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지구가 지나고, 이제 지구는 '생명의 무대'로 변모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로버트 M. 헤이즌의 저서 『지구 이야기』를 따라가는 여정, 그 두 번째 시간을 시작합니다.
지난 1편에서는 지구의 탄생부터 거대한 대륙의 형성까지를 다루었습니다. 이번 2편에서는 생명의 기원부터 산소가 대기를 점령하며 시작된 '산소급증사건'이 어떻게 생명체와 광물이 공진화하며 지구의 환경을 변화시켰는지 그 과정에 대해 서술할 예정입니다.
판 지구조 운동의 결과로 태어난 화강암 대륙은 단순한 육지가 아니었습니다. 현무암이 섭입대 속으로 사라진 자리에 남은 화강암 속에는 산소, 규소, 마그네슘 등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원소들이 농축되어 있었습니다. 지구 탄생 5억 년, 척박한 암석의 세계에서 광물은 초기 생명과 공진화를 이루며 자신을 폭발적으로 생산하며 다세포 생명체 탄생의 무대를 마련합니다.
A. Anbar / ASU와 NASA 우주생물학 연구소
살아 있는 지구: 생명의 기원
지구 말고는 어떤 행성도 5억 살 전에 그토록 전면적인 변화의 사건들을 견뎌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구는 이미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이 시기에 지구는 살아 있는 행성이 되었습니다. 생물권이 생겨나고 진화했다는 점에서, 지구는 알려진 다른 모든 행성과 구별됩니다.
"살아 있다"는 의미는 지구가 무생물 행성에서 생물 행성으로 전환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지구는 생명의 원료를 모두 지니고 있습니다. 대양, 대기, 광물 암석 속에는 생명의 5대 필수 원소인 탄소, 산소, 수소, 질소, 황이 충만하게 존재했습니다. 여기에 태양 복사 에너지는 생명 합성에 강력하고 지속적인 동력을 공급했습니다.
특히 탄소는 생명 탄생에 주역을 맡았습니다. 탄소는 원자 구조상 최대 4개의 공유 결합을 할 수 있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형태를 형성할 수 있는 원소입니다. 탄소는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의 근간이 되고, DNA와 RNA의 등뼈를 형성합니다. 오직 탄소 기반 분자만이 번식 능력과 진화 능력을 발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탄소 혼자 생물을 조립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물, 열, 번개와 암석의 화학에너지가 지구의 생명 탄생에 총동원 되었습니다.
생물 발생의 3단계 발전론
로버트 M. 헤이즌은 생물 발생을 3단계로 구분합니다. 그는 "생물 발생은 일련의 단계로 일어났음이 틀림없다."고 말합니다.
1단계: 분자 합성헤이즌은 생명의 분자 구성인 당, 아미노산, 지질 등을 생산하는 단계인 분자 합성을 '벽돌과 회반죽'이라는 은유로 표현합니다. 굳이 설명하자면 건축가가 벽돌을 구워내고 회반죽을 개어 준비하듯, 초기 지구는 생명을 구성하는 핵심 단위 분자들을 "맹렬하게 생산"했습니다.
초기 지구는 번개, 화산 열, 우주 먼지 등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로 당, 아미노산, 지질 같은 생명의 기본 원료를 생산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시카고 대학 교수 해럴드 유리와 그의 대학원생 스탠리 밀러가 1953년 전기 스파크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원시 지구 환경(원시 스프)에서 아미노산 등 유기분자가 쉽게 생성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실험은 생명의 원료들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 광물과 암석의 역할을 배제했다는 한계를 지닌다고 헤이즌은 지적합니다.
밀러–유리 모형은 오랫동안 생명 기원 연구를 지배했지만, 이후 심해 열수공 가설이 등장하면서 고온·고압 환경이 지배하는 지각과 대양 경계면의 화학에너지가 생명의 연료가 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햇빛이 없는 깊은 환경에서도 생명이 번성한다는 가설은, 생명은 지구의 표면이 아니라 지각 깊은 곳에서 기원했을 가능성도 현실화 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에너지원과 함께 탄소를 함유한 분자들을 가지고 있었던 고대의 모든 환경은 아마도 아미노산, 당, 지질과 기타 생명의 분자 구성요소들을 생산했을 것입니다.
