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프 양자중력 이론이 그리는 세상
세상을 설명할 때 시간 변수는 필요치 않다. 변수는 우리가 인지하고 관찰하여 결국에는 측정할 수 있는 양이다. 세상을 설명할 때 변수들이 서로에 대해 어떻게 변화하는지 설명하는 이론이 필요하다. 즉, 다른 것들이 변화할 때 이것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설명하는 이론 말이다.
양자중력 이론은 시간 변수 없이 변량들 간에 성립하는 가능한 관계들을 나타내면서 세상을 설명한다. 이 이론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설명하지 않는다. 사물들이 다른 것들과 관련하여 서로 어떻게 변화하는지, 세상 사물들이 서로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그것뿐이다.
이 이론의 변수들은 물질, 광자, 전자, 원자의 기타 구성 요소들을 형성하는 장들과 중력장을 모두 같은 수준으로 기술한다.
세상은 서로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관점들의 총체와 같다. 세상에서 ‘벗어난’ 것은 아무도 없다.
이것이 루프 양자중력이론이 그리는 세상이다. 그렇다고 이 이론이 통일된 이론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세상을 일관성 있게 설명하는 것 뿐이다.
공간의 원자: 스핀 네트워크루프 양자중력이론의 근본적인 통찰은 공간이 연속적이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중력장의 기본 양자들은 플랑크 규모로 존재한다. 공간의 확장과 시간의 길이를 결정하는 것은 이러한 기본 양자와 이들의 상호 작용이다.
공간은 끊임없이 나뉠 수 있는 무한한 배경이 아니라, 플랑크 길이($10^{-33}cm$) 수준에서 불연속적인 ‘공간의 원자’들로 구성된다.
장fields들은 소립자와 광자, 중력 양자(혹은 공간 양자)와 같은 입자로 나타난다. 이 입자들은 공간 속에 담겨져 있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공간을 형성한다. 세상의 공간성은 입자들 간에 성립하는 상호 작용들의 네트워크에 다름없다.
이 공간 양자들은 노드(nodes)와 링크(links)로 이루어진 관계망 형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를 스핀 네트워크라고 부른다.노드(Nodes)는 네트워크의 각 점들은 '양자화된 부피'를 나타낸다. 즉, 공간의 최소 부피 단위이다. 링크(Links)는 노드들을 연결하는 선들은 그 부피들을 구분하는 '양자화된 넓이'를 나타낸다.
이 스핀 네트워크는 어떤 배경 공간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 자체가 공간을 정의한다. 이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의 핵심 철학인 ‘배경 독립성’을 양자역학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시간의 동역학: 스핀 거품'스핀 네트워크'가 특정 순간의 3차원 공간을 찍은 '사진'이라면, '스핀 거품'은 이 사진들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주는 '동영상'에 해당한다. 스핀 네트워크는 연속적으로 부드럽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도약처럼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불연속적으로 점프하며 이산적으로 변화한다.
스핀 거품은 이러한 변화의 역사를 4차원 시공간 구조로 표현한 것이다. 거품의 각 단면은 특정 순간의 스핀 네트워크이고, 거품의 위상 변화가 시공간의 동적인 진화를 나타낸다.
우리가 거시 세계에서 경험하는 부드럽고 연속적인 시공간은, 이 근본적인 스핀거품들이 엄청나게 많이 모여 평균화된 결과로 나타나는 창발적 현상이다. 창발적 현상이란 개개 부분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행동이 전체 복잡계에서는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1)
블랙홀의 끝과 새로운 시작: 양자 되튐(Bounce)일반상대성이론은 블랙홀 중심에 밀도와 곡률이 무한대가 되는 특이점이 존재한다고 예측한다. 하지만 루프 양자중력이론에서는 공간에 최소 단위가 존재하기 때문에, 물질이 무한히 작은 점으로 붕괴할 수 없다.
