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좋아하는 어느 아방 이야기



☀ 이 이야기는 실제 인물과 무관합니다 ☀

술 좋아허는 어떤 아방 이야기이우다. 
땟고심도 그자락 걱정없고 한걸허게 사는 사름입주. 술도 술이주마는 벗들을 겅 좋아허다보난 어쓱어쓱 술 먹을 일만 생기는 모양이랍디다. 술에 취해영, 광질허거나, 페랍지 않고(성질이 신경질적이고 사납지 않다), 시뭇(마음씨)이 궂도 안허고 무신 실수 허는 것도 아닌디, 그자~ 어울령 댕기멍 술만 술만 먹는 사름이우다.
(술을 좋아하는 어떤 아버지 이야기입니다. 먹을 거 걱정 없이 태평하게 사는 분이었죠. 술도 좋아하시지만, 친구들을 더 좋아하다 보니, 어쩌다 보니 술 마실 일만 계속 생깁니다. 술에 취해서 행패를 부리거나 성질을 내지도 않고, 시비를 거는 것도 아니고 큰 실수를 하는 것도 아닌데, 아무튼 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술만 마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런 서방을 보는 각시는 무슨 죄꽈? 부에난 각시는,  
“저 오장창지 배 쏘곱엔 무신 귀신이 들어가신디 겅 술 먹어도 속 안 아팜신가? 이거사 원, 하루이틀이주, 1년 365일 술 어신 날이 어시니, 나가 저들지 안해영 살아지쿠과.
(남편 때문에 속상한 아내는 말합니다. “저 배 속에 도대체 어떤 귀신이 들어앉은 건지, 아무리 술을 마셔도 속쓰리거나 아프지 않은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1년 365일 술 안 마신 날이 하루도 없으니, 내가 이래서 살아갈 낙이 없다)

겅허고, 그동안 먹을거 안 먹고 입을거 안 사곡 해여그네 아방이영 나영 돈 아꼉, 이제사 2층짜리 집을 지서수다게. 이 집 짓는거 마씨, 이거 몇 십 년만이우꽈게! 
(이왕 말이 나온김에 하는 말인데, 그동안 입을 것도 안 사고 먹을 것도 줄이며 아껴 모은 돈으로 이제 겨우 2층짜리 집을 지었는데, 이는 결혼 후 처음으로 몇십 년만에 우리들이 살 집을 지은 겁니다!)

겅헌디, 아이고, 말 맙써! 이 집 짓는 것도 양, 저 아방 술 먹는거 때문에 호마터민 집 못 지슬뻔 해수다. 처음 설계헐때부터 술먹엉 섞껑 댕경게 마는 어느날은 술먹엉 막 왜울리멍 목시영 싸왕, 혼 두 어달은 집 못지서수다. 작년 여름에 시작헌거 이제 1년이 넘어사 겨우겨우 다 지서수게. 겅허영, 이제 집 다 지서그네, 마당에 잔디영 돌멩이영 꼴잰 허단보난 또 그놈 아방이 웃동네 홍배 아주방허고 술만 머그멍, 그놈의 잔디를 꼴아져야 말이주게. 
(그런데, 아이고 말도 마세요! 이 집 짓는 것도 결국 남편이 술 마시러 다니느라 거의 못 지을 뻔 했다니까요. 처음 설계할 때부터 술 마시러 어울려 다니더니, 하루는 술 먹고는 울고불고 난리치다가 목수하고 싸움까지 하느라 몇 달이나 공사가 멈췄습니다. 작년 여름에 시작한 게 이제 1년이 넘어서야 겨우 다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마당에 잔디 심고 돌멩이 깐다고 하니까, 남편은 또 웃동네 홍배 아저씨랑 술만 퍼마시면서 잔디도 못 심고 돌멩이도 깔 수가 없지 뭡니까.”)

홀 수 어시, 엇그저께 웃동네 태수 삼춘이 와그네 돈 십 원 안 들엉 잔디영 돌멩이 다 꼴안 가수게. 원, 그 삼춘, 겅 착헙디다 양. 지난번엔 군협이네 올래 담도 혼자 다 쌓고 시간 나므난 창식이네 집 담에 뺑끼칠도 다 했댄 햄수게. 하여튼, 이제사 집 다운 집이 생긴거 담수다.”
(“할 수 없이 엊그제 웃동네 태수 삼촌한테 부탁했더니, 돈 한 푼 안 받고 잔디랑 돌멩이 정리 다 해줬어요. 그 삼촌 정말 착한 사람이라니까요. 지난번에도 군협이네 집 담장도 혼자 쌓아주고, 시간 남으니까 창식이네 집 담장 페인트칠까지 다 해줬다고 합니다! 하여튼 이제야 집다운 집이 하나 생겼습니다.”)

