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공간의 역사: 원자에서 뉴턴의 '작은 달'까지

공간은 어떻게 물질의 무대가 되었을까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에서 시작해 케플러와 갈릴레이의 발견, 그리고 뉴턴의 '작은 달' 사고실험까지. 지상의 사과와 하늘의 달을 하나의 법칙으로 통합하며 근대 물리학의 문을 연 공간과 중력의 역사를 추적합니다.

알갱이들

공간과 시간, 우리가 지닌 세계관의 기본 개념이다.

이 두 개념은 아인슈타인에 의해 한 차례 변화를 겪었으며, 오늘날에도 계속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은 아인슈타인이 아니었다. 이전에도 수많은 인물들이 세계관을 혁신적으로 바꾸어놓은 적이 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는 전 인류에게 지구가 1초에 30km를 이동한다는 사실1)을 알려주었고, 패러데이와 맥스웰은 공간이 전자기장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밝혀냈으며, 다윈은 인간과 무당벌레가 공통의 조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인류의 세계관이 처음 변화한 것은 이보다도 한참 전의 일이다.

고대 인류에게 공간이란 자연스럽게 '위'와 '아래'로 구성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당시 사람들은 모든 사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지구가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또 다른 땅이나 거대한 거북, 기둥 따위의 견고한 무언가가 밑에서 지구를 받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의 밀레토스라는 도시에 살던 사상가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BC 610-546)는 이 개념을 바꿔놓았다. 지구가 하늘에 떠 있으며 지구 아래로도 하늘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두고 인류 최초의 과학혁명이라고 부른다. 아낙시만드로스의 혁명 후, 하늘은 땅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방을 모두 둘러싸고 있고, 땅은 어딘가로 추락하지 않고 공간 속에 매달린 채 표류하는 거대한 바위가 됐다. 공간 속에 떠 있는 지구의 모습을 상상해낸 그의 역량은 어쩌면 과학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최초의 사례일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세계의 다양한 물체들은 그가 ‘아페이론(apeiron)’, 즉 무한정자라고 부르는 단일한 단순 성분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페이론은 실재를 구성하는 '기본 벽돌'로 여겨진 최초의 이론적 객체로, 원자, 소립자, 물리적 장, 구부러진 시공간, 쿼크, 끈, 루프 등 오늘날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을 재구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개념들의 조상이 되는 개념이다.

1세기 후 아낙시만드로스의 과학 정신은 레우키포스(Leukippos, BC 440~?)와 그의 제자 데모크리토스(Democritus, BC 460~380)가 이어받았다. 두 사상가는 고대 원자론의 장엄한 업적을 이룬다.

데모크리토스와 원자론 이미지
데모크리토스는 그의 스승 레우키포스와 함께 고대 원자론의 방대한 체계를 세웠다. 데모크리토스는 물질이 연속적으로 이어진 덩어리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지는 AI가 생성)
그들은 만물을 이루고 있는 일종의 근본 물질을 생각해냈다. 우주 전체는 끝없는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속에서 무수한 원자들이 돌아다닌다. 공간은 한계가 없다. 위도 아래도 없다. 중심도 경계도 없다. 원자들은 모양 외에는 그 어떤 성질도 갖지 않는다. 무게도 색도 맛도 없다. “관례상 달고, 관례상 쓰고, 관례상 뜨겁고 관례상 차갑고, 관례상 색이 있는 것이지, 실상은 원자와 진공일 뿐이다.”

원자는 나눌 수 없다. 실재의 기본 알갱이로서 더 이상 나눌 수 없다. 모든 것이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들은 공간 속을 자유로이 돌아다니다가 서로 부딪친다. 서로 붙기도 하고 서로 밀치고 당기기도 한다. 비슷한 원자들은 서로 끌어당겨 모인다.

이것이 세계의 짜임이다. 이것이 실재이다. 그 밖의 모든 것은 원자의 운동과 조합이 무작위로 우연히 만들어낸 부산물일 뿐이다. 세계를 이루는 무한히 다양한 물질들도 오로지 원자의 조합에서 파생된 것이다.