모든 에너지가 플랑크 밀도라는 한계에 도달하면, 시공간 양자들의 척력(반발력)이 극도로 강해진다. 이 양자 압력은 중력 붕괴를 멈추게 하고, 물질을 바깥으로 밀어내는 ‘되튐’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블랙홀은 극도로 짧은 시간 동안 ‘플랑크 별'이라는 양자 중첩 상태를 거친 후, 모든 것을 뱉어내는 화이트홀로 전환된다.
"시간이 격렬하게 요동치고 여러 다른 시간들의 양자 중첩이 일어나는 단계"이다. 이 폭발적인 양자 '되튐'이 바로 새로운 우주의 빅뱅일 수 있다는 것이 루프 양자 우주론의 핵심적인 아이디어이다.
루프 양자중력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특이점 정리를 우회하여 블랙홀과 빅뱅의 무한대 문제를 해결하고, 우주가 끊임없이 순환할 수 있다는 매력적인 가능성을 제시하는 강력한 이론 중 하나이다.
블랙홀과 화이트홀
로벨리는 위와 같은 루프 양자중력이 그리는 세상을 자신의 저서 『화이트홀』 (김정훈 옮김, 쌤앤파커스, 2024)에서 제시한다.
로벨리는 "블랙홀 내부에서 멈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순간, 즉 화이트홀의 가능성을 자신의 평생 연구가 도달한 시간 개념의 극점으로 기술한다. 이는 루프 양자중력이 제시하는 순환적 우주론, ‘빅 바운스(Big Bounce)’의 사유적 완성이기도 하다."(이 시리즈 제1편 ① 공간과 시간− 실체인가 아니면 관계인가? 참조)
그가 그리는 시간 없는 세상, 『화이트홀』 과 함께 블랙홀과 화이트홀로 들어가보자.
슈바르츠실트 해
슈바르츠실트 Karl Schwarzschild의 해를 아는가? 1차 대전 중 동부전선에 투입되었던 독일군 중위 슈바르츠실트가 아인슈타인에게 보낸 일반상대성이론 방정식의 해를 말한다. 그 해에는 질량이 있는 물체 주위에서 예를 들어 지구나 태양 주위에서 공간과 시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설명한다. 그가 발견한 해는 질량이 극도로 집중되면 질량 주위에 '구형 표면'인 껍질이 형성되는데, 여기서 모든 것이 기괴해진다. 시간은 정지되고 공간은 질량이 있는 방향으로 긴 깔때기처럼 늘어나는데, 이 '기괴한 구형 표면'에서는 늘어나다 못해 찢어져버린다.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엄청나게 큰 질량을 압축시켜야만 이러한 표면이 형성될 수 있다. 지구가 그런 표면이 형성하려면 지구 전체를 탁구공만한 크기로 압축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이 이야기가 쓸데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토록 질량이 집중된 물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늘에 수십억 개가 있다. 바로 블랙홀이다.
별은 구성 성분인 수소를 연소시켜 헬륨으로 바꾼다. 이 연소로 인해 발생한 열이 만들어낸 팽창력이 별의 무게와 균형을 이루어, 별이 자신의 무게로 짓이겨지는 것을 막는다. 그러나 별의 수소는 언젠가 모두 소모된다. 더 이상 타지 않는 헬륨과 다른 재로 변한다. 온도가 떨어지고 무게가 우세해지기 시작한다. 별은 중력의 영향으로 으스러진다. 큰 별의 중력은 가장 단단한 암석조차도 그 압력을 견딜 수 없다. 별은 지평선 안으로 압축되면서 붕괴한다. 블랙홀이 형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슈바르츠실트 해에서 지평선에서 시계가 멈추고 공간이 찢어진다고 하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슈바르츠실트 해는 지평선 바깥에서 본 공간의 지도와 같다. 하지만 실제 우리가 지평선에 다가가서 그곳을 넘어도 시계는 느려지지 않으며 주위 공간에도 이상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을 '과거-미래 비대칭성'이라고 한다. 요컨대, 지평선 너머 안쪽에 있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멈추지 않는다.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만 지평선 근처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엄청나게 느려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블랙홀의 지평선 근처에서 일어나는 시간 왜곡은 진짜이다. 이곳을 여행하는 지구인은 지구에 남아 이를 바라보는 사람보다 경과한 시간은 더 짧을 것이다. 이것은 관점에 따른 효과가 아니라, 중력으로 인한 실제 시간 왜곡이다. 중력이 강한 곳은 중력이 약한 곳보다 시간이 더 느리게 흐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시공간이 '휘어진다'는 말이 의미하는 것이다. 시간은 장소에 따라 서로 다른 속도로 흐른다.
