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적 시선으로 본 익은 감의 유혹
늦가을, 붉게 물든 감나무를 보았는가? 혹시, 당신을 유혹하던가?
그 감나무 밑으로 가고 싶지 않았는가?
아니라면 거짓말이다.
익은 감은 인간을 유혹하고, 인간이라면 그 매혹적인 색의 유혹에 자신의 탐식 욕망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우리가 가을의 감나무 아래 멈춰 서는 이유는 미학이 아니라 본능이다.
감이 익어간다는 것은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니다.
붉은 껍질, 부드럽고 물컹한 속살, 달콤한 맛,이 모든 것은 감나무가 생존을 위해 구사하는 고도의 언어다.
감나무가 스스로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 위한 정교한 번식 전략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감이 익어가며 붉어지는 이유는 새와 포유류의 시각을 자극해 열매를 눈에 띄게 하기 위해서다. 동시에 전분이 당으로 바뀌고, 떫은맛이 분해된다. 그 결과 당도는 높아지고 맛은 짙어진다.
사진처럼 인간이 감을 먹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감나무에게는 씨앗을 퍼뜨릴 최적의 시점이다.
감나무는 말없이 외친다. “내 익은 감을 먹고 그 속의 씨앗을 멀리 데려가라.”
30억 년, 생명 진화의 광대한 서사에서, 식물은 결코 수동적인 배경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의 유전적 영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동물의 욕망을 능동적으로 설계하고 조종하는, 정교한 전략가이다.
인간이 오랜 세월 익은 감을 탐닉해온 이유는, 이 거대한 생태학적 역학 관계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감나무의 선제적 유혹감나무가 가을에 붉고 달콤한 열매를 맺는 행위는, 인간에게 비타민을 공급하기 위한 이타적 봉사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번식을 위한 치밀한 진화적 설계이다.
감나무는 이동할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풍부한 당분과 비타민을 인간에게 보상하기 위해 열매에 농축시킨다.
이 영양가는 새와 우리 인간 같은 포유류를 유혹하는 강력한 신호로 작용한다.
그들이 유혹에 응하여 감을 먹을 때,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감나무의 번식 파트너가 된다.
그 사이 그들은 씨앗을 삼키게 되고 열매 속의 씨는 더 멀리 이동해 배설과 함께 섞여 나와 발아의 기회를 얻는다. 그것을 배속에 보관하고 있다가 넓은 들판에 배설함으로써, 그들은 감나무의 번식 행위를 대신 수행하는 대리인이 되는 것이다.
이는 감나무가 자손을 남기고 생존을 이어가기 위한 선택한 방식이다. 이동할 수 없는 식물이 동물의 욕망을 빌려 씨앗을 옮기는 것이다.
그래서 과일의 씨는 동물과 인간이 소화시킬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https://en.wikipedia.org/wiki/Persimmon
인간이 느끼는 달콤한 쾌감과 면역력 증진은, 대리 수행에 대한 감나무의 '대리 만족'에 다름 아니다. 유혹이 먼저고, 영양 섭취는 그 결과이다.
밀의 지구 정복 전략밀의 사례는 식물 중심적 관점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다. 밀은 어떻게 전 세계의 광활한 영토를 차지할 수 있었겠는가?
밀은 스스로 인간에게 가장 효율적인 탄수화물 에너지원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이 강력한 영양학적 무기는 수렵 채집 생활을 하던 호모 사피엔스를 한곳에 정착시켰다.
인간은 밀의 번식을 돕기 위해 숲을 개간하고, 물을 대며, 해충을 막는 자발적인 노동자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밀은 인간이라는 강력한 동맹을 통해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식물 중 하나가 되었다. 인간이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밀이 인간을 길들여 자신의 번식 욕망을 채우게 했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공진화(Co-evolution)' 및 '상리공생(Mutualism)'의 개념으로 설명된다. 특히 식물이 동물을 유인하여 씨앗을 퍼뜨리는 전략은, 식물이 동물의 감각과 욕구를 '설계'에 반영한 진화의 명백한 증거이다.
