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행복과 우정

노년(老年)이 되면 활동을 할 수 없고 쾌락을 앗아가는 등 삶이 비참해질 것이라는 관념이 지배적이다. 나이가 들면 쇠락해지니 청춘의 폭력성과 비교하면 노년은, 어떻게 보면 비루해질 수는 있겠다.

그러나 고대 로마제국의 웅변가이자 고전 라틴산문의 창조자로 알려진 키케로(기원전 106∼43년)는 이를 단호히 거부한다. 오히려 노년은 정신적 쾌락을 통해 더 즐겁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정신적 쾌락이란 마치 오래된 포도주처럼 농익은 친구와의 대화이고 왕성한 학구열을 말한다. 키케로는 이를 통해 쾌락의 사슬에서 풀려나게 된다고 말한다.

키케로가 라틴산문으로 쓴 책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키케로 지음,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2005)은 이런 지혜의 산물이다.

이 책은 ‘노년과 우정’에 관해 키케로가 평생의 친구 앗티쿠스에게 헌정한 대화록이다. 적당히 차려진 술상 앞에서 평생지기 친구들이 대화하는 것처럼 노년의 원숙함과 우정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노년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키케로는 말한다.

“세월이 정말로 젊은 시절의 가장 위험한 약점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준다면, 그것은 세월이 우리에게 주는 이 얼마나 멋진 선물인가. 자연이 인간에게 준 역병(疫病) 가운데 쾌락보다 치명적인 것은 없다. 쾌락이 탐욕과 배신과 온갖 범행의 시원임을 깨닫고 우리의 마음이 성욕과 야망 등 온갖 욕망의 전역(戰役)을 다 치르고 나서 노년에 이르러 자신과 ‘화해’하며 산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사납고 잔인한 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온 것처럼 이성과 지혜로도 거부할 수 없는 쾌락의 욕망을 품지 않게 해주는 노년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하여 이제 노년에 이르면 난폭한 쾌락에서 해방되고 욕구가 줄어드니 평화와 행복이 찾아든다. 그러므로 노년에 관해 불평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 노년의 원숙함이다. 마치 오랜 항해 끝에 육지를 발견하고는 항구에 들어서려는 광희(狂喜)한 기쁨이 아닌가! 노년의 완숙함이 몹시도 즐겁구나!

그러고 나서 노년에 친구들과 대화를 통해 우정을 싹틔운다. 대화를 위한 회합(會合)은 ‘함께 살기’ 곧 우정을 위한 것이다. 절제와 술값 분담의 미덕을 발휘하여 부담을 덜고 든든한 우정을 쌓아야 한다. 세월이 인간에게 준 선물들 가운데 우정보다 더 좋고 더 즐거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우정을 앗아가는 자들은 말하자면 세상에서 태양을 앗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정 없는 인생은 인생이 아닌 것이다.

자연과 우주 속의 만물은 정지해 있는 것이든 움직이는 것이든 우정에 의해 결합되고 불화에 의해 분해된다. 불화와 적대감의 결과를 보면 우정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대체 어떤 가정이, 어떤 도시가, 그 어떤 공동체가 증오와 분열에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튼튼하단 말인가!” 이것은 단지 우정에 대한 고매한 레토릭이 아니다. 우정이 모든 사회적 관계의 토대이고, 이 세상에서 우정만큼 가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자네가 마치 자네 자신과 말하듯 무엇이든 마음껏 더불어 말할 수 있는 누군가를 갖는다는 것만큼 감미롭고 즐거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고 공자께서 말씀하였듯이 붕우(朋友)란 ‘학문과 道, 뜻을 함께 하면서 정을 나누는 벗’을 말한다. 이익을 좆아 다니는 패거리는 하루살이 관계이지만 학문과 정(情)을 나누는 붕우는 평생지기(平生知己)이다. 우리 모두 우정을 쌓자!! (끝)

* 이 글은 2022년 1월 대학교 밴드에 올렸던 글인데 다시 이곳으로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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