ‘양자도약’이 전자가 실재하게 되는 유일한 방식이다. 하나의 전자는 한 상호작용에서 다른 상호작용으로 도약하는 집합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쓰는 대신 숫자표(행렬)를 쓴다. 그는 전자의 가능한 상호작용들을 나타내는 숫자표들을 곱하고 나눈다. 그리고 마치 마법사의 마법 주판처럼, 그의 계산 결과는 관찰된 모든 것들과 완벽히 들어맞았다. 그것이 바로 양자역학의 첫 번째 방정식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이 방정식을 통해 수소 원자의 스펙트럼선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계산해냈다. 이 방정식은 오늘날까지도 결코 틀린 적이 없다.

하이젠베르크의 방정식을 통해 에너지 행렬의 값을 계산하면, 에너지가 아무 값이나 가질 수 없고 오직 특정 값들만 가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E_n =\frac{13.6\ eV}{n^2}(n=1,2,3,…)$

$n=1: 기저 상태(-13.6eV)$

$n=2: 첫 번째 들뜬 상태(-3.4eV)$

$n=3: 두 번째 들뜬 상태(-1.51eV)$

$n=\infty: 이온화$

이 '뚝뚝 끊어진(양자화된)' 에너지 값들은 수소 원자가 특정 색깔의 빛만을 방출하는 이유를 완벽하게 설명해낸다. 고전물리학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었던 현상이었다. 하이젠베르크의 방정식은 수소 원자 속 전자의 운동이 거시적으로는 뉴턴의 법칙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그 에너지 상태는 양자화된 불연속적인 값이라는 핵심적인 사실을 하나의 체계 안에서 완벽하게 설명해 준다.

하이젠베르크의 행렬표(이미지 출처: pages로 제작)

행렬의 각 칸에 들어가는 값은 입자의 두 상태 사이의 '관계' 또는 '상호작용의 크기'를 나타낸다. 행렬을 하나의 표라고 생각하고, 가로줄(행)과 세로줄(열)에 입자가 존재할 수 있는 각각의 에너지 상태(상태1, 상태2, 상태3...)의 번호를 붙여보겠다.

이제 각 칸의 값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각선과 비대각선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명확해진다.

1. 대각선 위치의 값: 그 상태에서의 '평균값'

행과 열의 번호가 같은 대각선 위치($A_{11}$, $A_{22}$, $A_{33}$...)의 값들은 입자가 외부와 상호작용 없이 그 특정 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 가지는 물리량의 평균값(기댓값)을 의미한다.

에너지 행렬(H)의 경우:

$H_{11}$: 전자가 '상태1'에 있을 때의 에너지 값 (예: -13.6 eV)

$H_{22}$: 전자가 '상태2'에 있을 때의 에너지 값 (예: -3.4 eV)

$H_{33}$: 전자가 '상태3'에 있을 때의 에너지 값 (예: -1.51 eV)

따라서 에너지 행렬의 대각선 값들은 수소 원자의 '양자화된 에너지 준위' 그 자체가 된다.

2. 비대각선 위치의 값: 상태 사이의 '전이 확률'

행과 열의 번호가 다른 비대각선 위치($A_{12}$, $A_{21}$, $A_{13}$...)의 상태 사이의 전이 진폭을 나타내는 양자역학의 핵심이다. 이 값들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양자 도약', 즉 전이(Transition)가 일어날 가능성과 세기를 나타낸다.

위치 행렬(X)의 경우:

$X_{12}$: '상태2'에 있던 전자가 빛을 방출하며 '상태1'로 뛰어내릴 확률 및 세기와 관련된 값이다.

$H_{13}$: '상태3'에서 '상태1'로 전이할 확률 및 세기와 관련된 값이다.

이 값이 '0'이라면?

만약 $X_{13}$의 값이 계산 결과 '0'이라면, 이는 '상태3'에 있던 전자가 '상태1'로 직접 뛰어내리는 상호작용은 '금지된 전이(Forbidden Transition)'라는 뜻이다. 즉, 그런 방식의 상호작용은 자연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이 값이 '0'이 아니라면?