결론적으로, 인간과 감나무는 서로의 생존 전략을 다듬어 온 공진화의 파트너이다. 감나무는 달콤함으로 유혹하고, 인간은 그 유혹에 기꺼이 응하며 감나무의 번식을 돕는다. 이 관계에서 진정한 주도권은, 자신의 번식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내어주는 감나무이다.
인간에 대한 익은 감의 유혹은 감나무의 번식 본능에 의해 설계된 자연선택의 결과다.
반면 덜 익은 감이 떨어지는 현상은 이와 다르다.
나무는 한정된 자원으로 모든 꽃과 열매를 키워낼 수 없다.
햇빛·수분·무기질이 부족하거나 기후와 병충해로 인한 스트레스가 닥치면 일부 열매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남은 열매에 영양분을 집중시키는 ‘자연적 솎아내기’가 일어난다.
그래서 덜 익은 감 가운데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것들은 나무 입장에서는 끝까지 키우는 것이 낭비이고 자신의 생존력 조차도 떨어뜨릴 수 있다. 이것이 면역력이 떨어진 덜 익은 감을 떨어뜨리는 이유이다.
그러한 열매는 버리는 편이 더 이롭다.
https://thesurvivalgardener.com/persimmon-dropping-fruit-early
이와 함께 덜 익은 감이 새와 포유류, 그리고 인간을 유혹하기에 매혹적이지 못한 이유는 유전자를 담은 씨앗의 발달 단계와 관련이 있다.
덜 익은 감은 대체로 씨앗이 형성되지 않았거나, 아직 유전자 발현 세포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이다. 즉, 번식에 필요한 '씨'가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기에, 감나무 입장에서는 그 열매를 매혹적으로 꾸밀 이유가 없다. https://en.wikipedia.org/wiki/Selective_embryo_abortion
익지 않은 감이 떫고 단단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감나무는 미숙한 열매에 에너지를 쏟지 않고, 씨앗이 완전한 생명력을 갖출 때 비로소 색소와 당분을 집중적으로 합성한다.
따라서 감이 ‘붉게 익는다’는 것은 씨앗의 유전자가 완전히 준비되었음을 알리는 번식의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이 원리는 인간 사회에도 비슷하게 작동한다.
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가 제시한 '부모 투자 이론' 에 따르면, 부모는 자신의 자원을 생존 확률이 높은 자식에게 집중하도록 진화해 왔다.
초기 인류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생존 가능성이 낮은 아이를 포기해야 했던 경우도 있었다. 감나무가 덜 익은 감을 버리는 것처럼, 모든 열매(자식)를 지키는 것보다, 성공적으로 번식할 가능성이 큰 열매(자식)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https://aeon.co/essays/the-roots-of-infanticide-run-deep-and-begin-with-poverty
결국 익은 감의 유혹은 성공 전략, 덜 익은 감의 낙과와 매혹되지 못함은 적응 전략이다.
전자는 번식의 확률을 높이고, 후자는 생존의 효율을 지킨다. 두 현상 모두 감나무가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기 위해 제한된 자원과 환경 속에서 최적화를 선택한 방식이다.
인생 또한 이와 닮지 않았을까?
현대 사회는 기대수명의 비약적인 연장으로 이 은유를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중세와 달리 현대인의 스무 살은 꽃이며, 마흔과 쉰은 비로소 무르익는 열매에 해당한다. 예순에 이르러 인생은 완전히 익은 감처럼 농익은 형태를 갖춘다. 이후부터 우리는 서서히 시들며, 여든 셋(우리나라 기대수명을 말함)을 넘기면 감나무가 열매를 떨어뜨리듯 인간도 자신이 간직해 온 것을 내려놓는다.
그러나 이 마지막은 소멸이 아니다. 인간은 유전자와 함께, 자신이 평생 축적한 말과 기억, 사랑과 지혜를 일종의 '밈(meme)' 방식으로 다음 세대에 전달한다. 이는 생물학적 진화를 넘어선 문화적, 정신적 진화의 또 다른 생명의 진화다.
인생사는 수억 개의 정자가 하나의 난자를 차자하려는 순간부터 여든셋이 될 때까지 유한한 자원 속에서 최적의 선택을 거듭하며, 마지막에 자신의 경험을 '밈'으로 남기는 소멸의 과정이다.(끝)
© 동심헌 — 자연의 언어로 진화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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