우리가 지평선에 가까울수록 멀리서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우리가 슬로모션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게 된다는 의미에서 시간이 느려지지만, 만약 우리가 되돌아간다면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시간이 지났을 것이라는 의미에서도 시간이 느려진다. 그러나 지평선에 있는 우리는 시간이 느려지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느쪽이 진짜 시간일까? 둘다 아니다. 지구의 모든 장소는 각자 고유한 시간이 있다. 시간은 장소마다 다르게 흐르며, 그중 어떤 시간도 다른 시간보다 더 '진짜'시간은 아니다.
따라서 지평선 근처에서 시간이 느려지는 것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시간이 흐르는 방식들 사이의 관계와 관련이 있다. 지평선에서 시간이 멈추는 것은 멀리 떨어진 관찰자의 시간과 관계해서만 그런 것이다.
세계는 시간들 사이의 이러한 관계들로 짜여져 있다. 보편적인 시간은 없다. 실재(reality)는 수많은 국소적 시간들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엮어낸 네트워크이다. 가까이서 보면 지평선은 평점한 장소이다. 멀리서 보면 시간은 멈춘 곳이다. 그러므로 어느 것이 '진짜'라는 묻는 질문은 성립하지 않는다.
블랙홀의 밑바닥: 특이점
지평선 너머에서는 빛조차 빠져나갈 수 없다. 블랙홀의 내부공간이다. 이 공간은 "저 아래 눈먼 세계"의 기하학적 구조다. 단테의 지옥과 흡사하다. 블랙홀의 내부는 긴 깔때기처럼 상상할 수 있다. 아주 오래된 블랙홀의 내부 길이는 수백만 광년에 달할 수도 있다. 이 깔때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길어지고 좁아진다. 그러나 깔때기의 길이는 무한하지 않다. 맨 아래에는 스스로 붕괴되어 블랙홀을 만들어낸 별이 여전히 있다.
깔때기가 좁아질수록 시공간 왜곡이 심해진다. 우리는 이제 양자 효과가 개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규모인 플랑크 스케일에 도달하면, 양자 현상의 영역에 진입하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은 여기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영역을 '특이점'이라고 한다.
공간은 뭉개지고 시간은 끝난다. 그래서 특이점의 영역, 즉 양자 영역은 미래에 있는 것이다. 특이점은 블랙홀의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중심에는 계속 떨어지는 별만 있다. 블랙홀을 '중심에 특이점이 있는 고정된 원뿔'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블랙홀을 발생시킨 별이 바닥에 있는 긴 튜브로 생각해야 한다. 이 튜브는 점점 길어지면서 좁아지고, 미래에는 한 줄로 쪼그라든다. 특이점은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 있다. 이로써 우리는 양자영역에 도달한 것이다.
양자영역은 어떤 곳인가? 블랙홀의 미래에서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이 예측하는 특이점을 건너려면 현실을 어떻게 재개념화해야 할까? 특이점의 반대편에 무엇이 있을까? 여기서 로벨리는 유추의 개념을 동원한다. "유추란 한 측면을 취해 다른 맥락에서 재사용하면서 그 의미 중 일부는 유지하고 다른 일부는 버려서, 새로운 조합이 새롭고 효과적인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최고의 과학은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로벨리는 말한다. 뉴런이 의미라고 부르는 것을 엮어내는 유추적 관계의 변화무쌍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때문에, 우리 뇌는 복잡하면서도 동시에 똑똑한 것이다.