값이 클수록 해당 전이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는 의미이며, 원자가 방출하거나 흡수하는 스펙트럼 빛의 세기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숫자표)에서 대각선 값은 각 부품(상태)이 개별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유한 속성값 (예: 각 에너지 상태의 에너지 값)이다. 비대각선 값은 각 부품(상태)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한 정보 (예: 상태 A에서 상태 B로의 전이 확률)이다. 따라서 행렬 하나에는 입자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상태의 정보와 그 상태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호작용의 규칙이 숫자의 형태로 압축되어 표현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이젠베르크는 전자의 연속적인 궤도를 가정하는 대신, 관측 가능한 '상호작용'과 '상태 전이'에만 집중했다. 그는 이러한 물리 현상을 '숫자표' 즉, 행렬로 표현하고, 이 행렬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따르는 규칙을 '방정식'으로 정립함으로써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물리학의 시대를 열었다.

완벽한 건축물: 폴 디랙의 양자역학

이후 영국 물리학자 폴 에드리언 모리 디랙 (Paul Adrien Maurice Dirac, 1902~1984)에게 와서 양자역학은 완벽한 건축물로 변형된다. 디랙은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과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을 하나의 추상적 구조(힐베르트 공간)로 통합했다.

디랙에게 있어 세계는 사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어떻게 나타나며 나타날 때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말해주는 추상적인 수학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디랙의 양자역학에서는 모든 대상이 어떤 '추상적 공간'에 의해서 기술되고, 대상은 질량과 같은 변하지 않는 것 말고 그 자체 어떤 속성도 갖지 않는다. 대상의 위치와 속도, 각운동량(角運動量), 전위 등등은 다른 대상과 충돌할 때에만 실재성을 얻는다. 정의되지 않는 것은 대상의 위치만이 아니다. 한 상호작용과 다음 상호작용 사이에는 대상의 그 어떤 변수도 정의되지 않는다. 이론의 관계적 양상이 일반화된 것이다.

다른 대상과 상호작용하는 중에 갑자기 나타나는 물리적 변수(속도, 에너지, 운동량, 각운동량)는 아무 값이나 갖는 것이 아니다. 오직 특정한 값만 가질 수 있고 다른 값은 가질 수 없다. 이러한 값들은 원자가 방출한 빛의 스펙트럼과 유사하다.

디랙의 이론은 스펙트럼의 어느 값이 다음 상호작용에서 나타날 것인지에 관한 정보를 주는데, 오직 확률로만 준다. 우리는 전자가 어디에 나타날지 확실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여기 또는 저기에 나타날 확률을 계산할 수는 있다. 이는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미래가 확실하게 예측 가능한 뉴턴의 이론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는 변화이다. 바로 이 비결정성이 양자역학의 두 번째 초석이다.

양자역학에서 사건은 일어날 확률만을 계산할 수 있을 뿐이다. 미시적 차원에서는 이러한 결정성의 부재가 자연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전자는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움직이도록 결정되어 있지 않다. 우연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거시적 세계에서 결정성이 나타나는 이유는, 이런 우연이, 이런 미시적 우발성이 만들어내는 변동이 일상생활에서 알아차리기에는 너무 작다는 사실 때문이다.

디랙의 양자역학 덕분에 두 가지를 할 수 있게 된다. 첫째는 한 물리적 변수가 어느 값을 가질 수 있는지를 계산하는 것이다. 이를 ‘변수의 스펙트럼 계산’이라고 부른다. 이는 사물의 바탕에 있는 입자성을 포함한다. 이는 극도로 일반적이다. 모든 물리적 변수에 유효하다. 계산된 값들은, 어떤 대상이(원자, 전자기장, 분자, 추, 돌, 별 등등) 다른 대상과 상호작용할 때(관계성) 변수가 가질 수 있는 값들이다. 디랙의 양자역학 덕분에 할 수 있게 된 두 번째 일은, 다음 상호작용에서 변수의 이 값이나 저 값이 나타날 확률을 계산하는 것이다. 이를 ‘전이 진폭 계산'이라고 부른다. 디랙 이론의 두 번째 핵심은 비결정성, 즉 유일한 예측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확률적인 예측만을 준다는 것이다.

디랙의 방정식은 변수가 취할 수 있는 값들을 결정한다. 이 방정식은 에너지가 오직 특정한 값들만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전자기장의 에너지는 오직 특정한 값만을 취할 수 있으므로, 에너지 묶음들의 집합처럼 행동한다. 이것들이 바로 플랑크와 아인슈타인이 말한 에너지의 양자이다. 디랙의 방정식은 이러한 빛의 입자성을 설명한다.

