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산간 마을 사람들
제주도 남쪽 서귀포 시내에서 $15$분, 제주시에서 $40$분 거리를 달리면 중산간에 고즈넉한 마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제주도를 하나의 원으로 그렸을 때 남쪽의 정중앙에 자리한 이 마을은, 동서남북 모든 도로의 혈맥을 이어주며 편리한 교통의 요지가 되었습니다. 작년 이맘때 육지에서 온 택배 사업가가 이곳에 물류 기지를 세운 것도 이러한 공간적 효율성 때문입니다.
마을은 우뚝 솟은 웅장한 한라산을 정면에 품었습니다. 그 아래 산기슭에는 제주도 숲해설사들이 산책 코스 제1순위로 꼽는 이승악 둘레길이 있고, 그 둘레길을 따라 넓은 초원의 신례목장이 펼쳐집니다. 목장에서 바라보는 저녁 노을은 한라산 줄기를 타고 내려와 마을을 붉게 물들이며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연출합니다.
한라산 성판악 탐방로 정상인 백록담에 닿기 $3.5$km 전, 제주 오름 중 가장 빼어난 풍광을 간직한 사라오름이 있습니다. 행정구역상 이 마을의 산 $2$-$1$번지에 자리한 이곳은 단순한 지번을 넘어 오랜 시간과 생명의 진화적 기억을 응축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마을이 '먹는 물'의 발원지일 수 있습니다.
사라오름의 물은 한라산 현무암 층 사이로 스며듭니다. 보이지 않는 지하의 물길을 따라 흐르던 물은 수악오름 계곡 아래에 다다르고 다시 이 마을의 내창 곳곳에 용천수가 되어 솟아납니다.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물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내창’의 ‘먹는 물’은 단순한 샘이 아니었습니다. 마을의 기억이었고, 삶의 질서였으며, 공동체를 이어주는 숨결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물로 밥을 짓고, ‘쇄-물’을 먹이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살아왔습니다. 가뭄의 계절에도 물은 쉽게 마르지 않았고, 아이들의 놀이와 어른들의 밭일, 그리고 세월의 흔적까지 그 물은 묵묵히 품어왔습니다.
그 물은 지금도 이 마을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한라산 사라오름의 잔잔한 호수는 땅 속으로 스며들며 한 마을의 시간을 지켜왔습니다. 제주도에서 지하수를 직접 길어서 먹는 곳은 이 마을이 유일합니다.
바람은 숲 속에서 속삭이고 물은 현무암 틈 사이를 흐르며 이 마을 내창에 다다를 때면 스스로 맑아집니다. 나무는 물의 길을 지키고 물은 다시 이 마을의 주생산품인 감귤나무를 키워왔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시간을 나누며 살아가고, 물과 나무, 나무와 사람이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곳,
이 마을은 그런 곳입니다.
이 마을의 인구는 1,350여 명 정도입니다. 그러나 마을 규모가 커서 소위 '한질'(큰길)은 한적하여 사람들이 없고, 차는 가끔 다니지만 시끄럽지 않고, "하늘을 휘감고 노래하는 밤바람"과 감귤나무 잎사귀가 스치는 소리만이 마을 사람들의 고된 하루를 위로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50$년 전부터 감귤을 재배해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제주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감귤 주산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귤 농사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농협의 자재창고는, 움직임은 느려도 늘 사람들로 북적이고 농사정보를 얻느라 끊임없는 대화가 이어지는 마을 풍경이 1년 내내 펼쳐집니다. 노지 감귤, 하우스 감귤, 한라봉과 천혜향 같은 만감류 등 여러 품종의 감귤 재배로 마을 사람들은 밤낮없이 땀을 흘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식물과 대화하는 사람그러한 마을 사람들 가운데 여기 특별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는 단순히 감귤을 재배하는 농부가 아닙니다. 그는 식물의 언어를 체득한 '실제 식물학자'라 불러도 무방합니다.