양자영역
블랙홀의 특이점이라는 강을 건너려는 핵심 아이디어는, "양자 터널을 통과하면 시간이 뒤집히는데, 이때 통과 전후에 두 시공간을 연결해보자는 단순한 유추였다. 양자 영역에 도달했으므로 이 영역에서 발생하는 양자현상들을 유추해보자는 것이다. 양자터널, 양자도약, 양자중첩 등···.
그중 하나는 "블랙홀이 낙하의 바닥에 도달하면, 공처럼 튕겨서 되돌아갈 수는 없는 걸까?"였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은 모든 기초 물리학의 방정식과 마찬가지로 시간의 방향을 특정하지 않고, 과거와 미래를 구별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과정이 일어날 수도 있다면, 동일한 과정이 시간적으로 역으로 일어날 수도 있음을 말한다.
만약, 블랙홀이 여정의 끝에 도달해 공처럼 튀어 올라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이전에 지나온 길을 되돌아간다면, 그것은 화이트홀로 변한 것이다.
양자영역에 들어가면 튜브가 길어지고 좁아지는 것을 멈추고 튕겨나온다. 튕겨 되돌아가면서, 짧아지고 넓어지기 시작한다. 블랙홀은 들어갈 수는 있어도 나올 수는 없지만 화이트홀은 나갈 수는 있지만 들어갈 수는 없다.
화이트홀
루프 양자중력 이론은 공간과 시간의 양자적 속성이 지배하는 블랙홀의 영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가장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이론이라고 로벨리는 자부한다.
루프 양자중력 이론에 따르면 공간도 양자화되기 때문에 블랙홀의 내부는 개별 입자의 크기보다 더 작게 쪼그라들 수 없다. 블랙홀 내부의 튜브를 짓누르는 수축은 특이점 이전에 멈출 수밖에 없다. 그리고 블랙홀의 내부가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이 금지하는 영역을 건너 양자 터널 효과에 의해 '다른 쪽'으로 넘어갈 수 있다. 또한 시간이 멈추는 '특이점'을 넘어 '점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점프하는 것은 입자가 아니다. 그것은 양자화된 공간이 한 구성에서 다른 구성으로 양자도약하는 현상이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이 시간의 끝이라고 예측된 영역을 건너는 그 순간, 잠깐 동안 시간과 공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블랙홀의 운명은 일반상대성이론이 예측한 시간의 끝을 넘는 도약으로 곧바로 화이트홀로 바뀌게 되는 운명을 맞이한다.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서 호킹 복사를 통해 질량과 에너지를 서서히 소진하며 플랑크 규모에 도달한 블랙홀은, 시공간의 최소 단위가 허용하는 극한의 임계 밀도, 즉 플랑크 규모에 도달한다. 이 상태를 플랑크 별이라고 한다. 이때 일반상대성이론이 예측하는 '무한한 특이점' 대신, 시공간의 양자적 본성이 일으키는 강력한 '척력', 즉 양자적 반등(bounce)이 발생한다.
이 도식은 수축하던 시공간의 기하학적 구조가 양자 터널링을 통해 단절 없이 팽창의 구조(화이트홀)로 전이되는 찰나를 묘사한다.