원자들이 응집할 때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원자의 모양과 배열, 그리고 그것들이 조합되는 순서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알파벳 문자를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조합해서 희극이나 비극, 웃긴 이야기나 서사시를 쓰듯이, 한없이 다양한 세계도 기본적인 원자들을 조합해서 만들어진다’고 했다.

20세기 후반의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 1918~1988)은 그의 놀라운 물리학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모든 것은 원자로, 즉 서로 조금 떨어져 있을 때에는 끌어당기지만 서로 압착되면 밀쳐내면서 영구 운동을 하며 돌아다니는 작은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것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데모크리토스의 생각은 현대 물리학의 도움 없이도 이미 다다랐던 것이다.

데모크리토스는 관찰이라는 과학적 방법을 통해 물질이 연속적으로 이어진 덩어리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그 어떤 물질이든 유한한 수의 낱낱의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조각들은 유한한 크기를 가졌으면서도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바로 원자를 말하는 것이다.

데모크리토스의 스승인 레우키포스는 무한대로 작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가분성(可分性)에는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주는 연속적이지 않고 알갱이로 되어 있다. 따라서 노끈의 길이는 유한한 크기를 가진 대상들의 유한한 수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노끈은 무한히 자를 수가 없다. 물질은 연속적이지 않다. 유한한 크기의 개별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이후 루크레티우스(Lucretius Carus, BC 99~BC 55)는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라는 문헌에서 원자의 아이디어를 뒷받침하는 논증(생생한 증거)을 제시했다.

"태양의 밝은 빛살 속에서 수많은 작은 입자들이 움직이며 뒤섞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영원한 싸움 속에서 끝없는 전투를 치르듯 쉬지도 않고 끝없이 모였다가 흩어진다. 입자들의 궤도를 바꾸고 뒤로 튕겨 나고 때로는 이쪽 때로는 저쪽 온갖 방향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원자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원자들이 충돌하여 작은 물체들이 생기고, 이 충돌에 의해 그 움직임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데모크리토스가 처음 착상하고 루크레티우스가 제시한 “생생한 증거”를 되살려서, 그것을 수학으로 옮겨 원자의 크기를 계산해냈다. 원자의 크기는 $10^{-10}m$ 이다. 이를 $\mathring{A}$(1옹스트롬)2)이라고 표기한다.

데모크리토스의 세계에는 특별한 개념적 도구들이 있다. 공간 속의 자유로운 직선운동이라는 아이디어, 원소가 되는 물체들이 존재하고 그것들이 상호작용하여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아이디어, 공간이 세계를 담는 용기와 같다는 아이디어가 그 도구들이다. 그리고 사물의 가분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간단한 아이디어가 있다. 세계가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데모크리토스의 아이디어는 원자 가설의 뿌리가 되지만, 양자역학의 중추가 되었다.

공간 개념의 탄생과 운동 법칙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Physics)』 에서 공간을 “사물이 점유하는 가장 바깥 경계”로 정의했다. 즉, 공간은 사물의 외부가 아니라 사물의 일부였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선 하늘과 지구를 구별해야만 했다. 하늘에서는 모든 것이 수정 같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데, 원 운동을 하면서 커다란 동심원을 그리며 지구 주위를 영원히 돌고, 구형의 지구는 모든 것의 중심에 위치한다. 다음으로, 지구에서는 강제된 운동과 본성적 운동을 구별해야 한다. 강제적 운동은 밀침 때문에 생기고 밀침이 끝나면 운동도 끝난다. 본성적 운동에는 위아래 수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물질과 위치에 의존한다. 각 물질에는 ‘본성적 자리’가 있다. 그러니까 물질마다 고유한 높이가 있어서 언제나 거기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흙은 바닥에, 물은 그보다 좀 더 위에, 공기는 좀 더 높은 곳에, 그리고 불(태양)은 훨씬 더 높은 곳에 위치한다. 돌을 떨어뜨리면 아래쪽으로 움직이는데, 본성적 자리로 되돌아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물속의 공기 방울, 공기 중의 불, 그리고 아이들의 풍선도 위쪽으로 움직이는데, 각각 본성적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에게 세계는 연속적인 운동의 질서 속에서 완결된 구체이며, 공간이란 이 질서 안에서 물체가 차지하는 위치의 관계였다. 그에게 빈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무(無)는 존재할 수 없었고, 모든 존재는 어떤 자리에 속해야 했다.