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 일하던 그는 아버지가 남긴 밭에서 과일나무를 가꾸다 식물의 미세한 화학적 신호와 활동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나무가 건네는 미세한 파동에 자기도 모르게 반응하며 식물의 본질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는 농업고등학교를 나왔고 본래부터 온 세상에 식물의 향기가 배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식물은 왜 향기를 내뿜고 꽃은 왜 그토록 아름다운가? 농부의 손길에 따라 과수의 열매는 당도를 차별합니다. 그는, 식물은 인간에게 영혼의 목소리로 말을 걸고 모든 것이 상호작용이며 그래서 자연은 온전한 하나의 전체라고 배웠다고 말합니다.
신경과학자 올리버 색스가 멕시코 남부의 양치류 탐사 경험을 저술한 책 『올리버 색스의 오악사카 저널』에서 식물에 대해 느낀 "강렬한 실재의 감각"1)처럼 그는 이제 식물과 말없이 대화하는 사람, 즉 감각으로 서로를 느낀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봄철 새순이 올라오는 속도, 잎맥을 따라 흐르는 수분의 움직임, 비가 내리기 전 잎의 긴장감, 병해충이 접근할 때 나무가 내보내는 미세한 변화들을 그는 책이 아닌 밭에서 관찰로 알아냈습니다. 그는 이러한 변화를 10년째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기록은 이제 과수농법에 대한 '빅데이터'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의 일지에는, 대기가 건조해지고 기온이 $30$℃를 넘어서는 날 감귤나무가 일제히 기공을 닫고 잎의 각도를 비틀어 스스로 수분 증발을 차단한 흔적을 발견하였다는 내용을 날짜와 함께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그의 일지에는 응애류와 같은 해충이 잎을 공격하기 시작한 날, 피해를 본 나무가 즉각 특유의 휘발성 화학물질을 뿜어내어 이웃 나무들이 선제적으로 방어 태세를 갖추도록 유도한 관찰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2)
이와 관련하여 과학은 식물이 뿌리와 균류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고, 해충의 공격을 받으면 화학물질을 방출해 주변 나무들에게 위험을 알린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3)
나무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색깔로 이야기하고 호르몬 향기로 신호를 보내며 열매의 크기와 잎의 방향으로 자신의 상태를 드러냅니다. 그는 매일 밭을 걸으며 그 신호를 읽어내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그는 안정적인 공무원 생활을 내려놓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용기라고 말하기도 하고 무모함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그것은 선택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귀결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이미 그의 마음은 공무원들 간의 수직적 인간관계 보다 자연과 호흡하며 감귤과 매실나무의 향기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퇴직 후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하여, 현재 그는 약 13,000평의 밭에서 감귤과 매실나무를 키우며 살아갑니다. 한라산 사라오름에서 발원된 물이 지하로 흘러들어오면 그는 옛 어른들처럼 그 지하수를 이용하여 과수 작물들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그가 재배하고 있는 작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과 식물은 서로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위가 어지럽혀진 밭은 나무도 싫어합니다. 시끄러운 소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가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으면 식물은 정말 ‘실재의 감각’으로 듣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는 그렇게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출처 : 동심헌
그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무와 함께 늙어가고, 비가 오는 날에는 땅 냄새를 맡으며 하늘을 읽습니다. 새벽에는 꽃눈을 살피고 저녁에는 가지 끝에 맺힌 작은 열매를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감귤 나무들 사이를 걸을 때마다 그의 몸과 땅은 하나가 됩니다. 몸은 땅에 닿았고, 땅은 그의 몸에 깃듭니다. 아무것도 흡수하지 않는 고요 속에서, 감귤나무 잎사귀가 바람에도 드러나지 않을 만큼 미세하게 떨리는 순간에도 그는 그 변화를 감지합니다. 오랜 세월 그렇게 살아온 그에게 농사는 노동이 아니라 식물과 맺는 대화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농사란 자연을 지배하는 일이 아니라 자연과 상호작용하며 협상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바람이 너무 강하면 나무는 열매를 떨어뜨리고, 비가 너무 많으면 뿌리는 숨쉬기 어려워집니다. 인간은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다만 자연이 보내는 신호를 조금 더 빨리 이해하고 조금 더 겸손하게 대응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밭에는 서두름이 없습니다. 나무가 성장하는 속도에 맞춰 기다리고, 열매가 맺고 익어가는 시간에 자신을 맞춥니다. 인간의 시계가 아니라 식물의 광합성 시계를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자연을 인간이 이용하는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연은 결코 일방적으로 길들여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는 만큼, 자연 또한 인간의 태도에 반응하며 서로 어울리며 살아갑니다.