,허멍 그 놈의 서방 어디강 확 대싸저비시민 조키여 허는 말이 보난 부에창지(분한 마음과 창자) 몬 데싸진 모양입디다.
(그렇게 말하면서 아내는, 남편이 이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하는 마음에 부아가 일고 창자가 뒤집어진 것처럼 참을 수 없이 화가 난 모습이었습니다.)

겅허멍, 각시는 골갱이 들렁 어드레 강게 마는, 내가 나중에 그 아방네 집에 갈일 이서그네 그레가단 담 우트레 고개 들렁 보난 우영 밭디 검질 메멍 홀착홀착 울엄십디다게.
(그러면서 아내는 호미 들고 어디로 나갔고, 내가 나중에 그 집에 갈 일이 있어 담장 넘어 그 집 둘레를 살펴보았는데, 우영밭에서 김를 매며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있더랍니다.)

겅해도 각시는 맨날매칠 속썩여도 우리 서방인디 술먹당 어디강 자빠지미나 말민 조키여 허멍, 어두워가난 검질 메당 말고 집에 왕, 이제 집도 다 지서신디 오랜만에 서방이영 단 둘이서 밥이라도 행 먹어보잰 우영밭디강 송키영 하간거 먹을거 해당, 솥 앉쳐놓고 불 때멍 부지깽이 두드러멍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을 부르는데 그만 눈물이 와락 쏟아지고 말아십주.
(그래도 아무리 속을 썩여도 내 남편인데, 술 먹고 댕기다 쓰러지기라도 할까 싶어 걱정하는 마음에 김을 매다 말고 이제 집도 다 지었는데, 오랜만에 둘이 밥이라도 같이 먹으려고 우영밭에서 채소와 여러가지 반찬거리를 거두어 남편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면서, 솥을 앉쳐 불을 지피고 불이 아궁이 밖으로 기어나오지 못하게 부지깽이로 불을 다스리며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을 부르던 아내는,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참을수가 없도록 이가슴이 아파도,
헤아릴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채,
견딜수가 없도록 외로워도 슬퍼도,
여자이기 때문에 참아야만 한다고,
내스스로 내마음을 달래어 가며,
비탈진 언덕길을 허덕이면서,
눈물로 보냅니다”
겅헌디, 이거 무슨 시상이꽈! 아이 그만, 그 아방 어디 댕기당 자빠졍 코영 주뎅이 몬 밀어먹어분거 아니꽈.
(그런데, 남편이 술 마시며 다니다가 코며 입이 다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게난, 어떵된거냐 허면
(그러니까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어제밤이 홍배영 군협이영 고찌 동하네 식당으로, 서귀포 성진이네 청송막거리로 밤늦게 젓어뎅기멍 코가 토라지게 먹단, 홍배가 이제랑 집이덜 가주게 허연 집더레 가는디, 각시가 전화 와네
“집이 맛 좋은거 하영 해놓아시난 오늘이랑 나랑 고치 밥도 먹고 아이덜도 어신디 우리 둘만 어떵 해보게마씨” 허난 기분조안 겅 안해도 술 취해영 졸바로 걷지도 못허는 주제에 막 와리멍 내창 옆으로 오단 알동네 물동산 늬커림 질(네거리)에서 무스거산디 몰라도 발에 걸련 앞으로 넘어진겁주.
(홍배랑 군협이랑 동하네 식당에서, 서귀포 성진이네 청송 막걸리집까지 밤늦게 돌아다니며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시다가, 홍배가 이제 집으로 가자고 하길래 집으로 가기위해 길을 나섰고 때마침 아내에게 전화가 온 겁니다.
“맛있는 거 많이 해놨고 오늘은 당신이랑 나랑 둘이서만 밥도 먹고, 아이들도 없으니 우리 둘만 오붓하게 사랑을 해보자”고 하니까 
남편은 기분이 좋아서, 그렇지 않아도 술에 취해 똑바로 걷지도 못하면서 계곡 옆으로 난 샛길로 급하게 오다가 동네 물동산 근처 네거리 큰길에서 어디에 걸렸는지 몰라도 앞으로 넘어진 겁니다.)