양자 도약이 블랙홀을 화이트홀로 전이시키는 찰나, 내부에서 소실된 줄 알았던 정보는 화이트홀의 분출을 통해 다시 외부 우주로 생환한다. 즉, 정보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시공간의 기하학적 변형 속에 잠시 갇혀 있다가, 양자 도약을 매개로 다시 우주 밖으로 환수되는 것이다. 이는 거시적 우주의 기원인 '빅 바운스(Big Bounce)'가 미시적 블랙홀 내부에서도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미지 출처: pages 제작)
블랙홀이 화이트홀로 바뀌는 양자적 과정은 3단계이다. 첫 단계는 블랙홀의 기하학 구조에서 화이트홀 기하학 구조로의 내부전이다.(A영역) 두 번째는 반등이다. 위 그림의 밑바닥 C영역에서 일어난다. 이는 빅뱅에서 일어나는 일과 유사하다. 빅뱅은 우주가 양자가 허용하는 최대 밀도에 도달할 때까지 수축한 후 다시 튕겨져 나와 팽창하기 시작하는 거대한 우주적 반등(Big Bounce)이었을 수도 있다. 극도로 높은 밀도에서 양자들이 분리되어 있으면서 압력을 생성하여 더 이상의 압축을 방지하고 반등을 유발하는 것이다. 두 경우 모두 붕괴를 반등으로 바꾸는 압력을 유발하는 것은 양자중력 현상이다.
최대 압축 순간에 극도로 압축된 별을 '플랑크 별'이라고 부른다. 양자중력의 척도인 플랑크 크기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플랑크 별이라는 이름은 별이 블랙홀로 붕괴되고 반등하여 화이트홀이 되어, 모든 것이 다시 나올 때까지의 전체 현상을 가리키기도 한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양자도약이다.(B영역) 지평선이 블랙홀에서 화이트홀로 도약한다. 하지만 이런 도약이 이루어질지라도 중요한 것은 외부에서 보면 블랙홀과 화이트홀은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고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평선은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구별하고 미래와 과거를 구별하지만 외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시간 탄력성의 마법이다. 밖에서 보면 모든 것이 똑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법의 핵심은 내부에서는 공간이 블랙홀에서 화이트홀로 바뀐다는 것이고 외부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밤하늘에서 블랙홀을 관측할 때, 두 가지 상태가 중첩된 기묘한 양자 현상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극심한 중력 때문에 시간이 멈춰버린 '과거'의 껍질을 보고 있다. 그것은 블랙홀이다. 내부의 별은 이미 붕괴를 끝내고 튀어 오르고 있는 '미래'의 상태에 도달해 있다. 화이트홀이다. 즉, 우리가 보고 있는 검은 구멍은 '아직 우리에게 도착하지 않은 화이트홀의 모습'인 셈이다. 우리는 블랙홀이라는 '가면'을 쓴 화이트홀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 지연 효과가 만들어낸 일종의 '정지 화면'으로 보인다.
높은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린 선수가 수면(특이점)에 닿기 직전, 용수철을 밟고 튀어 오르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선수(내부)는 순식간에 튀어 오른다.(화이트홀로 전이) 외부의 관찰자인 우리는 중력이라는 마법 때문에 선수가 공중에서 수십억 년 동안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멈춰 있는 장면을 보며 "저것은 떨어지는 중(블랙홀)이다"라고 말하지만, 선수의 시간에서 그는 이미 "튀어 오르는 중(화이트홀)"이다. 두 사건은 같은 사건이다.
한 얼굴은 물질을 삼키는 과거(블랙홀)를 향해 있고, 다른 한 얼굴은 물질을 뱉어내는 미래(화이트홀)를 향해 있다. 하지만 이 두 얼굴은 서로 다른 두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머리(단일한 천체)에 붙어 있다. 오래된 블랙홀은 '아직 사건 지평선을 뚫고 나오지 못한 화이트홀'이다.
우리가 망원경으로 블랙홀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상자 속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저 고양이는 살아있기도 하고 죽어있기도 하다(블랙홀이기도 하고 화이트홀이기도 하다)"라고 말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매우 흡사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블랙홀은 미래의 화이트홀이고, 화이트홀은 과거의 블랙홀이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 생각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 로벨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블랙홀에서 화이트홀로의 전환에 대해서, 오늘날에도 저는 아직 진실이 우리 손에 쥐어졌다고 확신하지 않습니다."
다시 시간의 문제
화이트홀은 시간이 역전된 블랙홀이다.
