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녀는 수 세기 동안 제주 바다에서 무호흡 잠수를 통해 해산물을 채취하며 생계를 이어온 독특한 여성 공동체다. 조선 후기의 세시풍속 기록에 따르면, 해녀는 단지 노동 집단이 아니라 제주 여성의 자율성과 공동체적 연대를 상징하는 문화적 상징체였다. 이들의 탁월한 잠수 능력은 단순히 훈련과 문화적 전통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최근의 유전체학 연구는 해녀의 신체 반응, 특히 잠수 중 심박수 감소와 혈압 조절이 일정 유전형(genotype)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예컨대 2024년 미국 UCLA와 유타대 공동연구팀이 수행한 실험에서는 제주 해녀 30명, 제주 일반 여성 30명, 내륙 여성 30명을 대상으로 간이 잠수 실험을 진행하였고, 그 결과 해녀 집단이 가장 큰 심박수 감소폭과 가장 안정된 혈압 반응을 보였다. 나아가 유전자 분석 결과, 지방 대사를 효율화하여 저산소 환경에서 에너지 절약에 관여하는 유전자(PPARA)와, 심박수 및 혈관 반응 조절과 비장 산소 저장에 관여하는 유전자(PDE10A) 내 특정 유전적 차이(SNP 변이)가 해녀 집단에서 더 높은 빈도로 나타났으며, 이는 잠수에 유리한 생리적 표현형과 유전형 간의 연관성을 시사하는 중요한 근거로 제시되었다.(https://www.khan.co.kr/article/202505081815001)
2. 유전형, 환경압력, 그리고 지역 적응의 경로
2.1 해녀의 잠수 반응과 생리학적 적응
표현형(phenotype)은 유기체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외적으로 나타내는 특성이고, 유전형(genotype)은 그러한 특성을 결정짓는 유전자 구성이다. 특정 표현형은 하나 이상의 유전형과 대응되며, 이러한 유전적 차이는 흔히 단일염기다형성(SNP: 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으로 설명된다. SNP는 DNA 염기서열의 특정 위치에서 단 하나의 염기(A, T, C, G)가 다른 염기로 바뀐 변이를 말하며, 사람 간의 유전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현존하는 '인류집단' 유전체에는 약 1억 개 이상의 SNP가 존재하며, 개인 간 유전적 차이의 90% 이상이 여기에 해당한다. SNP는 대부분 중립적이지만, 일부는 단백질의 기능, 유전자 발현 양상, 환경 적응력에 영향을 준다.
특히, 특정 SNP가 특정 집단(예: 제주 해녀, 동남아 바자우족, 티베트 고산 거주민 등)에서 높은 빈도로 존재한다면, 이는 장기간에 걸친 지역적 적응(local adaptation)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즉, 해당 유전형이 그 환경에서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기 때문에 자연선택을 통해 집단 내에 유지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지역적 적응의 대표적인 생리학적 표현형 중 하나가 바로 잠수반응(diving response))이다. 잠수반응은 모든 포유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생리적 반사로, 숨을 참거나 물에 들어가면 심박수가 감소하고 말초 혈관이 수축하여 산소 소비를 줄이는 반응이다. 이는 산소를 뇌와 심장 같은 주요 장기에 우선 공급하여 생존을 연장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제주 해녀의 경우, 이러한 반응이 유독 강하게 나타난다. 실제 실험에서 해녀들은 같은 제주 지역의 비해녀 여성이나 내륙 여성에 비해 잠수 자극에 따른 심박수 감소 폭이 더 크고 혈압 안정성이 높았다. 이는 잠수 환경에 적응한 생리적 표현형이 해녀 집단에 존재하며, 그 기저에는 유전형의 차이가 존재할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2.2 잠수 적응과 관련된 핵심 유전자
유전자는 염기서열(sequence)로 구성된 생물학적 정보 단위이며, 이 서열에 따라 단백질이 합성되고 기능이 수행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유전자를 공유하지만, 특정 위치의 염기 차이(SNP)는 개인 간의 유전형 차이를 만든다. 이러한 유전형의 차이가 특정 환경에 더 적응적인 표현형을 유도할 수 있으며, 아래의 두 가지 기본 유전자는 잠수 반응과 관련하여 주목받는다.
① PPARA 유전자
PPARA(Peroxisome Proliferator-Activated Receptor Alpha)는 지방산 대사, 에너지 소비 조절, 심장 기능에 관여하는 유전자다. 이 유전자는 특히 간, 심장, 신장에서 활발하게 작용하며, 공복, 운동, 저산소 같은 상황에서 지방을 효율적으로 연소시켜 산소와 에너지를 아끼는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PPARA 유전자의 특정 SNP는 산소 소비 효율을 높이고, 심장 부담을 줄이는 데 유리할 수 있다.