하지만 데모크리토스와 레우키포스는 존재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원자와 그 원자들이 움직일 수 있는 "빈 공간"을 상정했다. 이때부터 공간은 더 이상 사물의 일부가 아니라, 사물들이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배경이 되었다. 이 사유의 전환은 훗날 뉴턴의 절대공간 개념으로 이어지는 씨앗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공간 속 사물의 위치와 운동 법칙을 정량적으로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은 조야하고, 그의 이론으로는 계산을 하지 못했다. 질적인 예측만 가능했다.

따라서 이제 과학은 수학이 필요했고 때마침 피타고라스(Pythagoras, BC 582~BC 497)가 나타나 “수가 형태와 사고를 지배한다”고 했다. ‘수학은 세계를 이해하고 기술하는 최고의 언어다’라는 것이다. 이 통찰의 영향력은 엄청나며, 서구 과학이 성공한 이유 중 하나가 된다.

프톨레마이오스(Ptolemaios, 83~168)는 자신의 책 『알마게스트』 를 통해 겉으로 봐서는 이리저리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행성들의 운동도 체계적이고 정교한 방식으로 제시한 수학 공식을 써서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코페르니쿠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책 『알마게스트』를 면밀히 연구하고, 천체들의 운동을 보다 단순하게 설명하고자 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오래된 지구 중심설을 뒤엎고, 태양을 중심에 두는 ‘지동설’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이론 역시 행성 궤도를 원형이라고 가정했기 때문에, 실제 관측된 행성의 위치와는 오차가 발생했다. 이는 지구 중심설의 복잡한 ‘주전원과 이심’을 제거하려 했지만, 여전히 천문학적 예측의 정확성 면에서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17세기 초,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는 위대한 관측자 티코 브라헤(Tycho Brahe)가 남긴 정밀한 천체 관측 자료를 분석하여, 태양 중심의 우주 체계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수학적 법칙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지구를 포함한 모든 행성이 태양 주위를 돌고 있으며, 그 운동이 일정한 수학적 원리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음을 증명했다. 이로써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철학적 주장에서 정량적 과학 이론으로 끌어올렸다.

케플러는 화성의 운동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모든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원이 아니라 타원 궤도를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밝혀냈다. 이어 케플러는 행성이 궤도를 도는 동안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행성은 태양에 가까워질수록 더 빠르게 움직이고, 멀어질수록 느려진다. 하지만 놀랍게도, 태양과 행성을 연결한 선(반지름 벡터)이 일정 시간 동안 휩쓰는 면적은 항상 일정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법칙은 행성 운동의 가변적인 속도를 정량화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였으며, 이후 뉴턴이 만유인력 법칙을 증명하는 데 결정적인 기초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케플러는 태양으로부터의 거리와 행성의 공전 주기 사이에 일정한 수학적 관계가 있음을 밝혀냈다. 지구보다 태양에서 멀리 있는 행성일수록 궤도도 크고, 한 바퀴를 도는 데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린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정확히 예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의 관점을 지지한 것을 넘어서서, 우주에 내재한 수학적 질서와 조화를 처음으로 명확히 밝혀낸 인물이 되었다. 그의 법칙은 천문학뿐 아니라 물리학, 특히 뉴턴의 고전역학 체계에 핵심적 기반이 되었으며, 결국 우주를 신비의 대상이 아닌 수학으로 설명 가능한 체계적 질서의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케플러가 추운 북쪽에서 하늘 위의 운동들을 계산하는 동안, 이탈리아에서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코페르니쿠스의 체계가 옳다고 믿으며 지구가 행성이라고 확신하고, ‘만일 천체의 움직임이 정확한 수학적 법칙을 따른다면, 그리고 지구가 행성으로서 천체의 한 부분이라면, 지구상에 있는 물체들의 움직임을 지배하는 정확한 수학적 법칙 또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새로운 발상을 하게 된다.

