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비선형적 구조
세상의 모든 현상은 직선으로 뻗지 않는다. 자연, 인간, 사회, 정치, 경제는 모두 곡선을 그리며 변화한다. 큰 것이 무조건 좋고 작은 것이 항상 나쁘다는 단순한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섭식과 건강의 관계에서도 양극단은 독이 되고 중간 지점에서만 생리적 안정이 나타난다. 정치에서도 좌와 우가 소수의 극단을 점유하고, 실제로 많은 사람은 양측의 중간 영역에 분포한다. 직선적으로 늘거나 줄기만 하는 선형적 세계는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다. 만약 자연의 법칙이 선형적으로 작동했다면, 인류의 키나 개체 크기는 이미 우주의 경계까지 뻗어 있었을 것이다.
어느 한쪽이 무조건 좋거나 나쁘다는 판단은 현실의 복잡성을 담지 못한다. 이런 통찰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일찍이 로마 시대에 호라티우스는 “만물에는 적절한 정도라는 것이 있다. 그에 못 미치는 것도 넘어서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경계가 존재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경제학도 예외가 아니다. 지나친 복지는 재정의 부담을 초래하고, 지나친 긴축은 사회적 비용을 키운다.
비선형적 사고1) 방식에서 우리가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가는 우리가 현재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냅킨에서 시작된 경제학적 통찰
경제학에서 비선형의 대표적인 예가 래퍼 곡선이다.
아래의 래퍼 곡선은 1974년 어느 날, 시카고 대학 경제학 교수였던 아서 래퍼가 딕 체니, 도널드 럼즈펄드, 『월스트리트 저널』의 편집자 저드 워니스키와 함께 워싱턴 DC의 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던 중 포드 대통령의 세금 안을 두고 옥신각신 끝에 냅킨에 그렸다는 그림에서 연유한다.
종 모양의 정규분포곡선과 같다. 가로축($X$)은 과세 수준을 뜻하고, 세로축($Y$)은 납세들로부터 거둬들일 조세 수입을 뜻한다. 가로축은 0%(세금 없음)부터 100%(모든 소득을 세금으로 징수)까지의 세율, 세로축은 정부가 거두어가는 세금의 총액이다.
래퍼의 세수 곡선에서 왼쪽 끝에서는 세율이 0%이다. 이 경우 세금이 없으므로 세수는 0이다. 오른쪽 끝은 세율이 100%이다. 이 경우 당신 사업체를 운영해서 돈을 벌든 봉급을 받은 그 수입은 몽땅 정부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그래서 아무도 합법적으로 소득을 창출하려 하지 않으므로(경제 활동 동기 상실), 과세표준이 0이 되어 세수 역시 0이 된다.
그러나 세율을 0%에서부터 올리기 시작하면, 총 세수가 증가한다. 세로축 꼭대기는 총 세수가 최대가 되는 지점의 세율이다. 그러나 그 꼭대리 지점을 넘어 세율을 계속 높이면, 높은 세금을 피하려는 경제 주체들의 동기(예: 근로 의욕 저하, 투자 기피, 조세 회피 등)가 커진다. 이로 인해 과세표준이 세율 인상폭보다 더 크게 줄어들어, 오히려 총 세수가 감소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곧 세율과 정부 세입의 관계를 기록한 곡선이 직선일 수 없다는 뜻이다. 만일 직선이라면 세입은 그래프의 왼쪽 끝이든 오른쪽 끝이든 한쪽 끝에서 최대가 될 테지만, 실제로는 양쪽 다 0이다. 만일 현재의 소득세가 정말로 0%에 가깝다면, 즉 우리가 그래프의 왼쪽 끝에 치우쳐 있다면, 정부는 세율을 높임으로써 복지에 쓸 돈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누구나 직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사실이다. 거꾸로 세율이 100%에 가깝다면, 세율을 높일 때 오히려 세입이 줄 것이다. 만일 우리가 래퍼 곡선의 정점보다 더 오른쪽에 있다면, 그런데 지출을 줄이지 않으면서 적자를 메우고 싶다면, 간단하고 정치적으로도 매력적인 해결책이 있다. 세율을 낮추는 것이다. 그래서 세입을 늘리는 것이다. 우리가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가는 우리가 현재 어디에 있느냐에 달렸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이 대목에서 문제가 어려워진다.
한국의 조세 제도는 래퍼 곡선의 어느 위치?