② PDE10A 유전자
PDE10A(Phosphodiesterase 10A)는 신경 신호 전달과 혈관 반응을 조절하는 유전자다. 이 유전자는 뇌의 기저핵(basal ganglia)에서 발현되며, 심박수 조절과 혈압 안정, 나아가 비장의 산소 저장 기능과도 관련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동남아의 잠수 민족인 바자우인(Bajau)에서 이 유전자의 변이와 비장 크기 증가 간의 상관관계가 보고되었다.
2.3 해녀 집단의 유전적 특징
이상의 유전자(PPARA, PDE10A)에 존재하는 특정 SNP 변이는 잠수 환경에 적응한 표현형의 유전적 기반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해녀 집단은 이들 유전자에 존재하는 특정 변이를 공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지방 대사 효율 증진, 산소 저장 능력 강화, 심혈관계 안정성 향상을 통해 장시간 수중 활동에 유리한 생리적 특성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이는 해녀의 잠수 능력이 단순한 훈련의 결과만이 아닌, 유전적 적응의 산물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2.4 유전자 빈도 차이와 지역 적응
유전자 빈도 차이(gene frequency difference)는 특정 유전형이 인구 집단 내에서 얼마나 자주 나타나는지를 수치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동일한 유전자가 전 인류에 존재하더라도, 그 안의 특정 변이형(SNP)의 분포 빈도는 집단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만약 특정 유전형이 환경 적응에 유리하다면, 그것을 지닌 개인이 더 높은 생존률과 번식률을 가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해당 유전형의 빈도가 세대를 거쳐 증가하게 된다. 이 과정을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라고 하며, 그것이 특정 지역에 국한되어 나타나는 경우를 지역적 적응(local adaptation))이라 부른다.
자연선택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유전형이 세대를 거치며 점점 더 많이 퍼지는 과정을 의미한다. 지역별로 상이한 기후, 고도, 질병, 식습관 등의 환경압력(environmental pressure)은 유전자 빈도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제주 여성의 약 33%가 혈압 안정에 유리한 유전형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 내륙 여성에서는 그 비율이 7%에 불과하다.(https://www.khan.co.kr/article/202505081815001) 이러한 유전자 빈도 차이는 오랜 기간 잠수를 생업으로 해온 해녀 집단에서 특정 표현형(심박수 조절, 산소 절약 등)을 가진 유전형이 선호되고 선택된 결과로 해석된다. 이와 같은 지역적 적응은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사례에서 관찰된다.
(1) 티베트인의 고산 적응 (EPAS1 유전자): 해발 4000m 이상의 고산지대에 사는 티베트인들은 산소가 희박한 환경에서도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다. 이들은 EPAS1 유전자의 특정 SNP를 보유하고 있어, 헤모글로빈 농도를 과도하게 높이지 않고도 산소를 효과적으로 운반할 수 있다. 이는 고산병 발생률을 낮추는 생리적 적응이다.
(2) 아프리카인의 말라리아 내성 (HBB 유전자): HBB 유전자의 변이인 rs334는 겸상 적혈구 빈혈증을 유발하지만, 이형접합(한 개의 변이만 가진 경우)에서는 말라리아 기생충의 생존을 억제하여 말라리아 내성을 갖게 한다. 이는 이질우성 우세(heterozygote advantage)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3) 유럽인의 유당 분해 능력 (LCT 유전자): 유럽 농경·목축 문화에서는 성인기에도 락타아제 효소를 발현하는 LCT 유전자의 변이(rs4988235)가 널리 퍼져 있다. 이는 우유를 성인까지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며, 칼로리 확보가 어려운 고위도 지역에서 생존에 유리했다.
(4) 에스키모(이누이트)의 지방 대사 적응 (FADS 유전자): 고지방 식단을 유지하는 북극 지역의 이누이트는 FADS 유전자의 변이를 통해 포화지방산을 효율적으로 대사한다. 이는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고 에너지 생산을 극대화하는 데 기여한다.
(5) 아시아인의 알코올 분해 능력 (ALDH2 유전자): ALDH2 유전자의 rs671 변이는 알코올을 분해하는 능력을 떨어뜨린다. 이로 인해 동아시아 인구의 상당수는 음주 시 얼굴이 붉어지는 '플러시 반응'을 보인다. 비록 이 변이는 간 기능 저하와 관련될 수 있지만, 술 소비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각 지역 집단의 유전자 빈도 차이는 단순한 유전적 우연이 아니라, 특정 환경에서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표현형이 선택된 결과이다. 해녀 유전형 또한 이와 같은 진화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제주라는 환경과 잠수라는 생업이 어떻게 인간 유전자 풀에 흔적을 남겼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간주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유전자 빈도 차이가 단지 지역의 특수성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2.5절에서 살펴볼 바자우 집단과 같은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도 유사한 생리적 기능을 지닌 유전형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해녀 유전형이 인간의 보편적 적응 메커니즘, 즉 환경압력에 대한 자연선택의 결과로 형성된 지역 적응의 보편적 사례임을 입증한다. 이 연결은 제주 해녀를 단지 고립된 민속 현상이 아닌, 전 지구적 진화 법칙의 일부로 재조명할 수 있게 해준다.
