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과 빅 바운스
※ 이 글은 카를로 로벨리의 저서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카를로 로벨리, 김정훈 옮김, 쌤엔파커스, 2018)를 참고하였음.

그 답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론이 빅뱅(Big Bang)입니다.
1927년, 예수회에서 교육을 받고 가톨릭 사제로 서원을 했던 한 젊은 벨기에 과학자가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연구하다가 그 방정식이 우주가 팽창하거나 수축되고 있다고 예측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그는 검증을 위해 은하의 관측자료를 찾기 시작했고, 관측자료가 우주가 실제로 팽창하고 있다는 생각과 부합한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은하들은 하늘로 쏜 것처럼 빠른 속도로 멀어져가며 팽창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2년 뒤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Edwin Hubble)은 거대한 망원경을 사용해 은하들이 멀어져간다는 사실을 확증한 자료를 수집합니다.
그러나 1927년에 이미 이러한 결정적인 결론을 끌어낸 사람은 그 젋은 벨기에 사제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조르주 르메르트(Georges LemaÎre, 1894~1966) 입니다.
은하들이 멀어져가고 우주가 팽창하는 것이 보인다면, 이는 은하들이 이전에는 더 가까이에 있었고, 우주는 더 작았으며 무언가가 우주가 팽창을 시작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하죠. 이 젋은 벨기에 사제는 우주가 처음에는 작고 압축되어 있었는데, 거대한 폭발로 팽창을 시작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 초기 상태를 ‘원시 원자’라고 부릅니다. 오늘날에는 ‘빅뱅’이라고 부릅니다.
빅뱅은 말 그대로 거대한 폭발입니다. 140억 년 전, 모든 것이 하나의 점, ‘특이점’에 압축되어 있다가 갑자기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 순간 시간과 공간, 물질과 에너지가 동시에 태어났습니다.
오늘날에는 우주가 먼 과거에 극도로 뜨겁고 극도로 작았었다가 그 후로 팽창되어왔다는 증거들이 많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플랑크 인공위성이 수행한 우주배경복사에 대한 최근의 관찰은 빅뱅 이론을 다시 한 번 확증했습니다. 140억 전 우주는 압축된 불의 공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우주는 그 이후 쉴 새 없이 팽창했고, 별과 은하, 그리고 우리 인간이 탄생했습니다.
빅뱅은 마치 한 번의 장대한 서곡 같습니다. 오케스트라가 단 한 번의 시작으로 연주를 이어가듯, 우주는 한 점에서 출발하여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확장해온 것입니다.
그러나 빅뱅 이론에는 늘 그림자가 따라다닙니다. 이 처음의 뜨겁고 압축된 상태 이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140억 년 전, 무엇이 있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자중력(quantum gravity)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특이점(singularity)’이라 불리는 그 최초의 순간에서 일반상대성이론이 설명하던 물리 법칙이 붕괴되기 때문입니다. 즉, 우주의 음악은 웅장하게 시작했지만, 정작 그 첫 음표가 어떻게 연주되었는지는 현재의 물리학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고전역학에 따르면, 전자는 핵을 향해 곧바로 떨어져 사라져야 합니다. 음전하를 띤 전자가 양전하를 띤 핵에 끌려들어가면, 결국 핵에 흡수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전자는 고전적 의미의 궤도를 돌지 않습니다. 그 궤적은 존재하지 않으며, 한 지점에 전자를 붙들어 두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만약 전자를 억지로 핵 가까이에 밀어 넣으려 하면,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운동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전자는 곧바로 튀어나와 버립니다.
양자역학은 전자가 핵 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습니다. 마치 전자 자체가 어떤 ‘양자적 반발력’을 지닌 것처럼, 전자는 핵에 너무 가까이 다가갈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 덕분에 물질은 안정성을 얻고, 원자는 붕괴하지 않습니다. 만약 이런 양자적 제약이 없었다면, 모든 전자들은 핵 속으로 떨어져버렸을 것이고 그 결과 원자도, 물질도, 우리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주도 이와 같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기술하는 우주 방정식1) 만으로 보면, 우주는 스스로의 중력에 의해 언젠가 붕괴해버릴 운명에 있습니다. 이 방정식은 에너지와 곡률의 균형으로 우주의 팽창과 수축을 설명합니다. 그러나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한 점으로 수렴하는 ‘특이점’(singularity)에서는 이 방정식은 무너지며, 공간과 시간이 함께 소멸하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전자가 핵 속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은 고전적 결과와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 우주는 그렇게 붕괴하지 않습니다. 양자역학이 미시세계에서 물질의 붕괴를 막듯, 양자 요동과 진공 에너지는 거시적 우주에서도 붕괴를 지연시키고, 때로는 팽창을 일으키며 공간을 지탱합니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에 따르면, 물질과 에너지가 한 영역에 더 많이 집중될수록 그 주위의 시공간 곡률은 커집니다. 에너지 밀도와 압력이 증가하면 시공간은 더 깊게 휘어지고, 이 과정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시공간의 곡률은 폭발적으로 커지고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경계, 즉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 이 형성됩니다. 이것이 바로 블랙홀의 탄생입니다. 그 내부에서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압축되어 시공간의 기하학적 구조가 무한히 휘어지는 지점, 즉 특이점(singularity)으로 수렴합니다. 수학적으로는 시공간이 붕괴하여 물리 법칙이 더 이상 정의되지 않는 한계점이며, 고전적인 일반상대성이론은 이 지점에서 멈춥니다.
그러나 양자역학이 이 구조에 개입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공간이 곡률을 가진 연속체라고 가정하지만, 양자중력 이론은 공간조차 양자화되어 있다고 봅니다.
시공간은 더 이상 연속적인 곡면이 아니라, 플랑크 길이(\(10^{-33}cm)\)2) 규모에서 양자화된 불연속적 구조를 가집니다. 이때 ‘무한한 곡률의 바닥’은 양자요동이 지배하는 "공간의 최소 영역"의 크기로 대체됩니다.
양자역학은 ‘진공’마저도 완전히 비어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공간의 모든 점에서는 끊임없이 입자와 반입자가 생성되고 소멸하는 요동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양자요동입니다.