한국 기업의 배당 구조는 지난 10년간 평균 배당성향이 26%에 머무른다는 점에서 선진국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금융위원회가 제시한 이 수치는 한국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의 대부분을 주주에게 돌려주기보다 내부에 축적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실제로 국내 상장사 1,665개 가운데 배당성향이 35%를 넘는 기업은 176곳뿐이며, 이는 전체의 약 10% 남짓에 불과하다.(서울경제, 2025. 7.24.)2)
다시 말해 이 현상은 한국 기업의 거의 90%가 35% 미만의 배당 성향을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단순한 배당 전략의 차원을 넘어, 한국 기업의 자본 운용 방식과 지배구조의 특징을 설명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이익이 기업 내부에 쌓일수록 주주의 몫은 줄어들고, 자본시장의 신뢰도는 낮아진다. 이 구조는 한국 시장을 오랫동안 규정해온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이 구조에서는 주식 보유자의 배당소득세 과세 기반은 작다. 배당금 총액이 적기 때문에, 세율이 아무리 높아도 세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 2023년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전체 배당소득세 세수는 약 4조 3천억 원, 전체 소득세의 약 3% 수준에 불과했다.3) 즉, 과세율은 상대적으로 높지만, 과세표준(배당금 자체)이 너무 작아서 세수효과가 미미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 정부가 논의하고 있는 ‘배당소득 분리과세는 기업과 개인 모두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유인 체계로 등장한다. 기존에는 배당소득이 종합과세에 포함되어 고소득층일수록 세율이 높게 적용되었고, 이는 배당을 기피하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일정 요건의 배당소득 분리과세는 개인투자자가 배당을 매력적으로 인식하도록 세제 장벽을 낮춘다.
현재 정부가 검토 중인 주식 배당소득세 분리과세 최고세율 25%(현재는 최고 45%)는 단순히 감세 정책이 아니라 배당 확대 유도정책이다.
세율이 낮아지면 주주의 실질 수령액이 증가하므로 주주들의 배당 요구 압력 강화된다. 이에 따라 기업은 내부유보금 일부를 배당으로 전환할 수 있다. 기업의 배당 유인이 증가하는 것이다. 예컨대, 국내 상장기업의 사내유보금은 약 1,100조 원(2024년 기준)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1%만 배당으로 전환돼도, 약 11조 원 × 15.4% = 1.7조 원의 추가 세수 발생 가능하다.
이 현상은 세제정책의 고전적 원리를 잘 보여준다. 세율이 높을수록 세수는 단기적으로 늘지만, 기업은 배당을 축소하고 자본을 유보하여 장기 세수는 줄어든다. 대신 세율이 낮아지면 기업은 배당을 확대하고, 주주의 소비·재투자도 늘어 과세표준(배당금 총액)이 커져 전체 세수는 오히려 늘어난다. 즉, 단기적 세율 인하는 장기적 세수 확충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래퍼 곡선은 이를 잘 보여준다.
배당 세수에서 래퍼 곡선이 더 잘 보이는 이유
앞서도 말했지만 래퍼 곡선은 배당세율과 총 배당세수 간에 역 U자형(종 모양) 관계가 존재함을 의미한다. 세율이 0%이면 세수는 0이다. 세율을 높이기 시작하면 세수도 증가한다.
그러나 세율이 특정 지점(세수 극대화 지점)을 넘어서면, 세율을 더 높여도 오히려 총 세수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세율이 100%가 되면 아무도 배당을 하거나 받으려 하지 않으므로(과세표준이 0이 됨) 세수는 다시 0이 된다.
래퍼 곡선은 다른 세목보다 배당세수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배당소득의 과세표준이 탄력적이기 때문이다. 근로소득은 세율이 높아져도 대부분의 사람이 즉각적으로 노동을 중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과세표준(총 급여)의 탄력성이 낮다. 하지만 배당은 기업의 재량적 의사결정 사항이다.
세율이 너무 높다고 판단되면 기업과 투자자는 즉시 행동을 변경하여 과세표준(총 배당 지급액)을 합법적으로 축소할 수 있다. 배당세율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기업(특히 대주주)은 주주에게 현금 배당을 지급하는 대신 다른 방식을 선호하게 된다. 배당 대신 자사주를 매입하여 소각하면 주당 가치를 상승시킨다. 이는 주주에게 자본이득으로 돌아가며, 자본이득세율이 배당세율보다 낮거나 과세가 이연되는 경우(주식을 팔 때까지 세금을 내지 않음) 훨씬 매력적인 선택지가 된다. 배당으로 주주에게 환원하는 대신, 현금을 사내에 유보하거나 신규 사업에 재투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투자자 역시 세후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배당을 많이 주는 '가치주' 대신, 배당은 적지만 주가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성장주'로 포트폴리오가 움직인다. 합법적인 절세 전략(예: 절세 계좌 활용, 증여)을 통해 과세 대상 소득을 줄이려 소위 조세 회피를 시도한다.
