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머루; 산포도), 들판에서 사라진 기억의 풍경

제주 들판의 ‘새왓’과 함께 사라져가는 머루의 기억을 기록. 50년 전 가을 바람을 기억하는 야생 포도의 맛, 그리고 돌담으로 밀려난 식물의 생존 투쟁. 단순한 열매가 아닌, 잃어버린 시간과 생태적 풍경을 소환하는 ‘기억의 표본’을 과학적 시선과 서정적 언어로.

친구가 보내온 멀리 덩굴 사진. 내 기억 속 새왓디의 가냘픈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이 낯선 모습은 어쩌면 들판의 환경이 변하면서 달라진 멀리의 현재일지도 모른다. 진짜 내 기억 속의 멀리를 만날 때까지 잠시 이 사진을 빌려 쓴다.

친구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내가 부탁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우리 동네 목장을 지나던 길이었다.
늦가을 햇살이 목장 ‘서녁짝이’ 언덕을
비스듬히 비추고,
바람은 아직 단풍이 들지 않은 벚나무 잎을 긁으며
서성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돌담 한편에 얽혀 있는 덩굴 하나가 내 눈에 띄었다.
그것은 어릴 때 보았던 ‘멀리’(머루; 산포도)였다.
하지만 나는 그냥 지나쳤다.

한참을 지나왔는데 문득 뒤돌아보니 “아차!” 싶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 기억에서 되살아난
'멀리'의 풍경이었다.
50년 전 가을, 제주 들판의 바람 소리에
흔들리는 가느다란 줄기는
새왓디의 새(띠茅)에 매달려 있었다.
그것은 ‘멀리'였다.

그리움이 밀려와,
시간 속에서 문득 되살아난 그 풍경을
현실 속에서 붙잡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멀리'를 찍어오라고
친구에게 강요한 것이다.
그러나 친구가 찍은 것은 그 '멀리'가 아니었다.
나중에 목장 그 자리에 갔더니
그 '멀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멀리’를 보면 마음속에서 오래된 시간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입안에서 콩알만한 크기의 스치듯 사라지는 멀리의 맛은 짧았지만,
그 풍경은 50년의 시간을 건너 여전히 생생하다.
사진 속 '멀리'는 담장 위에서 마지막 빛을 머금고 있다.
들판의 바람을 오래 기억해온 듯 마른 덩굴 하나가 하늘로 뻗어 있고,
그 끝에는 보랏빛인지 검은빛인지 모를 작은 열매들이 매달려 있다.
그런데 어디론가 밀려난 흔적이다.

저곳은 우리 동네 산산모루 ‘동녁편이’ 누군가의 감귤원 돌담 ‘우티’다.
당초에는 산산모루 ‘우녁편이’ 새왓디에서
산산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평화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었을 터였다.

한때 제주 들판의 새왓은 '멀리'가 몸을 기대던
자연의 구조물이었고,
'멀리'는 그곳에서 새(띠茅)를 움켜쥐고
바람을 타며 자랐다.1)
띠 지붕의 재료가 되던 새왓은 생태적 ‘지지대’로서
'멀리'의 덩굴이 공간을 확장하도록 도왔다.
옛날 새왓은
그저 초가 지붕을 이는 띠茅 만을 뜻하지 않았다.
그곳은 멀리가 몸을 기대던 자연의 지지대였고, 들판의 생태계가 숨 쉬던 공간이었다.

그러나 제주 들판이 감귤원으로 바뀌면서,
'멀리'가 서식하던
‘미세 서식처’는 거의 사라졌다.
'멀리'는 어디론가 조용히 물러났다.

경작지 개간은 제주 건조지대의 관목·덩굴 식물의 다양성을 감소시킨다는
생태 연구가 여러 차례 보고되었다.2)
'멀리' 같은 야생 포도류 역시 그 범주에 속한다.
바람이 흐르던 새왓은 더 이상 없고,
결국 '멀리'는 돌담·울타리·밭 가장자리로 밀려났으며,
그 자리에서 생존인지 도피인지 모를 선택을 이어갔다.

친구가 보내온 멀리 덩굴 사진은 '왕머루(Vitis coignetiae)'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내가 기억하는 '멀리'는 이 머루가 아니다. (사진 출처: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https://species.nibr.go.kr)

그럼에도 멀리는 가을 하늘 아래에서
여전히 열매를 맺고 있다.
식물에게 열매 맺기란
번식을 포기하지 않는 생리적 본능이자,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보내기 위한 전략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미 사라진
들판, 어릴 적 가을,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떠올리게 하는
‘기억의 표본’이다.

