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의 태동과 함께 나타난 김대중-이희호 여사의 손길이 배부른 아내를 어루만지며 뭐라 말을 걸었지만 이내 사라졌습니다.
비록 통계적 상관관계는 없다할지라도, 태몽은 부모가 아이에게 부여하는 최초의 정체성이자, 한 생명을 맞이하는 경건한 마음의 의례가 됩니다. 따라서 태몽의 기억은 필연적으로 상징과 해석, 그리고 서사의 형태를 동반하게 됩니다.
그날 이후, ‘김대중’은 제 내면의 심연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나는 과거의 단순한 감정적 호감을 넘어, 그가 평생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견고한 정의’라는 가치에 나의 실존적 열망을 투사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제게 단순한 정치인을 넘어 ‘존경’과 ‘인고의 승리’라는 가치를 형상화한 상징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내면의 열망'을 구체화하고자 오래전 『김대중 자서전』(삼인출판사, 2010.)을 탐독하며 그가 통과해온 고난의 시간을 묵묵히 따라갔습니다. 이제 다시 그의 '회고록과 망명일기'를 펼쳐 들며, 김대중의 삶과 사상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김대중의 기록들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 측에 따르면, 김대중의 삶을 담은 자전적 기록은 총 5종의 책이 있다고 합니다.
망명투쟁을 전개하던 시절 일본에서 출간된 『독재와 나의 투쟁』 (1973)이 첫 번째 자서전인데 우리나라에서 『행동하는 양심으로』 (금문당, 1985)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그다음 자서전도 일본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김대중 자서전: 일본에의 메세지』 (1973)으로서 1994년까지 내용만 다루고 있으며 한국어로 번역되어 두 권의 『김대중 자서전: 역사와 함께 시대대와 함께』 (인동, 1999)로 출간되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1997년 『나의 삶 나의 길』 (산하, 1997)이 출간되었으며 이 책은 김대중의 대선 홍보 목적으로 기획한 비교적 얇은 책입니다.
이후 김대중 자서전은 두 편이 더 출간되었으며 김대중 인생 전반을 다루고 있습니다. 바로 『김대중 자서전』 (삼인출판사, 2010.)과 『김대중 육성 회고록』 (한길사, 2024.)이 그것입니다. 이 두 편이 김대중의 대표적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으며 모두 김대중 사후에 발간되었습니다.
두 저작은 모두 수십 차례에 걸친 김대중의 구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록입니다. 『김대중 자서전』은 김택근 작가가 집필하였습니다. 『김대중 육성 회고록』은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연구진이 그의 동영상 육성을 정리해 기록하였습니다.
모두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형성된 한 인간의 기록입니다. 6년 여의 감옥 생활과 3년 여의 망명, 그리고 5번의 죽을 고비 속에서도 민주주의 보편적 가치를 지켜내고 통일을 갈망한 한 사상가의 위대한 여정을 기록하였습니다. 자유, 인권, 평화라는 가치에 대해 어떻게 사유했는지를 보여주는 정신의 기록물입니다.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 권력과 충돌하며 ‘행동하는 양심’을 볼 수 있으며 정치인의 계산보다 한 인간이 인류애를 향한 고독한 사색을 읽을 수 있습니다.
어릴적 회상의 “아련함”, 민주주의에 대한 “분노와 확신”, 취임식 연설 때 보인 “10초의 침묵”과 눈물, 보복 대신 용서를 택한 “강인함”, 그리고 4대 보험, 문화 정책, IT 산업 육성 등으로 이어진 실질적 업적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루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또하나의 기록물이 있습니다.
2025년 발간된 『김대중 망명일기』 (한길사, 2025.)입니다. 이 일기에는 그의 사상에 대해 “주목할 만한 중요한 기록”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집권 구상(72년 12월 16, 12월 19일, 73년 4월 4일 일기)이 담겨 있으며, 통일의 원칙(선민주 후통일), 그리고 훗날 햇볕정책으로 발전하는 철학적 기초(1973년 5월 9일 일기)가 드러납니다. 망명일기를 통해 김대중은 1970년대부터 대한민국의 미래를 구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낯선 타국에서 박정희 정권의 위협과 맞서며 써 내려간 일기들은 내게 하나의 소산구조(散逸構造, dissipative structure)처럼 보였습니다. 주변은 혼돈으로 가득했지만, 그 속에서 스스로를 태워 끝내 내면의 질서를 빚어냈습니다.
고립계가 결국 무질서(엔트로피 증가)로 향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과 달리, 소산구조는 계를 개방하여 에너지를 순환시킴으로써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질서를 창출합니다.