또한 아미노산, 당, 지질 등 생체분자의 기본 구성 요소는 소행성이 충돌하는 동안에도, 대기 중 먼지 입자들 위에도, 우주선線(우주 공간에서 오는 방사선)에 노출된 우주 분자 구름과 운석에도 형성됩니다.
2단계: 선별과 농축 (광물의 역할)생명의 원료가 우주와 지구 곳곳에서 만들어졌더라도, 이들이 단순히 바다에 흩어져 있었다면 생명으로 진화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때 단단한 광물은 이 묽은 원료들을 붙잡아 농축하고 조직화하는 '비할 데 없는 잠재력'을 발휘했습니다.
생명체는 왼손형 아미노산과 오른손형 당만을 사용하는 극도의 편향성을 보입니다.1) 자연 상태의 유기물이 50:50의 비율로 존재하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석영($SiO_2$)과 같은 광물은 그 자체가 왼손잡이 혹은 오른손잡이 방향으로 자라나는 키랄성 결정면을 가집니다. 광물 표면의 원자 배열은 분자 규모에서 오목하게 들어간 '손잡이' 역할을 하여, 기하학적으로 일치하는 특정 방향의 분자만을 수용합니다. 지구에 있는 수조 개의 광물 표면은 각기 다른 분자를 선별하고 농축하는 '조그만 실험장치'가 되어, 생명에 필요한 순수한 형태의 분자들을 모았습니다.
광물은 단순히 분자를 붙잡아두는 데 그치지 않고, 복잡한 유기 구조를 만드는 '주형(틀)'이 되었습니다. 카네기 연구소의 연구 결과, 생명의 필수 단위 분자들은 사실상 모든 천연광물(장석, 휘석, 석영 등) 표면에 달라붙습니다. 여러 분자가 광물 표면에서 서로 협력하여 더욱 복잡한 표면 구조를 만들어냈고, 이는 형태 없는 수프에서 고도로 정렬된 생명의 분자들이 출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광물의 표면 위에서 정제된 분자들 중 일부, 특히 지질(Lipid)은 또 다른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지질 분자들은 일정한 조건에서 자발적으로 뭉쳐 속이 빈 구 형태의 '소포체'를 형성합니다. 이 막 구조는 생물 이전의 세계에서 외부 환경과 분리된 독립적인 화학 시스템을 가능하게 했으며, 생명의 기원에서 지질의 자기조립은 필수적인 특성이었습니다.
헤이즌의 주장에 따르면, 생명은 대양과 대기만으로는 탄생할 수 없었습니다. 단단한 광물이 제공한 정밀한 표면과 화학적 환경이 있었기에 생명은 비로소 '선별'되고 '조직'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구가 단순한 바위 덩어리를 넘어 '살아있는 지구'가 된 것입니다.
3단계: 복제 (번식의 시작)분자들의 조합이 자기를 복제하기 시작하면서 생물학적 진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단순한 유기물 덩어리가 '생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복사하는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이에 대해 헤이즌은 3가지 모형을 제시합니다.
시트르산 회로 (화학적 화석)
오늘날 모든 세포에 존재하는 이 회로는 아세트산으로 시작해 점점 덩어리를 키우다가 자발적으로 다시 갈라지며 자기를 복제합니다. 이 과정에서 알라닌과 같은 필수 아미노산이 간단히 합성되므로, 이를 최초의 생명 형태부터 내려온 '화학적 화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가촉매망 (Autocatalytic Network)
수천 가지 화학종이 '한 몸처럼' 일하며 서로의 생산을 촉진하는 복잡한 분자 네트워크입니다. 이 망에 속한 분자들은 자신의 복사를 가속화하는 반면, 망에 속하지 않는 분자들은 파괴하며 분자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만들어냅니다.
이 시스템은 대부분의 무생물 화학계보다 훨씬 더 복잡하며, 스스로의 복사를 촉진하는 특성을 가집니다.
RNA 세계 (만능 분자의 등장)
RNA는 DNA처럼 유전 정보를 담으면서도, 단백질처럼 화학 반응을 촉진하는 촉매(리보자임)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는 '만능' 분자입니다.