이처럼 공간 자체가 미세한 ‘양자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공간을 무한히 압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즉, 전자를 핵 안에 완전히 가두지 못하듯, 우주의 공간도 완전히 붕괴할 수 없습니다.

빅 바운스(Big bounce) 이론은 우주를 한 번만 시작된 폭죽이 아니라, 계속 튀어 오르는 공에 비유합니다.
우주는 언젠가 수축한다고 합니다. 별과 은하가 모이고, 결국 모든 것이 한 점으로 모여 붕괴 직전까지 압축되지만 "양자중력의 반발력”으로 붕괴하지 않고 다시 팽창으로 반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바닥에 닿은 공이 다시 튀어 오르듯 말입니다. 새로운 우주의 시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빅 바운스의 우주는 끝나지 않습니다.
우주는 "영원한 팽창과 수축, 몰락과 재탄생의 순환”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고 관찰할 수도 없습니다. 물리학 방정식에 따라 계산된 결과가 그렇다는 것 뿐입니다. 상상력의 범위에 해당하지만 그것조차도 우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조용필의 바운스와 우주의 ‘빅 바운스’ : 어쩌면 닮은꼴
조용필의 노래 바운스를 들으면 몸이 절로 흔들립니다. 반동의 즐거움 때문입니다.
경쾌한 리듬, 튀어 오르는 듯한 박자, 그리고 다시 내려앉았다가 또 솟구치는 에너지가 반복됩니다. “그대가 돌아서면 두 눈이 마주칠까, 심장이 bounce bounce, You make me bounce!, 넌 나를 튀게 만들어”
이 노래의 핵심은 바로 반동(反動), 즉 “심장”처럼 끊임없는 튀어오름과 되돌아옴의 순환입니다. 조용필의 바운스는 반복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조용필의 노래 바운스가 보여주는 리듬과 순환에서 우주의 반복을 설명하는 빅 바운스와 그 닮은꼴을 발견합니다.
조용필의 바운스가 우리 “심장을 bounce”하는 것은 단순히 경쾌한 멜로디 때문만이 아니라, 우주 자체가 가진 본래의 반복과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노래의 바운스는 음악적 리듬의 반복이고, 우주의 빅 바운스는 시공간 자체의 반복입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영역에 있지만, ‘순환과 재탄생의 구조’라는 점에서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바운스와 빅 바운스는 같은 언어를 공유합니다. 하나는 음악에서, 다른 하나는 우주에서.
그러나 둘 다 우리에게 말합니다. “끝은 곧 또 다른 시작이다.”라고.
우리가 빅뱅의 자식이든, 빅 바운스의 순환 속에 태어난 존재이든, 중요한 건 하나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끝)
🔖 주(註)
1) $R_{\mu\nu} - \frac{1}{2}Rg_{\mu\nu} + \Lambda g_{\mu\nu} = \frac{8\pi G}{c^4}T_{\mu\nu}$ 위키피디아
"The EFE(Einstein Field Equation) can then be interpreted as a set of equations dictating how stress–energy–momentum determines the curvature of spacetime." ↩2) 카를로 로벨리 지음,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김정훈 옮김, 쌤엔파커스, 2018, p15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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