하지만 대부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깨진 유리잔은 다시 붙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달걀도 다시 튀어오르지 않는다. 과거와 미래는 다른 것이다.
지금까지 블랙홀의 일생에 대한 재구성은 과거와 미래를 구별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완성하려면 블랙홀의 일생에서 되돌릴 수 없는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이는 다시금 시간의 문제로 이어진다.
블랙홀의 비가역성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은 호킹 복사를 통해 열 형태로 방출되면서 에너지를 잃으면서 점차 질량을 잃고 점점 더 가벼워지고 작아져 지평선이 줄어들게 된다고, 즉 '증발'한다고 주장한다. 열 방출은 비가역적 과정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열이 발생하면 그 과정은 되돌릴 수 없다. 열은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비가역성의 표시이다.
따라서 블랙홀의 생애는 적어도 한 가지는 되돌릴 수 없다. 바로 지평선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지평선이 줄어든다고 블랙홀의 내부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블랙홀은 '목이 점점 좁아지면서 부피가 커지는' 유리병과 같다. 화이트홀로 도약하는 순간의 블랙홀은 지평선은 작지만 내부 부피는 엄청나게 커진다. 플랑크 별의 질량에 의해 공간이 엄청나게 휘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블랙홀이 얼마나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이다. 이는 블랙홀이 화이트홀로 소위 '재탄생'의 가능성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호킹 복사에 의해 오래된 블랙홀은 증발이 많이 되어서 에너지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블랙홀은 여전히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을까?가 논쟁거리였다.
일부는 작은 지평선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정보는 매우 적어서 증발한 블랙홀 안에는 더 이상 정보가 없다고 말한다.
반대로 로벨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 '일부'는 외부에서 감지할 수 있는 블랙홀의 구성요소(질량과 온도), 즉 지평선에 존재하는 구성요소만으로 계산하며 내부의 큰 부피는 무시한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내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로벨리에 의하면 오래된 블랙홀은 외부에서 보면 지평선이 작아 보이지만, 내부의 부피는 극도로 커질 수 있다. 이 거대한 내부에는 여전히 많은 정보가 저장되어 있으며 호킹 복사에 의해 허공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이 정보는 블랙홀이 화이트홀로 전이될 때 간달프처럼 하얗게 변한 후에야 지평선을 통해 밖으로 나온다.
호킹 복사는 되돌릴 수 없다. 뜨거운 난로가 식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블랙홀의 생애도 되돌릴 수 없다. 반등(bounce)도 완전할 수 없다. 공이 튀어오르는 것은 근사치까지만 되돌아가는 현상이다.
역사 전체적으로 보면, 시간적으로 진정한 대칭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비가역적인 현상이 존재한다. 과거와 미래는 다르다는 것이다.
플랑크 별의 운명 또한 이 비가역적인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블랙홀이 임계점에서 화이트홀로 튕겨 나간다 해도, 그것은 태초의 거대했던 모습으로 온전히 되돌아가지는 못한다. 갓 태어난 화이트홀은 자신의 부모인 블랙홀보다 훨씬 작고 왜소한 상태로 세상에 나온다.
그 이유는 블랙홀이 생애 내내 겪었던 '호킹 복사' 때문이다. 양자 세계의 기묘한 현상인 호킹 복사는 '음의 에너지'를 블랙홀 내부로 끊임없이 주입하여 별의 질량을 깎아내린다. 이 과정은 초기 에너지를 대부분 소진시키며 지평선을 극도로 수축시킨다. 시공간의 왜곡이 극에 달해 완전한 양자 영역에 들어서야 비로소 블랙홀은 화이트홀로 도약(전이)하지만, 이때 남은 에너지는 거의 없다.