외부의 압박과 무질서한 변동이 임계점에 도달할 때, 시스템은 붕괴하는 대신 스스로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하여 새로운 구조적 안정성을 찾아냅니다.
일정한 평형 상태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요동치며 에너지를 소산(Dissipation)시키는 과정 자체가 생명력의 본질이자 진화의 동력이 됩니다.
물리학자 일리야 프리고진(Ilya Prigogine)은 이 이론으로 $1977$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며, 이러한 시스템이 혼돈이 아니라 ‘질서를 만들어내는 조건’임을 밝혔습니다. 즉, 무질서의 한가운데서 스스로를 소모하며 더 높은 수준의 질서를 조직해내는 과정, 그것이 바로 소산구조입니다.
다시 말해 소산구조는 무질서 속에서 스스로를 태워 질서를 길어 올리는 존재 방식입니다. 외부의 혼돈은 그를 무너뜨리지 않고, 오히려 내면의 구조를 단련하는 에너지로 전환됩니다.
망명 일기 속 인간 김대중
김대중의 망명일기는 총 6권의 작은 수첩에 기록되었습니다. 일기는 1972년 8월 3일부터 작성되어 1973년 5월 11일까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김대중의 망명은 1973년 8월 8일 일본에서 납치되어 강제 종료됩니다. 3개월의 공백이 발생한 것입니다. 김대중 도서관장 박명림은 이러한 시간적 단절을 근거로 “이 상황을 감안하면 최소한 두 권 분량의 일기가 더 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그 두 권의 소재는 확인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김대중의 망명은 계획된 것이 아닙니다. 1971년 대통령 선거 유세 중 자동차 사고로 다친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 일본에 갔다가 유신 선포 소식을 듣고 망명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다리 치료도 국내 의술이 부족해서 일본으로 간 것이 아니라 박정희 정권이 “어떤 음모를 꾸며서 위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국내에서 치료받는 것이 안심이 안 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수술을 하게 되었고 때마침 비상계엄이 선포된 것입니다. (『김대중 육성 회고록』, 287쪽)
일기는 223일을 기록하였습니다. 1972년에 16일, 1973년에 207일의 일기를 썼습니다. 그래서 “형해(形骸)마저 사라져버린 조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단장(斷腸)의 심정으”로 써내려간 일기는 총 223일 되었습니다.
일기는 매일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중정 요원의 미행이 의심되었고, 망명 자금은 늘 부족했으며, 생존과 투쟁을 동시에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는 신문 기고와 연설을 통해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세계에 알렸고, 미국 여러 도시를 돌며 교수와 정치인들을 만나 한국 민주주의를 도와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특히 하버드대의 에드윈 라이샤워 교수는 김대중의 사상과 철학에 깊이 공감한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기록에 절실함을 느끼는 이유는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간 김대중'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일기를 쓰고, 주님께 고통받는 조국의 국민을 보살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처럼 국민과 나라를 사랑하는 정치인이 있나 싶습니다.
아들 “홍업과 꼭 닮은 소년”을 우연히 보았을 때, 그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일기에 적었습니다. 김대중은 아내와 자식들을 걱정하고, 아내와 자식들은 또 아버지를 걱정합니다. 망명이라는 고난 속에서도, 결국 한 인간을 지탱하는 힘은 사랑의 감정이라는 사실을 이 장면은 보여줍니다.
그는 또한 세계적 사상가들의 문장을 읽으며 하루의 느낌을 기록하고, 자신의 마음을 단련합니다.
그 결과물로서 자신이 만들어 가고 싶은 세상이 어떠해야 하는지 적어 놓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높은 지조와 벅찬 감격으로 활기차게 행동하게 하는 것.
이것이 지도자가 이룰 인간 관계다.”
— 1973년 3월 29일, 워싱턴 D.C.
이 짧은 문장은 김대중 정치철학의 핵심을 응축하고 있습니다. 그는 정치는 권력의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관계의 질서를 형성하는 실천으로 봤습니다.
김대중 도서관장 박명림은, 김대중의 망명일기에 대해, “한 줄기 희망조차 찾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전부를 바쳐 이 땅의 민주 회복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 김대중 대통령의 불굴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평가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기록을 이순신의 『난중일기』, 박지원의 『열하일기』, 김구의 『백범일지』와 같은 반열에 올려 놓았습니다.
『난중일기』가 전쟁 한가운데서 나라와 자신을 붙든 기록이라면, 『열하일기』는 문명과 사유의 경계를 넘어선 기록입니다. 김구의 『백범일지』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고 역사를 견뎌낸 기록입니다. 『김대중 망명일기』 역시 절망 속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2년 여의 투쟁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우리 시대가 다시 읽어야 할 귀중한 역사적 문헌입니다.