하버드 대학의 생물학자 잭 쇼스택의 실험에 따르면, 무작위적인 RNA 서열 중 환경에 더 잘 결합하거나 안정적인 것들이 '선택'되어 살아남으며 1주일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완벽하게 작동하는 기능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기능을 얻는 데에는 지적 설계가 아닌 분자 진화가 가장 빠르고 믿을 만한 경로임을 입증했습니다.
이제 ‘복제’가 시작되면, 생명은 더 이상 화학의 부산물이 아니라 행성의 지질을 재편하는 동력이 됩니다. 그 전환의 결정적 매개는 산소입니다.
자기복제와 생명의 시간
돌연변이는 무의미하거나 치명적입니다. 하지만 소수는 부모보다 더 높은 생존력을 지녔고, 그 결과 분자 수준의 진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우연한 복사 오류는 RNA 계통 일부에 고온·고압·고염 환경에 대한 내성, 더 빠른 복제 속도, 새로운 에너지원 활용 능력, 경쟁 분자의 제거 능력을 부여했습니다. 특히 광물 표면이나 막으로 보호된 RNA는 안정성과 생존 가능성에서 뚜렷한 이점을 누렸습니다. 최초의 자기복제 분자들은 경쟁자가 없었기 때문에, 영양분이 풍부한 환경을 지질학적으로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점유했습니다.
자기복제 속도를 보수적으로 가정해도, RNA가닥 하나가 매주 곱절이 된다고 가정하면, 2년 안에 100만 세제곱킬로미터나 되는 규모의 생물량으로 확산될 수 있습니다. 이는 지중해 전체를 틀어막고도 남는 양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 단세포 생명체는 지구의 지질학 - 표면 근처의 암석 분포나 광물 다양성 - 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없었습니다. 약 40억 년 전의 지구 표면은 여전히 어둡고 불모지였으며, 가장 이른 시기의 생명체는 전 지구에 걸쳐 있는 파란 대양을 바꾸는 데에는 거의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최초의 어설픈 미생물들은 거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므로, 생명이 언제 시작되었다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시작 증거는 있습니다.
약 35억 년 전의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얕은 바다에서 미생물 군체가 형성한 구조물입니다. 그보다 오래된 암석에서 발견되는 탄소의 동위원소 흔적은 존재하지만, 생물 기원의 결정적 증거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생명체는 도대체 언제 생겨났다는 겁니까?
헤이즌은 여기서 두 가지 해석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생명이 행성 조건이 갖추어지면 빠르게 출현하는 보편적 현상이라는 관점으로, 이 경우 생명은 약 44억 년 전, 지구 형성 초기부터 등장했을 가능성입니다. 다른 하나는 생명이 극히 드문 사건이라는 관점으로, 이 경우 약 35억 년 전의 화석이 생물권의 실제 시작을 의미합니다.
초기 생명체와 광물의 공진화
초기 지구에서 맨틀은 더 '환원'되어 있고, 표면은 더 '산화'되어 있었습니다. 전자에 의해서 환원된 화학물질과 산화된 화학물질은 지구 초기 생물체의 에너지원이었습니다.
생명체 출현 이전 지구의 산화 환원・반응은 비교적 느긋한 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최초의 미생물들은 전자를 더 빠른 속도로 뒤섞는 법을 배웠고, 원시 해안선, 표면 근처 수역, 대양저 퇴적물에서 살아 있는 세포들은 이러한 반응의 중재자가 되었습니다.
미생물 공동체들은 암석의 반응 속도를 높이는 것으로 생계를 꾸렸습니다. 즉, 거기서 생기는 에너지를 써서 살아가고 성장하고 번식했습니다. 물론 지구는 처음부터 철산화물을 만들고 있었지만, 최초의 미생물들이 그 속도를 높인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생명체는 몹시 천천히 지구의 표면 환경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미생물은 명왕이언과 시생이언 대양에 환원된 철을 산화시켜 붉게 녹슨 적철석을 형성하였습니다. 이 화학적 변형은 전체 생태계를 부양하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고대의 대륙에서 발견되는 시생이언의 호상(縞狀)철광층은 수천만 년 동안 지속한 미생물 활동의 결과입니다. 그렇게 해서 지구와 생물은 놀라운 공진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미생물 가운데 철이라는 식량 공급원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또는 더 극단적인 조건을 견디는 법을, 또는 새로운 산화・환원 반응을 이용하는 법을 배운 종들이 뚜렷한 이점을 가지고 확실하게 살아남았습니다. 자연선택은 최초의 생물체들에게도 적용되는 다윈의 진화 메커니즘입니다.