그가 오랫동안 기록한 영농일지는 단순한 농법의 축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계절과 햇빛, 바람과 비, 그리고 나무가 보내온 수많은 신호를 읽어낸 시간의 기록입니다. 과학은 식물이 화학물질과 전기 신호, 균류 네트워크를 통해 끊임없이 주변과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는 이러한 과학을 이론으로 배운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 경험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언어를 배우고, 로봇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흙 냄새를 맡고, 잎사귀의 미세한 떨림을 느끼며,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기억하는 일까지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생명은 데이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호흡하는 시간의 축적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오늘도 어제와 같은 시간에 밭으로 나가 나무를 살피고, 물의 흐름을 살피며, 계절이 건네는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 할 뿐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평범한 반복이 한 사람을 식물의 언어, 즉 호르몬과 전기 신호를 읽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한라산에서 시작된 물이 현무암을 지나 마을의 샘으로 이어지듯, 그의 조용한 삶도 누군가에게는 오래도록 기억될 작은 물길이 됩니다. 세상은 거대한 사건보다 자신의 자리에서 생명을 존중하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지탱됩니다. 그가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에게 농사란 목적이 있는 수단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고". 하지만 삶은 때때로 행복하고도 외로운 것임을, 60이 넘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진정 농사의 근본을 아는 그를 위로할 것입니다.(끝)
🔖 주(註)
온몸으로 경험하고 세상을 파고드는 식물 지능의 경이로운 세계
요약
조이 슐랭거의 『빛을 먹는 존재들』은 식물이 수동적인 유기체가 아니라, 고도화된 감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환경에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지능적 주체임을 규명합니다.
해당 도서가 제시하는 핵심 주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과학적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 화학적 언어를 통한 능동적 소통: 식물은 포식자의 공격을 받을 때 휘발성 유기 화합물(VOCs)을 대기 중으로 방출합니다. 과학자들은 이 화합물이 인접한 개체들에게 경고 신호로 작용하여, 주변 식물들이 포식자를 퇴치할 방어 화학물질을 선제적으로 분비하도록 유도한다는 사실을 관찰했습니다.
- 균류 네트워크와 사회적 상호작용: 식물은 뿌리를 통해 토양 속 균근균(mycorrhizal fungi)과 거대한 공생 네트워크를 형성합니다. 최신 생태학 연구들은 식물들이 이 연결망을 통해 영양분과 수분을 교환할 뿐만 아니라, 숲의 어린 개체나 병든 개체에게 자원을 우선적으로 분배하는 이타적이고 사회적인 행동 양식을 보여줌을 입증합니다.
- 전기적 신호 전달과 경험의 기억: 식물은 뇌와 신경계가 없음에도 동물과 유사한 전기적 신호를 활용하여 잎에서 발생한 물리적 손상 정보를 개체 전체로 빠르게 전달합니다. 또한, 환경 스트레스를 극복한 식물은 후성유전학적 변화를 일으켜 그 경험을 세포 단위에 저장하고, 이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 종의 생존율을 높입니다.
결론적으로 현대 과학은 생명체를 향한 인류의 오랜 편견을 해체합니다. 식물은 그저 한자리에 머무는 조용한 생물학적 배경이 아닙니다. 이들은 뇌가 없어도 연산하고 근육이 없어도 행동하며, 빛을 먹고 우주의 변화를 온몸으로 감각하는 경이로운 지성입니다.
#영농일지 #데이터농법 #식물지능 #식물의식 #식물의언어 #휘발성유기화합물 #조이 슐랭거 #감귤하우스 #사라오름 #제주중산간마을 #제주감귤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