관계의 기술
김대중의 기록물을 읽다보면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들과 관계입니다.
김대중은 어릴적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정보가 부족한 일제시대에도 그는 신문을 읽으며 지식을 쌓아갔습니다. 분야를 넘나드는 광범위한 독서 편력은 그를 있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김대중은 목포공립상업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하였고, 고3 때 ‘맹자의 왕도정치와 일제의 식민정치를 비교’한 보고서(『김대중 육성 회고록』, 40쪽)를 작성할 정도로 이미 식자(識者)의 위치에 올라섰습니다. 국회의원 시절 국회도서관을 안방처럼 드나들었고, 기네스북에 등재된 5시간의 필리버스터는 독서의 위력을 보여준 특별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인 이희호 여사는 이를 두고 “김대중은 책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빨아들이는 힘’이 관계와 설득의 기술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대중은 늘 민주주의 운영의 대원칙, 즉 다양성, 차이에 대한 인정과 존중을 투과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사업(해운업과 신문사 운영)에 성공하고 정치에 뛰어들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며 ‘아시아의 지도자’로 우뚝서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관계 형성과 설득의 기술은 결국 독서에서 비롯됩니다. 김대중은 특히 외국 정상과의 회담에서 역사적 사실을 현재의 상황과 연결하여, 상대를 이해하고 설득하는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빌 클린턴 대통령과의 일화입니다. 르윈스키 스캔들로 정치적 위기에 처했을 때, 김대중은 토마스 제퍼슨의 사례를 들어 조언했습니다. 그는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해석하는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대중은 영국 감리교의 역사를 자세히 설명하며 부시의 종교적 배경과 정서에 깊이 다가갔습니다. 부시가 감리교인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단순한 지식의 과시가 아니라 상대를 이해한 설득의 기술이었습니다.
중국 주석 장쩌민과의 관계는 마치 동네 선후배 같았습니다. 장쩌민은 김대중보다 두 살 아래인데 그는 김대중을 소위 큰 형님을 뜻하는 ‘따거大哥(dà gē)’라고 불렀습니다. ‘따거’는 외교적인 수사가 아니라고 합니다. 중국에서 “진심으로 높이 평가하는 사람”을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이렇게 김대중은 엄청난 독서와 그로부터 얻은 정보를 통해 관계를 형성하고 대화와 설득의 기술을 발휘합니다. 이 대화와 설득이 김대중 정치의 기본 철학입니다.
이 설득의 기술로 관계를 형성하며 IMF 때 수많은 투자를 이끌어내며 국난을 극복했고,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으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김대중에게 정치란?
민주주의 사회에서 김대중은 기본적으로 정치인입니다.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과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김대중의 정치 노선김대중이 정치의 길을 결심하게 된 최초의 계기는 국민방위군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6·25 전쟁 중인 1951년 초, 국민방위군 고위 간부들이 군 예산과 물자를 횡령함으로써 약 50만 명의 방위군 가운데 12만 명 이상이 아사·병사·동사로 희생된 비극적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정치에 나서겠다고 결단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52년의 부산정치파동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국가 권력이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과정을 목격하게 했고, 김대중으로 하여금 “내가 정치를 해서 나라를 바로잡겠다”는 결심에 이르게 했습니다. (『김대중 육성 회고록』, 105쪽)
김대중은 공산주의를 철저하게 반대했습니다.
김대중은 진정한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부의 집중을 막고 빈부격차를 줄여서 사회적인 통합과 안정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반공의 길이라고 강조했습니다.(『김대중 육성 회고록』, 171쪽) 시장경제를 주장했으며 평화통일을 내세웠습니다. 이러한 신념과 가치는 결코 흔들린 적이 없다고 김대중은 회고록에서 숱하게 밝혔습니다.
이러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병행 발전'은 김대중이 대통령 시절 국정운영의 기본 철학이었습니다.
김대중은 박정희 정권의 경제성장으로 나라가 부강해졌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개발 독재가 불균형과 불평등을 야기시킨 점을 지적합니다. 지역 간, 계층 간, 산업 간 불균형 발전으로 인해 경제발전의 성과가 소수에게 집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대중은 부의 편중을 막고 노동자, 농민, 빈민 등의 경제적 생활안정을 이루고 중산층 중심의 계층 구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특히 기술력을 갖춘 다수의 중소기업을 함께 발전시켜야 경제의 기반이 튼튼해진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경제 철학의 결정체가 바로 박정희의 개발독재에 반대하면서 대안으로 내세운 대중경제론입니다. 그는 "해운사업을 하면서 경제의 흐름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이웃들의 삶에 대해서 배웠다."(『김대중 육성 회고록』, 47쪽)고 회고합니다. 이는 그의 경제 철학이 관념이 아니라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길러낸 실천적 지혜임을 방증합니다.