지구가 10억 번째 생일을 맞이할 무렵, 생명은 이미 행성 표면에 비교적 하찮기는 해도 단단한 발판을 확립한 상태였습니다. 그 뒤로도 10억 년 동안 지구의 미생물은 처음엔 산화・환원 반응 속도를 높여서, 다음엔 광합성을 통해 표면 근처 환경을 살짝 변화시켰습니다. 심지어 20억 살에도 광물학적으로 표면 변화는 시키지 못하고 철산화물, 석회석, 황산염, 인산염만 더 만드는데 그쳤습니다.
하지만 지구와 지구의 원시 미생물 개체군은 그다음 15억 년에 걸쳐서,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들이 "새로운 묘기"를 익히기 시작했을 때, 지구는 비로소 행성 전체를 변형시키는 극적인 단계로 진입하게 됩니다.
광합성과 산소급증사건
생명이 지구의 표면 환경을 변형시켰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세포가 그러한 변형을 시작하기까지는 10억 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지구 표면을 바꿔놓은 것은 산소였습니다. 이른바 '산소급증사건'이 이 변화를 촉발하였는데, 약 25억 년 전 생명체의 광합성이 그 기점이었음을 암석기록의 미묘한 변화에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2억 년 전 무렵에는 대기 중 산소가 0에서부터 현대 수준의 1% 이상(현대 대기 산소(21%)의 1% 수준 ≈ 0.21%)까지 올라갔고, 이는 지구 표면을 영원히 바꿔놓았습니다.
암석의 증언
산소급증사건의 결정적 증거는 황의 동위원소 분포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대기 중에 고농도로 존재했던 황화합물은 산소가 없어 오존층이 만들어지 않은 상황에서 태양의 자외선 복사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한 가혹한 조건 아래에서 동위원소 황-33($^{33}\text{S}$)을 가진 화합물들은 '질량과 무관한 분별'을 경험합니다. 여기서 '질량과 무관한 분별'은 화학 반응이나 물리적 변화 과정에서 동위원소들이 그들의 질량 차이에 비례하지 않고 특정 동위원소만 비정상적으로 농축되거나 고갈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황-33 동위원소 분별이 태양 자외선을 흡수하여 동위원소비를 왜곡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약 24억 년 전 산소급증사건으로 오존층이 자외선을 차단하는 효과 때문에 황화합물을 보호함으로써 이후부터는 대기 중 황의 '질량 무관 분별'신호가 암석 기록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헤이즌을 비롯한 과학자들은 오존 말고 자외선을 차단하는 다른 방법을 발견하지 못하는 한, 황 동위원소 자료는 산소급증사건의 시작을 약 24억 년 전으로 못박습니다. 25억 살이 넘은 암석에는 부식 효과에 의해 쉽게 파괴되는 광물이 있다는 사실은 그 이전에는 산소가 없었음을 시사합니다.
산소 만들기
현재 지구 산소 생산의 상당 부분은 식물의 광합성에 의해 공급된다는 사실은 자명하지만, 수소 분자들이 우주 공간으로 서서히 사라지는 과정을 통해 수소와 산소로 분리되어 수소가 손실되면서, 물론 대기 분자 1조 개 가운데 한 개도 안 되는 분량으로 산소가 만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또한 초기 미생물들은 빛 에너지를 흡수하며 대기 중의 질소산화물을 분해하는 방법을 통해 산소를 조금씩 뱉어냈습니다. 광합성의 핵심 원료는 물이었으나, 이를 매개하는 초기 미생물들의 광수용체는 태양광을 화학 에너지로 전환하며 지구의 "산소 재고량에 조금은 보탬"이 되었습니다.
광합성이 산소 생성의 챔피언이라는 데는 논쟁의 여지가 없지만, 그렇다면 광합성과 산소 생산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시아노박테리아는 최초로 광합성을 한 생물로 추정되며, 광합성을 통해 지구의 원시 대기에 산소를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시아노박테리아의 생명활동을 통해 스트로마톨라이트가 형성됩니다.(『지구 이야기』, 193쪽)
광합성의 기원을 발견하려면 초기 생명체의 분자 화석을 찾아야 합니다. 미생물의 생존 환경이 고스란히 보존된 지층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증거의 보고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35억 년과 25억 년 두 가지 가설이 존재합니다. 연구자들은 오랫동안 생명의 흔적을 찾기 위해 다음의 세 가지 암석층에 초점을 맞추어왔습니다.