배당세수 래퍼 곡선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는 2003년 미국의 배당세 인하 사례이다.
당시 미국은 배당소득에 대해 일반소득세율(최고 38.6%)을 적용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배당세율을 자본이득세율과 동일하게 최고 15%로 대폭 인하했다. 세율 인하 직후, S&P 500 기업들의 배당 지급액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세율이 '래퍼 곡선의 우측'(즉, 세수 극대화 지점을 넘어선 비효율적 구간)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세율을 낮추자 과세표준(총 배당액)이 세율 인하 폭보다 훨씬 더 크게 증가하여, 결과적으로 세수 감소 효과가 예상보다 크지 않았거나 오히려 증가했을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비선형 곡선과 거짓 삼단논법의 함정
래퍼의 그림은 세율과 세입의 관계에 대해서 근본적이면서도 반박의 여지가 없는 수학적 요점을, 즉 그것은 반드시 비선형적 관계라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어쨌든 곡선은 한 지점에서 오르막이 되면 다른 지점에서는 내리막이 되어야 하는 법이다.
래퍼는 자신의 곡선에는 특정 경제에서 어느 시점에 과세율이 지나친지 아닌지 알려 주는 능력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그림에 숫자를 하나도 적어 넣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다.
그는 의회에서 최적 세율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냐?라고 물었을 때 “솔직히 그 지점을 잴 순 없지만, 그 특징이 무엇인지는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래퍼 곡선은 그저 어떤 상황에서는 세율을 낮춤으로써 세입을 늘릴 수 있다고 말할 뿐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 그런 상황인지를 알아내려면 깊고 까다롭고 경험적인 연구가 필요하며, 그런 연구는 냅킨 한 장에 다 들어가지 않는다.
래퍼 곡선에는 잘못된 점이 없다. 사람들이 그것을 잘못 사용하는 것뿐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래퍼 곡선을 정치적 믿음이나 희망에 따라 잘못 해석할 때 발생한다. 정치인들은 역사에 기록된 강자 오래된 거짓 삼단논법에 빠질 위험이 있다.
“세율을 낮추면 정부 세입이 늘어날 수도 있다.나는 세율을 낮추면 정부 세입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세율을 낮추면 정부 세입이 늘어난다.
이 논리는 과학적 추론이 아니라 희망을 전제로 한 오류다. 래퍼 곡선이 말하는 사실은 단 하나, 세율과 세수의 관계가 비선형적이라는 점, 그리고 어떤 구간에서는 세율 인하가 세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 뿐이다. 그 가능성이 현실에서 언제 작동하는지는 경험적 자료와 구조 분석이 결정한다.
세율은 저항이고 배당은 전류다
그래도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중요한 통찰은 남는다. 한국의 현재 구조처럼 기업의 배당 성향이 낮아 과세표준 자체가 협소한 상황에서는, 세율 인하가 배당 확대를 유도하여 장기적인 세수 기반을 오히려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세율을 낮추어도 과세표준이 크게 늘어난다면 전체 세수는 증가할 수 있다는 비선형적 원리가 작동한다.
물리학의 비유를 빌리면, 세율은 전류의 흐름을 가로막는 저항이다. 저항이 지나치게 높으면 회로에서 전류가 끊기고, 지나치게 낮으면 에너지 전달이 불안정해지며 시스템 전체의 효율이 떨어진다. 동일한 법칙이 세수 구조에도 적용된다. 세율과 배당이라는 두 변수가 균형점을 이룰 때, 시스템은 최대 효율에 도달한다. 국가 세수 역시 그 지점에서 가장 안정적인 흐름을 얻게 된다. (끝)
🔖 주(註)
1) 이 글은 비선형적 사고 방식의 한 예로 든 래퍼 곡선과 세수에 관한 내용으로서 주로 조던 엘렌버그의 저서 『수학적 사고의 힘』(김명남 옮김, 열린책들, 2016) 제1장을 참고하였다. ↩
2)"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한국 평균 배당 성향은 26%다.(...) 국내 상장사 1665개사 가운데 배당 성향 35%를 넘은 곳은 176개사에 불과" https://www.sedaily.com/NewsView/2GVH4W6R07↩
3) 『2023년 및 중기 국세수입 전망』(국회예산정책처, 2022, 38쪽.)https://www.shinkim.com/newsletter/2022/GA/2022_vol159/links/2022_vol159_408.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