아방은 넘어지멍 질 바닥에 손 짚으멍 해도 술 취해부난 어떵 못해영, 그냥 코영 입 주뎅이영 아스파트 질 바닥에 바락 밀어버려수게. 질 바닥에 넘어지단 보난 뒷야게기꽝(목 뼈)이영 종애꽝(종아리 뼈)도 호끔 다친 모양이랍디다.
(술에 취한 탓에 제대로 손도 못 짚고 아스팔트 바닥에 입과 코를 정통으로 박아버렸습니다. 아스팔트 바닥이라서 그런지 몰라고 목 뼈와 종아리 뼈가 살짝 다쳤다고 합디다.)

겅해연, 각시는 이거 전화헌지 하도 오래연 서방 무사 안 왐신고 허멍 큰 질 배끼더래 나간보난, 아이고 이거 무슨 시상이라! 서방이 질 바닥에 “아이고, 아이고”허멍 누워 이신거 아니우꽈. 
(아내는 기다려도 남편이 오지 않길래 걱정하다가 큰길로 나가 봤는데,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인가. 남편이 그만 길바닥에 누워서 “아이고, 아이고” 하며 신음하고 있었던 아닙니까!)

서방을 본 각시는 추물락해연 빨리 서방 일려세완 집에 왕 보난 코영 입에서 피가 잘잘 나는 거 아이우꽈. 각시는 큰 숭시 나카부덴 가슴이 자락 털어지고 금착허연(덜컥 놀라다) 제주대학교 병원에 다니는 똘안티 전화해연 다친디 고르난 똘은 “그거 머크류크롬만 바르면 됩니다.”허난, 어멍은 “무시거, 뭐랜 고람시니? 잘 모르키여. 알아듣게 잘 고르라”허난, 똘은 “아까징끼 마씨”라고 해사 그때야 알아들언 집에 있는 아까징끼영 반창꼬영 봉가단 서방 입 주뎅이영 코에영 볼라주어신디, 아침에 일어난 보난 입 주뎅이는 한라산만큼 부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햄잰 햄수다.
(겁이 난 아내는 남편을 일으켜 세우고 집으로 데려와서, 입과 코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것을 보니 크게 다친 것 같아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습죠. 그래서 제주대학교 병원에 다니는 딸에게 전화를 해서 다친 상태를 얘기했더니, 딸은 “머큐로크롬만 바르면 됩니다”라는 말에 어머니는 “그게 뭐냐, 잘 모르겠으니까 알아듣게 말해봐라”고 하자 딸은 “아까징끼 바르면 돼요”라고 하자 그제야 아내는 알아듣고 집에 있는 아까징끼와 반창고를 꺼내 아까징끼는 남편 얼굴에 바르고 반창고는 피가 나지 않도록 솜에 덧대서 붙여줬죠.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보니 남편의 입은 한라산처럼 부어올라 밥도 제대로 먹지를 못했답니다.)

겅핸, 각시는, “거 봅써, 나 무시거랜 고릅띠과. 그만큼 술 먹지 말랜 해봐도. 말 안 들엉 하간디 이래저래 젓어댕기당 이거 무슨 꼴이꽈. 아이고, 동네 챙피해영 어디 배끼더래 댕기지 못헛크라. 이만허난 다행이주. 그 물동산 다리 아래 털어져시민 어떵 헐펀 해수과 양~” 허멍 눈에는 눈물이 고득허연 남들 보기에 부치럽고 부에나기도 해서 다시 골갱이 들렁 밭드레 갑디다게.
(그래서 아내는 다시 말합니다.
“봐, 내가 뭐랬어. 술 그만 마시라 안 했습니까. 말 안 듣고 여기저기 섞으며 돌아댕기다 이게 도대체 무슨 꼴입니까. 동네 사람들 보기 창피해서 어디 다니지도 못하겠습니다. 이만해서 다행이지. 만약 물동산 다리 아래로 떨어졌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 예~.” 하면서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고  남들 보기에 부끄럽고 부아가 치밀어 올라 아내는 다시 호미를 들고 밭으로 가버렸답니다.)

(끝)

*제민일보의 ‘제주어의 세상여행’ 시리즈 참조하여 작성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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