• 검은 처트(Black Chert): 미세한 유기물이 보존되기 유리한 치밀한 규질암.
• 검은 셰일(Black Shale): 산소가 희박한 환경에서 유기물이 쌓여 형성된
퇴적암.
•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 남세균(시아노박테리아) 덩어리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거대한 층상 석회암.
그러나 헤이즌과 지구생물학자 노라 노프케는 여기에 사암(모래 퇴적층)하나를 더 추가하여 그 속에서 생명체의 흔적을 찾고 있었습니다.
헤이즌은 화석 기록에 들어 있는 광합성 역사와 관련된 많은 단서들 중에 미생물 매트가 가장 명백한 단서라고 주장합니다. 미생물들이 층층이 쌓여 형성된 이 구조물은 그 자체가 광합성이 수행되었다는 물리적 결과물이며, 그 속에 가두어진 동위원소는 광합성의 전개 과정을 보여주는 화학적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헤이즌과 노프케는 마침내 남아프리카와 호주의 30억 년 된 사암 지층에서 이 기록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기록은 단순히 모래가 굳은 돌이 아니라 당시 해안가에서 번성했던 미생물 매트가 남긴 생생한 화석적 증거입니다.
그 검은 구조 안에는 탄소가 풍부한 동시에 생명체의 필요조건인 동위원소 표식이 들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발견된 탄소 동위원소 비($\delta^{13}\text{C}$)가 -30‰ 수준이라는 사실은 지질학적으로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는 생명체가 주변 환경에서 가장 가벼운 탄소($^{12}\text{C}$)만을 정교하게 골라내어 자기 몸집을 불리는 데 사용했음을 의미하며, 이는 곧 태양광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광합성 대사가 30억 년 전 이미 완성된 단계에 이르렀음을 입증합니다.
이 발견은 산소 급증 사건으로 지구가 '산소의 시대'에 본격 진입하기 훨씬 전부터, 고대 지구의 모래 해안선을 따라 미생물이 번성했음을 시사합니다.
사암 속에 각인된 동위원소 수치는, 지구가 산소가 풍부한 '산소의 시대'로 본격 진입하기 훨씬 전부터 생명이 태양광을 생화학적 에너지로 변환하는 여정을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산소의 영향력
25억 년 이전의 지구 대기에는 본질적으로 산소가 없었습니다.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의 등장이 약 24억 년 전과 22억 년 전 사이에 극적인 누적적 변화를 일으켰을 때, 비로소 대기 중 산소의 비율이 현대 농도의 1% 이상으로 크게 올라갔습니다. 이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지구의 표면 근처 환경을 변화시키고 더욱 극적인 변화를 위한 길을 닦았습니다.
지구상의 각종 광물들은 대부분 생명 현상의 결과물입니다. 광물은 지권과 생물권의 공진화를 겪으며 진화하였습니다. 헤이즌은 대략 4,500종의 알려진 광물들 가운데 무려 3분의 2가 산소급증사건 이후에 나타났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특히 구리, 우라늄, 철, 망간, 니켈, 수은, 몰리브덴, 기타 많은 원소들에서 유래한 광물의 형성 반응들은 산소가 급증하기 전에는 결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산소의 영향력은 지구가 25억 번째 생일날 육상에서 “극적인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지구가 녹슨 것이었습니다. 산소가 주도하는 표면 풍화작용이 철을 함유하는 화강암과 현무암을 붉은 벽돌빛 토양으로 분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주에서 바라본 20억 년 전 지구의 대륙은 현대의 붉은 행성 화성을 닮았을지 모릅니다.
이러한 화학적 변화로 인해 헤이즌은 산소급증사건이 길을 닦아준 광물이 3,000종에 달한다고 말합니다. 우라늄, 니켈, 구리, 망간, 수은의 수백 가지 새로운 화합물이 생명체가 산소를 생산하는 묘기를 배운 뒤에야 비로소 생겨났습니다. 청록빛 구리 광물들, 자줏빛 코발트 종들, 노랑 내지 주황빛 우라늄 광석들의 생기 넘치는 아름다움은 생명체와 광물이 공진화해온 결과입니다.