여태까지는 행성의 움직임에 대한 수학적 법칙만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자연의 합리성을 확신하고 자연은 수학을 통해서 이해될 수 있다고 확신한 갈릴레오는 지구상에서 물체를 자유롭게 놓아둘 때, 즉 떨어뜨릴 때 그 물체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연구했다.

갈릴레오는 물체를 떨어뜨리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실험을 통해, 물체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본성적 운동을 하도록 놓아두고 그 떨어지는 속도를 측정했다.

실험 결과 그는 가속도를 발견한다. 즉 속도가 증가하는 비율이 일정하다는 것이다. 물체가 낙하하는 동안 속도가 1초에 $9.8m/s$만큼 증가한다. 가속은 모든 물체에서 똑같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이 지구상의 물체들에 대해서 발견된 최초의 수학적 법칙인 낙하법칙이다.

수학 공식은 $x(t)=\frac{1}{2}at^2$이다. $x$는 낙하한 거리($m$), $a$는 중력가속도(약 $9.8m/s^2$), $t$는 낙하 시간(초)이다.

낙하 운동은, 속도와 시간 관계 $v=at$($v$=낙하 속도), 속도와 거리 관계 $v^2=2ax$와 같이 다르게 기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낙하 시간($t$)이 3초라고 가정했을 때, 거리와 속도를 계산해보자. $x=0.5×9.8×3^2=44.1m$, $v=9.8×3=29.4m/s$이다. 속도와 거리 관계로 계산해도, $v^2=2×9.8×44.1=864.36$ ⇒ $v=\sqrt{(864.36)}≈29.4m/s$가 나온다.

갈릴레오의 실험은 진공 상태에서는 깃털과 쇠공이 동시에 떨어지고, 자유낙하는 등가속 운동임을 발견한 것이지만, 위 방정식은 공기 저항이 없을 때를 가정한 것이고, 현실에서는 공기 저항에 따라 질량이나 형태에 따라 속도 차이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뉴턴과 작은 달

갈릴레오의 법칙은 뉴턴의 제2법칙 $F=ma$를 통해 수학적으로 설명된다. 물체에 작용하는 힘 $F$ 가 중력($F_g$)일 경우, 이 힘은 $F_g = G\frac{M m}{r^2}$ (여기서 $M$은 지구 질량, $m$은 물체 질량)으로 표현된다. 이 두 식을 결합하면 ($F=F_g$), $ma = G\frac{M m}{r^2}$ 이 된다. 양변의 $m$을 소거하면, 물체의 가속도 $a$ 는 오직 지구의 질량과 거리에만 의존함을 알 수 있다: $a = \frac{GM}{r^2}$. 이 $a$ 가 바로 갈릴레오가 발견한 '중력 가속도(g)'이다. 이로써 갈릴레오의 실험적 발견이 뉴턴의 보편 법칙 안에서 수학적으로 증명된다.

뉴턴은 이러한 케플러와 갈릴레오의 성과를 깊이 연구하고 그것들을 결합하여 근대 과학의 토대가 된 책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들(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 줄여서 ‘프린키피아’』를 쓰게 된다.

1687년, 아이작 뉴턴은 『프린키피아』에서 세 가지 운동 법칙을 제시했다. 그중 제2법칙은 힘과 운동 사이의 정량적 관계를 규정한 것으로, 오늘날 고전역학의 근간이 된다.