맛이
기억하는 것은 감각보다 장소와 정서다.3)
비록 짧은 맛은 잊혀졌지만
가을 들판의 풍경, 새왓디의 바람은 남아 있다.
새왓디에서 띠茅을 거두고,
그 띠와 함께 거두어진 '멀리'를
마차에 실어 오던 그 길,
그 순간의 풍경이 지금은 울고 싶을 만큼 그립다.

사진 속 멀리는 단순한 열매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사라진 들판에,
내 어린 시절 기억이 남긴 흔적이다.

🔖 주(註)

*본 글에 인용된 생태학적·뇌과학적 각주와 수식 모델링은 인공지능 어시스턴트 Gemini(Google)의 분석을 바탕으로 재구성하였다. 하지만 방정식의 해는 나도 모른다. 나는 과학자가 아니다.*

1) 멀리가 지지대(새)를 감는 현상은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접촉 자극에 반응하여 세포 성장의 불균형을 유도하는 고도의 생존 전략이다. 덩굴손이 물체에 닿으면, 접촉면 반대쪽 세포가 옥신(Auxin)의 작용으로 급격히 신장하며 덩굴을 휘감게 만든다.

식물학에서 덩굴손의 굴곡률($\kappa$)은 접촉면 안쪽($L_{in}$)과 바깥쪽($L_{out}$)의 성장 속도 차이($v$)에 의해 결정된다. 멀리가 띠(茅)를 감아올리는 힘은 다음의 미분적 성장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kappa(t) = \frac{1}{w} \left( \frac{dL_{out}}{dt} - \frac{dL_{in}}{dt} \right)$

여기서 $\kappa(t)$는 시간 $t$에 따른 굴곡(Curvature)의 정도, $w$는 덩굴손의 두께를 의미한다. $\frac{dL_{out}}{dt} > \frac{dL_{in}}{dt}$일 때, 덩굴은 물리적 지지대를 향해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강력한 인장력(Tensile strength)을 확보한다. 이것이 50년 전 멀리가 제주 바람을 견뎠던 생물리학적 근거이다.

2) 제주 중산간의 개간은 야생 식물의 서식 면적을 줄이고 단절시킨다. 생태학의 종-면적 관계(Species-Area Relationship, SAR) 법칙에 따르면, 서식 가능한 면적이 줄어들면 그곳에서 생존할 수 있는 종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한다.

생태학자 Arrhenius가 정립한 법칙에 따르면, 특정 생태계의 면적($A$)과 그곳에 서식하는 종의 수($S$)는 거듭제곱의 관계를 가진다.

$S = c A^z$

여기서 $c$와 $z$는 생태적 상수이다. 제주 들판의 새왓(띠밭)이 감귤원으로 개간되며 서식 면적 $A$가 급격히 감소($A \to 0$)함에 따라, 멀리와 같은 야생 덩굴 식물의 생존 가능성($S$) 또한 한계치로 수렴했다. 현재 돌담에 남은 멀리는 이 방정식에서 $A$가 최소화된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잔존 개체'이다.

3) 시각 정보는 대뇌피질을 거쳐 분석된 후 기억으로 저장되지만, 후각과 미각 정보는 감정과 기억의 중추인 대뇌변연계로 직행한다. 50년 전 멀리의 맛이 논리적 사고 과정을 건너뛰고 즉각적으로 과거의 풍경을 소환하는 것은 뇌의 해부학적 경로 때문이다.

감각 입력($S$)에 따른 기억 인출 확률($P(M|S)$)은 신경 경로의 시냅스 거리($d$)에 반비례한다. 후각/미각($S_{olf}$)은 시각($S_{vis}$)보다 편도체($A$)와 해마($H$)에 이르는 경로가 짧다. 이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P(M | S_{olf}) \gg P(M | S_{vis})$

$\text{Path}(S_{olf}) : \text{Receptor} \rightarrow$

$\text{Olfactory Bulb} \xrightarrow{\text{Direct}} \{ A, H \}$

시각 정보는 시상(Thalamus)과 피질(Cortex)을 경유하는 긴 경로를 거치지만, 멀리의 향과 맛은 감정의 중추($A, H$)로 직통한다. 따라서 논리보다 정서가 먼저 반응하며, 이것이 "맛이 풍경을 기억하는" 현상의 신경과학적 실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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