마법처럼 변화를 일으키는 원소인 산소가 지구의 기나긴 역사에서 주역을 맡았습니다. 전자에 굶주린 산소 원자는 모든 양태의 광물과 격렬하게 반응해 암석을 풍화시켜버리고 그 과정에서 영양분이 풍부한 토양을 형성합니다. 대기 중 산소 농도가 20억 년 전 이전에 처음으로 상당한 수준까지 높아졌을 때는 광합성을 하는 모든 생명 형태가 대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육지는 생명에게 절대적 불모지였습니다. 하지만 생명체가 전 지구에 걸쳐 궁극적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산소가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지루한' 10억 년: 광물 혁명
지구가 태어난 지 약 27억 년이 지난 시기 그러니까 18억 5,000만 년 전부터 8억 5,000만 년 전까지의 10억은 지구 역사 가장 평온무사했던 시기로 가정됩니다.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사건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새로운 생명 형태가 출현하지도 않았습니다. '지루한 10억 년', 이것이 학계의 통설입니다.
하지만 헤이즌에 따르면, 이것은 지질이라는 특성을 모르고 하는 얘기일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지구에 가장 값나가는 광석들 가운데 일부(납과 아연, 베릴륨, 붕소, 우라늄 등)가 번성한 것으로 보이고, 여러 대륙들이 뭉쳐 하나의 초대륙을 이루었고, 풍부한 미생물들이 얕은 해안과 연안에서 북적대고 있었습니다.
생명이 출현하고, 진화하고, 마침내 산소를 만드는 법을 배운 것은 그토록 역동적이고 가변적인 세계 위에서였습니다. 조숙한 예술가처럼, 지구는 단계마다 새로운 뭔가를 시도하면서 몇 번이고 다시 자신을 재창조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역동적인 지구가 어느 날 문득 무한한 정체기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답은, 지구는 그때도 정체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루한 10억 년'은 새로운 유형의 암석과 귀중한 광상이 형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새로운 광물종이 처음으로 나타난 시기였습니다.
초대륙의 순환
이런 식으로 정보에 근거한 추측을 보태면 더욱더 깊이, 최초의 대륙이 형성되던 시기까지 해양의 지도를 그릴 수 있습니다.
지구의 초기 현무암 지각을 이루던 고밀도 석판들이 갑자기 맨틀 깊은 곳으로 떨어져 내려가는 바로 그 단층선에, 가라앉지 못하는 저밀도 화강암 섬의 조각은 차례차례 쌓여 점점 더 크고 안정적으로 오래가는 육괴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대륙이 된 이 고대의 덩어리를 강괴(剛塊, craton)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이따금씩 뭉쳐서 하나의 거대한 육괴, 즉 대륙이나 초대륙이 되곤 했습니다. 오늘날 지구에는 약 30여 개의 강괴가 보존되어 있으며, 이들은 그린란드, 캐나다, 브라질, 호주 등 대륙의 중추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약 31억 년 전, 흩어져 있던 강괴들이 모여 최초의 대륙 크기 육괴인 '우르'를 형성했습니다. 자기장 데이터에 따르면,최초의 초대륙 '우르'는 약 31억 년 전에 형성되어 30억 년 동안 지속되었다가 약 2억 년 전에 갈라지기 시작하여 지금의 남아프리카, 호주, 인도 대륙이 되었습니다.
27억~25억 년 전에는 우르와 우르의 조각들이 모여서 캐놀랜드라는 초대륙을 형성하였습니다.
그러한 초기 대륙이 형성되자 지구는 처음으로 대규모 침식 사건을 겪었습니다. 산소는 없고 이산화탄소가 가득했던 대기는 탄산을 함유한 산성비를 뿌려 단단한 암석을 무른 진흙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강들은 이 퇴적물들을 얕은 바다 가장자리로 옮겨 두꺼운 삼각주를 쌓았습니다.