그는 물체에 작용하는 힘의 크기는 그 물체의 질량과 가속도의 곱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F=ma$ 라는 간결한 식으로 표현했다. $F$는 힘 (Newton, N), $m$은 질량 ($kg$), $a$는 가속도 ($m/s^2$)를 말한다. 이 식의 뜻은 물체에 작용하는 힘의 크기는, 그 물체의 질량과 가속도의 곱과 같다는 것이다. 이 법칙은 힘이란 무엇이며, 힘이 어떻게 물체의 운동 상태를 변화시키는지를 명확히 정의해 주었다.

뉴턴은 갈릴레오의 실험적 법칙을 자신의 제2법칙 속에 통합했다. 낙하하는 물체에 작용하는 힘이 중력일 경우, 제2법칙 $F=ma$ 에서 $a$ 를 중력 가속도($g$)로 바꾸면 $F=mg$ 가 된다. 이 식은 중력의 크기가 물체의 질량에 비례함을 보여주며, 동시에 가속도($g$)가 질량과 무관하게 모든 물체에서 동일함을 수학적으로 설명한다.

이로써 갈릴레오가 발견한 “질량과 관계없이 모든 물체는 동일한 중력 가속도로 낙하한다”는 실험적 결과는, 뉴턴의 운동 법칙을 통해 중력의 보편 법칙으로 확장되었다. 경험적 사실이 수학적 법칙 속에 자리 잡으면서, 중력은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우주 만물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힘으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뉴턴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공식을 ‘작은 달’ 사고실험에 적용했다. 그는 지구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 이를테면 높은 산꼭대기 바로 위에서 지구를 도는 작은 달(저궤도 위성)을 상상했다. 이 작은 달에 충분히 빠른 속도를 주면, 달은 지구 쪽으로 끌려 떨어지려는 중력과 앞으로 나아가려는 관성 운동이 균형을 이루게 된다. 그 결과, 작은 달은 지구 주위를 끊임없이 떨어지면서도 결코 지구 표면에 닿지 않고 궤도를 유지하게 된다. 뉴턴은 이 상황을 수학적으로 계산하여, 지구 위성의 궤도 운동이 바로 중력과 관성의 조화로 설명될 수 있음을 보였다. 이 사고실험은 중력이 사과를 떨어뜨리는 힘이자 달과 행성을 궤도에 묶어두는 동일한 힘임을 명확히 드러내는 결정적 사례였다.

사실 뉴턴 이전에, 요하네스 케플러는 수년간의 관측 자료를 분석하여, 행성의 공전 반경과 주기 사이에 일정한 수학적 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공전 주기의 제곱이 공전 궤도 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법칙이다. 이 법칙은 태양을 도는 행성들뿐만 아니라, 목성을 도는 위성들을 발견했을 때도 위성들의 궤도에서도 똑같이 성립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뉴턴은 이 사실을 더 확장하여, 지구 주위를 도는 가상의 작은 달에도 동일한 법칙이 적용될 것이라고 가정했다.

케플러의 법칙에서 비례 상수는 공전 궤도의 중심이 되는 천체의 질량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지구를 도는 모든 위성은, 궤도 반경만 알면 공전 주기를 계산할 수 있다. 우리는 실제 달의 공전 반경과 주기를 알고 있다. 달은 약 한 달에 한 번 지구를 공전하며, 그 궤도 반경은 지구 반지름의 약 60배(지구와 달 사이의 평균거리)이다. 이 수치를 비례식에 대입하면, 지구 반지름(6,371km)과 같은 궤도 반경에서 도는 작은 달의 주기를 구할 수 있다.

케플러 제3법칙은 $T^2 \propto r^3$이다. 여기서 $T$는 공전 주기이고, $r$은 공전 궤도 반경(공전 중심으로부터의 거리)이다. 즉, ‘공전 주기의 제곱은 공전 궤도 반경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수학적 관계이다. 달이 지구를 도는 경우 비례 상수는 동일하므로 식은 $T_2^2÷ T_1^2 =r_2^3÷ r_1^3$ 로 표현할 수 있다.