여기서 에너지와 정보의 여정은 극명하게 갈린다. 별의 에너지는 호킹 복사를 통해 이미 열이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지만(비가역), 정보는 도약이 일어날 때까지 내부의 거대한 부피 속에 온전히 갇혀 있었다(가역). 화이트홀은 다시 성장할 힘은 잃었으나, 양자 도약이 갇혀 있던 정보를 해방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정보가 "밝은 세상"으로 돌아가는 길은 좁고도 길다. 에너지가 고갈된 아주 작은 지평선(구멍)을 통해 방대한 양의 정보(구슬)가 빠져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화이트홀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약한 방사선을 내뿜으며 천천히 정보를 뱉어낸다. 그리고 그 정보가 모두 빠져나가면 플랑크 별의 반등으로 인한 행복한 삶의 여정은 끝난다.
이처럼 블랙홀의 반등(bounce)은 시간 역전에 따른 대칭에 의해 허용되지만, 그래도 시간은 제 방향을 유지한다. 반등의 순간에는 시간적으로 대칭을 이루지만 전체 과정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블랙홀과 화이트홀의 엄청난 시간 왜곡은 시간에 대한 우리의 직관을 비틀지만, 시간의 방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일시 역전된 시간(플랑크 반등)이 있었지만 완전히 과거의 흔적은 지우지 못했다. 과거는 여전히 미래와 다르게 남아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흔적과 기억: 시간의 방향성
시간의 방향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의 우연한 배열 때문이다. 위와 아래가 있고, 남과 북이 있다. 시간의 흐름은 사물이 배열되는 방식을 반영한다.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시간에 내재된 비대칭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가 특수했다는 사실에 비롯된 것이다. 즉 단지 과거에 사물이 어떻게 배열되었는지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플랑크 별도 마찬가지다.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시간에 내재된 비대칭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가 특수했던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래에는 호킹복사가 하늘을 에너지로 가득 채우고 모든 곳으로 에너지를 발산한다. 반면에 과거에는 이 에너지가 붕괴하는 별에 집중되어 있었다. 에너지가 집중되었기 때문에 과거는 특별한 것이다.
과거와 미래를 근본적으로 구분하는 두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하나는 우리는 과거를 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는 고정되어 있고 결정된 것처럼 보인다. 두 번째는 우리가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므로 선택할 수 없다. 미래는 열려 있고 결정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두 개의 수조 중 물이 덜 채워진 수조로 흘러들어가는 것은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성이다. 깨진 달걀이 다시 합쳐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비가역성은 세 가지 요소로 인해 발생한다. (1) 두 수조의 수위가 다르다는 초기 불균형, (2) 이 불균형을 오랫동안 유지해온 격벽, (3) 다시 평형을 이루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이다. 초기 불균형, 가끔 상호작용하는 고립된 시스템, 오랜 시간이 걸리는 평형상태, 이 조건은 우주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즉, 초기 우주는 극도로 압축된 낮은 엔트로피의 불균형 상태였으며, 팽창을 거듭하는 현재까지도 평형 상태에 도달하지 않았고, 격벽(낮은 온도)에 의해 유지되던 수소와 헬륨의 불균형은 별의 탄생을 통해 해소되며, 이는 평형을 향해 나아가는 비가역적인 흐름이며, 태양이 수십억 년에 걸쳐 천천히 방출하는 에너지는 지구로 쏟아져 들어와 생명체라는 비가역적인 자유에너지의 소용돌이를 형성한다.
그러나 핵심은 이것이다. 격벽이 열려 덜 채워진 수조로 물이 흘러가는 것은 물결이 이전에 어떤 일이 일어났음을 증언한다. 바로 격벽의 개방이다. 현재의 무언가가 과거의 사건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다.
흔적, 기억, 기록은 모두 이와 같은 현상이다. 모두 비가역적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1) 시스템이 불균형 상태여야 하고, (2) 때때로 상호작용을 해야 하며, (3) 흔적, 기억, 기록을 담고 있는 시스템이 한동안 평형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
과거의 불균형이 현재에 과거의 흔적이 있는 이유다. 현재에 과거의 흔적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과거의 불균형 때문이다.