하지만 약 24억 년 전 산소가 대기 중에 쌓이기 시작한 때와 같은 무렵, 초대륙은 장기간 분열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강괴들은 적도에서 극지까지 흩어졌습니다. 초대륙은 찢어졌고 조각조각 떨어져나와 대양으로 둘러싸인 별개의 섬 대륙들이 되었습니다. 대륙 하나가 찢길 때마다, 갈라지는 조각들 사이에서 대양이 형성되었고 해양성 퇴적물로 구성된 두꺼운 퇴적층이 생겼습니다. 초대륙은 구축되었다가 찢겨나가기를 거듭해왔습니다. 이른바 초대륙 순환이 시작된 것입니다.
최근의 해석에 따르면, 지구는 아마도 30억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최소한 다섯 번의 초대륙이 조립되었다 분해되었습니다.
앞서 말한 두 번의 초대륙(우르와 캐놀랜드)외 약 20억 년 전부터 지구에는 다섯 개의 대륙 크기 육괴가 형성되었는데, 그중 가장 거대했던 것이 바로 로렌시아 초강괴였습니다. 지금의 북아메리카 중부와 동부를 아우르는 광대한 지역이었습니다. 이때 로렌시아는 우르(Ur), 발티카, 우크라이나 강괴 등을 불러모아 거대한 초대륙을 완성했습니다.
약 19억 년 전에는 남북으로 1만 3,000km, 동서로 5,000km에 달했을 것으로 추산되는 하나의 초대륙이 형성됩니다. 이 초대륙은 로렌시아를 비롯한 지구의 대륙지각 거의 전부를 병합하였습니다. 컬럼비아라고 부르는 세 번째 초대륙이 형성되었습니다.
이 컬럼비아 초대륙이 바로 지루한 10억 년의 출발점입니다.
그럼에도 이 기간 동안 지구의 판 지구조운동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처음 3억 년 구간 동안 새로운 화산이 솟아오르고, 해안이 확장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16억 년 전, 컬럼비아는 찢어지며 다시 로렌시아와 우르로 나뉘집니다. 로렌시아와 우르 사이가 멀어지면서 그 틈으로 거대한 바다가 생겨났고, 그 해안선을 따라 2억 년 동안 무려 15km 두께의 어마어마한 퇴적층이 쌓였습니다. 그리고 16억 년 전부터 14억 년 전까지 빙하가 없었습니다.
이는 지질학적으로는 '정상영업'이었을망정 내부적으로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시기"임을 증명하는 기록입니다.
초대륙의 재현
지루한 10억 년은 초대륙이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형성된 시기였습니다.
약 12억 년 전 우르, 로렌시아를 비롯한 중원생대(약 16억 년 전부터 10억 년 전까지) 대륙들이 재조립을 시작해 로디니아라는 새로운 육괴를 형성했습니다. 네 번째 초대륙 형성이었습니다.
로디니아의 특징은 특정 종류의 암석이 없다는 점입니다. 과거의 30억 년에 속하는 다른 어떤 구간과도 달리, 약 11억 전부터 8억 5,000만 년 전 사이의 기간에 만들어져 보존된 침적 퇴적물은 거의 없었습니다. 적도의 로디니아는 마치 오늘날 호주처럼 내부가 뜨겁고 건조한 사막과 같았습니다.
로디니아 초대륙 형성으로 '지루한 10억 년' 구간에 끝에 다다르게 됩니다. 18억 5,000만 년 전부터 8억 5,000만 년 전까지 지루한 10억 동안 초대륙 두 개(컬럼비아와 로디니아)가 조립되었습니다. 컬럼비아 초대륙이 찢겨나가는 동안 두 무리의 육지(우르와 로렌시아) 사이에 15km 깊이의 퇴적층이 쌓였습니다. 마른 땅은 4분의 1도 안 되었습니다. 빙하도 없었습니다. '지루한' 영겁 치고는 많은 변화입니다.