실제 달의 값 $T_1$ (실제 달의 공전 주기)은 $T_1 = 27.3\, \text{일} = 27.3 \times 24\,\text{h} = 655.2\,\text{h}$ 이다.

실제 달의 공전 반경($r_1$)은 지구 반지름($R_E$)의 약 60배다. $R_E$는 $6,371km$이고, $r_1$ 은 $60R_E$(반지름의 60배라는 뜻)이다

작은 달(저궤도 위성)의 궤도 반경이 지표 바로 위(지구 반지름 높이)를 돈다고 가정하면, 작은 달($r_2$) $\approx R_E$(지구 반지름)가 된다. 이를 비례식에 대입하면, $T_2^2÷(655.2)^2 = (1)^3÷ (60)^3$ (작은 달 $r_2$ 의 공전 반경은 지구 반지름($R_E$) $6,371km$이고, 실제 달 $r_1$의 공전 반경은 $60R_E \approx 384,000km$이지만 여기서는 1:60비율로 계산) ⇒ $T_2^2 = (655.2)^2×(1÷216,000)$ ⇒ $T_2^2 = 429,287÷216,000$ ⇒ $T_2^2 = 1.987$ ⇒ $T_2 = \sqrt{(1.987)}≈1.41h ≈84.6분$이다.

그런데 실제 달의 공전 주기는 한 달이고 ‘작은 달’의 공전 주기는 85분(실제 대기 저항을 고려하면 90분)이다. 왜 이렇게 차이가 클까?

그것은 케플러의 제3법칙 때문이다. 공전 주기($T$)는 궤도 반경($r$)의 세제곱근에 비례하므로, 궤도가 멀리 있을수록 주기가 훨씬 길어진다. 실제 달의 궤도 반경은 지구 반지름의 60배이고 주기는 약 27.3일이다. 반면 작은 달(저궤도 위성)의 궤도 반경은 지구 반지름 1배이므로 이를 비례식으로 계산하면 주기는 1.5시간밖에 안 된다. 즉, 궤도 반경이 60배 커지면 주기는 약 465배(법칙에 따라 60을 세제곱 한 뒤 제곱근 $\approx \sqrt{216,000} \approx 465$)길어진다. 그래서 90분이 465배 늘어나면 약 27.3일이 되는 것이다. 이 차이는 오늘날 인공위성과 달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국제우주정거장(ISS)은 고도가 약 400km이고 주기는 약 92분이다. 반면 달은 고도가 약 384,400km이고 주기는 약 27.3일이다.

그런데, 공전하는 물체는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방향을 바꾸면 가속한다. 작은 달은 지구 쪽으로 가속이 된다. 이 가속도는 갈릴레오가 낙하 실험에서 측정한 것과 정확히 똑같은 $9.8m/s^2$이다.

이 가속도를 계산하려면 두 개의 방정식을 사용할 수 있다. 하나는 원 운동의 중심 가속도로 계산하는 방법, $a=v^2 ÷r$ 이다. 다른 하나는 뉴턴의 만유인력, 즉 $a=GM ÷r^2$ 이다.

첫 번째 방정식을 계산하면 다음과 같다.

이 경우에는 먼저 궤도 속도($v$)를 구해야 한다. 속도($v$)는 거리($r$)를 시간($t$)으로 나누기 때문에, 여기서 거리($r$)은 지구 궤도의 길이이고, 시간($t$)은 공전 주기 90분이다. 거리는 미터($m$)로 시간은 초($s$)로 환산해야 한다. 지구 반지름은 $6.371 × 10^6(6,371km)$이니까 원둘레는 $2\pi\times 6.371 \times 10^6=4.003\times10^7$ 이다. 90분은 5,400초($s$)다. 속도($v$)는 $4.003×10^7÷5,400=7412m/s$이다. 이제 가속도($a$)를 구하면 $(7412)^2 ÷ 6.371 × 10^6 ≈ 8.63m/s^2$이 나온다.