과거를 알 수 있는 것, 결정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시간에 내재된 방향이 아니다. 우리가 과거라고 부르는 것은 특정 시점에 사물이 어떻게 배열되어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과거의 불균형 오로지 그것 때문에 흔적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달의 분화구는 충돌의 흔적이자 충돌의 기억이다.
우리 뇌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이 존재하는 것은, 평형상태가 아니었던 한 시스템으로부터 자유에너지가 다른 시스템(필름, 우리의 뇌)에 도달했다는 사실과, 평형을 이루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 덕분이다.
시스템이 완전한 평형 상태에 도달하면, 더 이상 흔적도 기억도 없고, 과거와 미래를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없게 된다. 시간의 파멸에 의해 기억은 희미해지거나 지워진다.
또 다른 비가역적 현상은 우리는 미래는 선택할 수 있지만 과거는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 또한 세상의 불균형에서 나온 결과이다. 선택의 자유(미래와 과거)는 미시적인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일에 대한 거시적인 기술에 관한 것이다.
거시적 세계의 모든 정보(온도, 에너지, 물질 등)는 과거의 불균형이 해소되면서 생겨난다. 모든 기억에 저장된 정보는 과거의 불균형에 내재된 정보에서 비롯된다. 모든 정보의 궁극적인 원천은 다름 아닌 과거 우주의 불균형이다.
우주는 불균형 상태가 돌이킬 수 없이 무너져 내려 수십억 년에 걸쳐 더디게 평형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결과가 원인보다 먼저 오는 것이 아니라 원인 뒤에 오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는 세계의 평형을 향해 나아가는 한 단계이다.
시간의 방향이란 사물이 이러한 평형을 향해 가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물결이 잦아든 수조에서처럼 평형상태의 우주에서는 어떤 현상으로도 과거와 미래를 구분할 수 없다. 우리는 시간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 지 알 수 없다.
그러한 우주에서는 우리에게 훨씬 더 극단적인 결과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된다. 생각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관찰도 추론도 할 수 없다. 감각은 기록, 즉 기억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아무런 감각도 없을 것이다. 평형상태에서는 그런 것들이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생각에는 불균형이 필요하고, 시간에 방향이 있다는 생각이 우리에게는 너무 자연스럽다. 우리의 사고 자체가 시간의 방향성의 자식이다. 초기 불균형의 산물 중 하나인 것이다.
요컨대 시간의 방향은 엔트로피 법칙이 아니라, 오래 지속된 우주의 불균형이 만들어낸 흔적의 총합이다. 그러므로 블랙홀과 화이트홀조차도 시간의 방향이라는 엔트로피 증가 법칙을 거스리지 못해 시간의 잔여물을 남기며 평형 상태로 갈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만약 시간의 흐름이 불균형이 남긴 '흔적'들의 역사라면, 태초의 우주를 가득 채웠던 그 수많은 블랙홀들의 흔적은 다 어디로 갔을까?
블랙홀과 화이트홀의 비대칭적인 생애가 단지 국소적인 현상이 아니라면, 그 과정이 남긴 잔여물은 반드시 어딘가에 존재해야 한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빛과 상호작용하지 않으며, 오직 미세한 중력만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그 끈질긴 기억들 말이다.
과거의 불균형이 우리의 뇌 속에 '기억'이라는 흔적을 남겼듯, 빅뱅 직후의 불균형은 우주 공간에 '화이트홀 잔해'라는 물리적 기억을 남겼다. 한때는 모든 것을 삼키는 거대한 심연이었으나, 격렬한 삶을 마치고 이제는 시간을 거꾸로 돌려 뱉어낸 정보들을 품은 채 작고 안정된 상태로 남은 존재들이다.
이들은 마치 투명한 날개를 가진 "잠자리들"처럼, 우주의 허공을 가볍고 고요하게 부유하고 있을지 모른다.(끝)
🔖 주(註)
1) '창발'의 개념에 대해서는 ( ⑲ 루프 양자중력: 스핀 거품과 시간의 탄생)에서 설명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