세계의 구성은 상호작용의 사건들

양자론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물들이 어떻게 ‘나타나게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는지’를 기술한다. 입자가 어디에 있는지 기술하지 않고 입자가 어떻게 ‘다른 것에 자신을 드러내는지’를 기술한다. 존재하는 사물들의 세계는 가능한 상호작용의 세계로 환원된다. 실재는 상호작용으로 환원된다. 이는 상대성을 아주 급진적으로 확장한 것일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오직 상대적인 속도만을 지각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강조했다. 우리가 배 위를 걸어가는 경우에는 그 배에 상대적인 속도를 말한다. 땅에서는 땅에 상대적인 속도를 말한다. 갈릴레오는 이것이 바로 지구가 태양에 대해 상대적으로 움직이는데도 우리가 그것을 직접 느끼지 못하는 이유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속도는 한 대상이 다른 대상에 대해서 갖는 속성이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의 개념을 시간에까지 확장했다. 우리는 두 사건이 주어진 운동에 상대적으로만 동시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양자역학은 이러한 상대성을 급진적으로 확장시킨다. 대상의 모든 특성들은 오직 다른 대상과의 관계에서만 존재한다는 말이다. 자연의 사실들은 오직 관계 속에서만 그려지는 것이다.

양자역학이 기술하는 세계에서는 물리계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가 아니고는 그 어떤 실재도 없다. 사물이 있어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가 ‘사물’의 개념을 낳는 것이다. 양자역학의 세계는 대상들의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기본적 사건들의 세계이며, 사물들은 이 기본적인 ‘사건들’의 발생 위에 구축되는 것이다. 1950년 철학자 넬슨 굿맨(Nelson Goodman, 1906~1998) “대상은 한결같은 과정”, 잠시만 자신을 똑같이 되풀이하는 과정인 것이다. 마치 파도가 바닷속으로 녹아 들어가기 전에 잠시 모습을 유지하듯이, 돌은 잠시 구조를 유지하는 양자들의 진동이다. 로벨리는 세계를 고정된 사물의 집합이 아니라, 상호작용 사건들의 흐름으로 이해한다.

파도는 물 위를 움직여 가지만 한 방울의 물도 나르지 않는다. 파도는, 지속적인 물질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대상이 아니다. 우리 몸의 원자들도 우리에게서 흘러나간다. 우리는 파도처럼 그리고 모든 대상들처럼 사건들의 흐름, 과정일 뿐이다. 잠깐 동안만 한결같은….

양자역학이 기술하는 것은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과정을 기술하고 과정들 사이의 상호작용인 사건들을 기술한다.

결론: 양자역학의 세 가지 측면

로벨리는 양자역학을 통해 아래와 같이 세 가지 측면을 제시하고 그 의미를 분석한다.

(1) 입자성: 계의 상태 정보는 유한하며, 플랑크 상수에 의해 제한된다.

(2) 비결정성(불확실성): 미래는 과거에 의해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보기에 더 엄격한 규칙성조차 실제로는 통계적(확률적)이다.

(3) 관계성: 자연의 사건들은 언제나 상호작용이다. 한 체계의 모든 사건들은 다른 체계와 관계하여 일어난다.

양자역학은 세계를 이러저러한 상태를 가지는 ‘사물’로 생각하지 말고 ‘과정’으로 생각하라고 가르친다. 과정은 하나의 상호작용에서 또 다른 상호작용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사물’의 속성은 오직 상호작용의 순간에만, 즉 과정의 가장자리에서만 입자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그것도 오직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그러하다. 그리고 그 속성들은 단 하나로 예측할 수 없으며, 오직 확률적으로만 예측할 수 있다.

이것이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와 디랙이 사물 본성의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서 밝혀낸 것이다.

이 관계적 세계관은 ‘양자얽힘’이라는 더욱 놀라운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 양자얽힘은 두 물리계가 상호작용을 통해 맺은 관계가, 상호작용이 끝난 뒤에도 특정한 방식으로 유지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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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재는 로벨리 물리학을 소개하는 동심헌(童心軒)의 기획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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