이 수치는 작은 달의 공전 주기를 공기 저항을 고려한 시간 90분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갈릴레오가 측정한 값과 다르다. 하지만 앞서 케플러의 제3의 법칙에 따라 계산한 ‘작은 달’의 공전 주기 84.6분을 적용하면 속도($v$)는 $7,900m/s$이 나오고, 이를 기준으로 가속도($a$)를 구하면 $(7,900)^2÷ 6.371 × 10^6 ≈ 9.80m/s^2$이 나온다.

두 번째 방정식, 만유인력의 법칙 $a=GM ÷r^2$ 으로 가속도를 계산하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G$ 는 만유인력 상수 $6.67430×10^{-11}$이고, $M$은 지구 질량 $5.972×10^{24}kg$ 이다. $r$ 은 작은 달의 궤도 반경($6.371 × 10^6$ )이다.

우선 $GM$을 계산하면 $(3.986×10^{14})m^3/s^2$ 이고, $r^2$은 $(6.371 × 10^6)^2=(4.058×10^{13})m^2$ 이다. 작은 달의 가속도는 $3.986×10^{14} ÷ 4.058×10^{13} ≈ 9.82m/s^2$ 이다.

첫 번째 방법(궤도 주기)으로 계산한 $9.80 \text{ m/s}^2$ 와 두 번째 방법(만유인력 상수)으로 계산한 $9.82 \text{ m/s}^2$ 는 거의 일치한다. 이 미세한 차이는 궤도 주기를 계산할 때 실제 달의 궤도를 정확한 값(약 $60.3R_E$)이 아닌 $60R_E$라는 근사치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결과는 ‘결과가 같다면 원인도 같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뉴턴은 작은 달이 지구 주위를 돌게 만드는 힘이, 지상에서 물체가 바닥에 떨어지도록 만드는 힘과 본질적으로 같아야 한다고 보았다.

물체가 떨어지도록 만드는 이 힘을 우리는 ‘중력’이라고 부른다. 뉴턴은 작은 달이 지구 주위를 돌도록 만드는 힘도 똑같은 중력이라고 생각했다.

목성 주위를 공전하는 달들은 목성이 끌어당기는 것이고,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들은 태양이 끌어당기는 것이다. 이런 끌어당김이 없다면 모든 천체들은 일직선으로 움직일 테니까. 그러니까 우주는 물체들이 서로 ‘힘’을 끌어당기고 있는 넓은 공간인 것이다. 거기에는 보편적인 힘, 중력이 있다.

이제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정했던 사물의 ‘본성’은 없다. 세계의 중심도 없다. 자유롭게 놓인 사물들은 본성적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직선으로 움직인다. 뉴턴은 작은 달의 간단한 계산에서 중력의 힘이 거리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추론해내고, 그 힘의 크기를 구하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앞서 가속도 계산 때 사용한 이것인데 힘의 크기를 구할 때는 $F=G\frac{Mm}{r^2}$라고 표기하곤 한다. 여기서 ‘중력gravity’을 뜻하는 문자 ‘G’는 오늘날 우리가 ‘뉴턴 상수’라고 부른다. 이 힘은 지구상에서는 물체들을 낙하하게 만들고, 하늘에서는 행성과 위성들을 제 궤도에 붙들어놓는다. 둘 다 똑같은 힘이다.

뉴턴 역학의 세계는 단순하다. 다시 태어난 데모크리토스의 세계다. 광대하고 균질하며 언제나 동일한 공간으로 이루어진 세계, 그 속에서 입자들이 영원히 움직이며 상호작용하는 그리고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런 세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끌어당기는 힘의 영향을 받으며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입자들의 세계다. 뉴턴의 세계는 공간, 시간, 그리고 입자로 이루어진 수학적으로 표현된 데모크리토스의 세계인 것이다.