광물의 폭발
중원생대의 대양은 겉으로는 정체된 듯 보였지만, 그 내부에서는 화학적 재편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대기의 산소 농도가 증가했음에도 대양은 여전히 무산소 상태를 유지했고, 대신 황이 풍부한 환경이 장기간 지속되었습니다. 이른바 ‘중간양(캔필드양)’이라 불리는 이 상태는 산소와 철은 부족하지만 황산염은 풍부한 독특한 해양 화학을 특징으로 합니다. 대양은 대기보다 질량이 250배 이상 크기 때문에, 대기 조성의 변화가 대양 전체에 반영되기까지는 수억 년에서 10억 년에 이르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화학적 조건은 거대한 호상철광층(BIF)의 퇴적을 촉진했습니다. 산소 증가와 육상 풍화의 가속은 용존 철을 산화·침전시켰고, 이는 오늘날 세계 철광 매장량의 상당 부분을 형성하는 층상 퇴적물로 남았습니다. 겉으로는 ‘지루한’ 시기였지만, 실제로는 원소의 이동과 농축, 그리고 광물 형성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재조정된 시기였습니다.
더욱 주목할 변화는 초대륙의 조립과 해체 과정에서 나타났습니다. 약 18억~17억 년 전, 컬럼비아 초대륙이 조립되던 시기에 베릴륨과 붕소 광물 종 수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산소 증가의 직접 효과라기보다, 대륙 충돌과 조산운동이 고온·고압의 유체를 순환시키며 희유 원소를 농축한 결과로 해석됩니다. 실제로 베릴(beryl)과 전기석과 같은 광물은 이 시기에 다양성이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반면 수은 광물은 다른 양상을 보였습니다. 수은의 주요 광석인 진사(황화수은)는 황이 풍부한 중간양 조건에서 쉽게 형성되어 바다 바닥으로 가라앉았고, 그 결과 약 18억 년 전부터 6억 년 전까지 새로운 수은 광물의 등장은 거의 정체되었습니다. 이는 대양 화학이 특정 원소의 광물 다양성을 촉진하기도, 억제하기도 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헤이즌 등 7명의 동료가 2008년 제안한 ‘광물 진화(Mineral Evolution)’ 가설은 이러한 변화를 하나의 연속적 역사로 해석합니다. 지구의 광물 다양성은 태양계 형성 초기의 10여 종 수준에서 오늘날 4,500종 이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약 3분의 2는 산소와 생명 활동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존재할 수 없는 광물들입니다. 즉, 생명과 광물은 서로를 변화시키며 공진화해 왔습니다.
‘지루한 10억 년’은 생물학적 혁신이 드물었던 시기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구 내부에서는 초대륙 순환, 조산운동, 화학적 재편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 결과 베릴륨과 붕소 같은 희유 원소의 농축과 수많은 새로운 광물종의 출현이라는 조용한 혁명이 진행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정체가 아니라, 거대한 "균형" 위에서 서서히 축적된 "잠재력의 시대"였습니다.
결국 8억 5,000만 년 전 무렵, 지구의 표면 근처 환경은 돌이킬 수 없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갈수록 산소가 늘어나던 대양 언저리에는 조류와 기타 미생물이 바글바글했고, 육지는 새로운 생명체로 터져나갈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지루함이라는 이름 아래, 지구는 다음 장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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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재는 로버트 M. 헤이즌의 『지구 이야기』를 소개하는
동심헌(童心軒)의 기획 시리즈입니다."
🔖 주(註)
아미노산의 경우 알파 탄소($Cα$)에 네 가지 서로 다른 치환기, 즉 카복실기($–COOH$), 아미노기($–NH_2$), 수소($–H$), 메틸기($–CH_3$)가 결합해 거울상 한 쌍(L/D)을 만들며, Fischer 투영에서 $–NH_2$가 왼쪽이면 L형, 오른쪽이면 D형으로 구분합니다.
당은 글리세르알데하이드의 경우 비대칭 탄소($C_2$)에 결합한 하이드록실기($–OH$)가 오른쪽이면 D형, 왼쪽이면 L형이며, 포도당·리보스 같은 복잡한 당도 ‘가장 아래쪽 비대칭 탄소’의 $–OH$ 위치를 기준으로 이 규격을 확장합니다.
생명체의 효소와 리보솜은 이러한 한쪽 방향의 입체 구조에 맞춰 진화했기 때문에, 반대 거울상 분자는 활성 부위에 기하학적으로 맞지 않아 반응 효율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진화적으로 한쪽 형태만을 채택하면 효소·대사·유전 시스템을 단일 규격으로 통일할 수 있어 합성 정확도가 높아지고, 에너지 소모와 오류율을 동시에 줄이는 선택적 이점을 얻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생명체는 L-아미노산과 D-당이라는 조합을 표준으로 고정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