안타깝게도 박정희 정권 시절 성장의 열매가 특정 계층에 집중되며 형성된 불평등은 세대를 거쳐 공고한 기득권의 성벽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은 21세기에 이르러서도 해소되지 못한 채, 오히려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대를 앞서갔던 김대중의 통찰이 오늘날 더욱 뼈아픈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정치는 종합 예술김대중은 "정치인은 최선이 아니면 불가피하게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즉, "정치인은 현실 속에서 미래를 향한 진리를 구해야지 진리만 붙들고 현실을 도외시하면 안 됩니다. 정치적인 능력과 감각은 책을 통해 지식을 많이 쌓는다고 얻어질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원칙・정당성・이념 등을 한 축으로 놓고, 다른 한 축에는 현실・계산・물질적 이익 등을 놓아서 우리나라에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하는 것이 정치입니다. 정치는 종합 예술입니다."(『김대중 육성 회고록』, 181쪽)
이것이 바로 김대중 정치의 본질인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 감각'입니다. 이는 원칙과 현실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실사구시의 정신입니다.
또다른 정치 철학, 용서『김대중 육성 회고록』에는 '한(恨)'에 관한 내용이 두 번 나옵니다.(『김대중 육성 회고록』, 49쪽, 455쪽)
우리 사회에는 오랜 세월 축적된 ‘한’과 설움의 정서가 존재해 왔습니다. 자연환경의 제약과 빈곤 속에서 생존을 이어가야 했던 현실은, 먹지 못한 고통을 단순한 결핍이 아닌 정서적 응축으로 남겼습니다. 판소리는 바로 이러한 한을 노래한 민중의 예술로, 개인의 슬픔을 공동체의 기억으로 확장한 소리입니다.
김대중은 이 ‘한’을 단순한 감정으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을 억눌린 분노나 보복의 정서로 보지 않고, "좌절된 소망을 현실 속에서 다시 실현"하려는 의지의 형태로 해석했습니다. 따라서 한은 누군가를 처벌함으로써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현실의 원인을 제거하고 삶의 조건을 바꿀"때 비로소 풀릴 수 있는 것이라고 김대중은 말했습니다.
그래서 김대중은 춘향의 한은 이도령을 만나야 한이 풀리고, 흥부의 한은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야 한이 풀린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김대중에게 한은 상대에 대한 보복으로 풀리는 것이 아닙니다. 놀부의 것을 빼앗거나 변사또를 처벌하여 풀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그의 정치 철학으로 이어집니다. 김대중이 선택한 길은 보복이 아니라 용서였으며, 사회를 다시 통합하려는 관계의 회복이었습니다.
김대중 도서관장 박명림은 "김대중이 자신을 탄압한 권력에 대해 용서를 함으로써 관용과 국민화합의 지평을 추구했다"고 평가합니다.(『김대중 육성 회고록』, 756쪽)
그러나 우리가 익히 보아왔듯, 용서를 받은 이후의 행태가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성찰과 책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관용의 윤리와 처벌의 원칙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다시 묻게 됩니다.
다시 김대중을 만나다
내가 김대중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단지 한 전직 대통령을 회상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어둠을 견디며 끝내 자기 정신의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은 '소산구조'형 인간을 다시 만나는 일입니다. 동시에 내 안에 오래 남아 있던 상징과 기대, 존경과 갈망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나는 김대중을 불의에 맞서는 인간의 이름으로, 고난을 이겨낸 정신의 형상으로 만났습니다. 그래서 김대중은 내게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인간이 어떤 가치를 향해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하나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의 망명일기를 읽으며 나는, 절망은 인간을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어떤 인간은 그 절망 속에서도 자기 내면의 질서를 세워 재탄생의 계기가 된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질서가, 끝내 시대를 바꾸는 힘이 됩니다.
김대중 도서관장 박명림은 이를 어느 성인이 말한 교훈을 빌려 "온전한 마음으로 들어와, 홀로 머물렀다가, 다른 사람이 되어 나가는 일종의 귀소(歸巢)를 위한 자기 승화의 과정, 필연에 굴복하지 않고 우연을 과장하지 않으면서 필연과 우연을 결합하는 대연(對然)의 자세로 자신의 운명과 삶에 감연(敢然)히 맞섰던 인간"이라고 표현합니다.(『김대중 망명일기』, 26쪽)
김대중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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