세계는 거대하고 무한한 공간으로만 이루어져 있고, 그 속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입자들이 서로를 힘으로 끌어당기며 움직인다. 뉴턴의 만유인력은 공간 개념 안에서 수립되었다.

19세기 이래 근대 세계의 모든 기술이 뉴턴의 공식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3세기가 지났지만, 오늘날 우리가 다리를 짓고 기차를 만들고 마천루를 세우고 엔진과 유압장치를 만드는 것도 여전히 뉴턴 방정식에 기초한 이론들 덕분이다. 비행기를 띄우고 일기예보를 하고 보이지 않는 행성의 존재를 예측하고 화성에 우주선을 보내는 법을 아는 것도 그 덕분이다. 근대 세계는 뉴턴의 작은 달이 아니었다면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뉴턴 이론 역시 고도로 세밀한 수준을 다룰 때는 부정확하게 나타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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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재는 로벨리 물리학을 소개하는 동심헌(童心軒)의 기획 시리즈입니다."

🔖 주(註)

1)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 자신은 지구가 '초속 30km'로 움직인다는 이 절대적인 속도를 계산하지는 못했다. 그들이 이 값을 계산할 수 없었던 이유는, 계산에 필수적인 단 하나의 핵심 값, 즉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절대 거리' (약 1억 5천만 km)를 몰랐기 때문이다.

대신 코페르니쿠스는 태양계의 '절대 속도'가 아닌 '상대적인 설계도(비율)'를 수학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그는 지구-태양 간의 거리를 '1 천문단위(AU)'라는 기준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지구에서 관측한 행성들의 움직임과 삼각법을 이용해, 이 '1 AU'를 기준으로 한 다른 행성들의 궤도 크기 비율을 정확하게 계산해냈다. 그가 계산한 지구의 속도는 '1년에 1 AU의 궤도를 돈다'는 상대적인 값이었지, '초속 30km'라는 절대 값이 아니었다.

갈릴레이의 역할은 이 모델이 옳다는 것을 '관측으로 증명'하고 '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는 망원경으로 금성이 달처럼 차고 기우는 모습(금성의 위상 변화)을 발견하여 금성이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결정적 증거를 확보했다. 또한 목성 주위를 도는 위성들을 발견하여 우주의 모든 것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지 않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관성'의 개념을 도입하여 지구가 움직여도 우리가 그 속도를 느낄 수 없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해냈다.

우리가 아는 '초속 30km'라는 값은 이들 사후에, 마침내 '1 AU'의 절대 거리가 측정된 뒤에야 계산될 수 있었다. 1672년 천문학자 조반니 카시니 등이 '시차' 원리(서로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천체를 관측하여 각도 차를 이용하는 방식)를 통해 1 AU가 약 1억 4천만 km(현대 값은 약 1억 5천만 km)임을 최초로 계산해냈다.

이 절대 거리를 바탕으로, 현대의 '속도 = 거리 / 시간' 공식에 대입하면 다음과 같은 계산이 나온다.
1. 거리 (지구 공전 궤도 둘레): $2\pi r \approx 2 \times 3.14159 \times (1억 5천만 \text{ km}) \approx$ 약 9억 4천만 km
2. 시간 (1년): $365.25\text{일} \times 24\text{시간} \times 60\text{분} \times 60\text{초} \approx$ 약 3,156만 초
3. 속도 계산: $\frac{9억 4천만 \text{ km}}{3,156만 \text{ 초}} \approx$ 초속 29.78 km이다.

다시 말해, 코페르니쿠스는 태양 중심의 수학적 설계도(공식)를 제시했고, 갈릴레이는 그것이 타당하다는 관측 증거와 물리적 기반(관성)을 제공했으며, 후대의 과학자들이 결정적인 값(거리)을 찾아내어 마침내 '초속 30km'라는 지구의 속도를 완성한 것이다.

2) 나노미터(nm)와의 관계: $1\mathring{A} = 0.1 \text{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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