2.5 바자우(Bajau, 바다 집시))와 비교: 수렴 진화의 관점
수렴 진화(convergent evolution)는 서로 다른 생물 집단이 유사한 환경압력에 적응하면서 비슷한 형질이나 유전형을 획득하는 진화 현상이다. 동남아의 바자우(Bajau, 바다 집시)는 수중 채집을 해온 해양 유목민 집단으로, 해녀와 유사한 생리적 특성을 보인다. 이들에게서도 PDE10A 유전자 변이와 비장 크기의 상관관계가 보고되었으며, 이는 해녀 사례와 유사한 지역적 적응으로 해석된다.
바자우인은 평균보다 비장이 50% 이상 크고, 이는 잠수 시 산소 저장량 증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이들의 생활 방식은 해녀와 유사하게 고빈도의 무호흡 잠수를 필요로 하며, 그 결과 자연선택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두 집단은 지리적으로 전혀 다른 환경에 살았지만, 유사한 생존 전략을 통해 유사한 유전형을 획득한 것이다. 이는 인간 유전체가 환경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적응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예이다.
2.6 해녀 유전자와 문화적 멸종이 유전자 풀에 미치는 영향
유전자의 생존과 유지 가능성은 그것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적·문화적 조건에 달려 있다. 제주 해녀에게서 관찰되는 잠수 적응 유전형은 특정 유전자의 SNP 변이에 기반하며, 산소 저장 및 심박수 조절과 같은 생리적 이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유전형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해당 표현형이 생존과 생업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는 문화적 맥락, 즉 수산물 채집을 중심으로 한 잠수 생활 환경이 전제되어야 한다.
오늘날 해녀 공동체는 고령화와 산업화의 영향으로 급속히 축소되고 있으며, 이는 곧 해녀 유전형이 적응적 우위를 누리던 특수한 환경의 붕괴를 뜻한다. 문화는 단지 생활양식이 아니라, 특정 유전형의 표현을 가능케 하는 생태적 맥락이기도 하다. 해녀의 반복적 잠수 활동은 PPARA, PDE10A 등과 같은 유전자에 존재하는 특정 단일염기다형성(SNP) 변이와 상호작용하면서, 고유한 생리적 표현형을 형성해왔다.
이러한 표현형은 문화적 실천, 즉 세대를 거듭하며 축적된 잠수 경험을 통해 발현되었으며, 이는 곧 해당 유전형이 선택적 이점을 지니게 되는 진화적 압력의 일부였다. 그러나 이제 그 문화가 사라지고, 표현형이 더 이상 실현되지 않는다면, 그 유전형도 생물학적 기능과 선택적 의미를 점차 상실하게 된다.
문화적 환경이 사라지고 자연선택의 압력이 약화되면, 유전형의 향방은 적응성과 무관한 무작위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이를 유전자 부동(genetic drift)이라 한다.
유전자 부동(genetic drift)은 자연선택과는 달리, 생존이나 번식의 유리함 여부와 무관하게 유전형이 ‘운에 따라’ 확산되거나 소멸되는 과정이다. 즉, 문화의 소멸이 유전 진화의 방향성을 잃게 만드는 현상이며, 해녀 유전자의 진화적 운명 또한 예측 불가능한 확률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게 됨을 의미한다.
특히 집단 규모가 작아질수록 이 효과는 증폭되며, 특정 유전형이 우연히 후세에 과도하게 반영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두 가지 대표적인 현상이 병목 효과(bottleneck effect)와 창시자 효과(founder effect)다.
병목 효과는 전염병, 산업화, 고령화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해 전체 집단의 수가 급감하면서 유전자 풀이 축소되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생존한 소수의 개체들이 전체 유전자의 대표가 되어 유전적 다양성이 급격히 감소한다. 한편, 창시자 효과는 제한된 수의 해녀가 새로운 마을 공동체를 형성할 때, 그들의 유전형이 원래 제주 해녀 집단보다 더 비정상적으로 높게 반영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처럼 유전형의 향방은 더 이상 적응도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우연적 사건의 산물로 전환된다.
더 나아가 최근의 유전학은 유전자 자체의 구조적 변화 없이도 유전자의 발현 여부가 조절될 수 있다는 메커니즘, 즉 에피제네틱스(epigenetics, 후성유전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같은 유전형을 가진 개인이라도 문화적 실천, 반복된 신체활동, 심리적 스트레스 등 환경적 요인에 따라 서로 다른 표현형을 나타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에피제네틱스(epigenetics)는 DNA 염기서열의 변화 없이, 유전자 발현이 조절되는 생물학적 현상을 뜻한다. 즉, A, T, C, G로 구성된 유전정보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어떤 유전자가 언제, 얼마나 발현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조절 시스템”이다. ‘에피(epi-)’는 그리스어로 “~위에(over, upon)”를 의미하는, 즉 “유전자의 위에서 조절하는 기제”라는 뜻이다.
참고로, 에피제네틱스(epigenetics)와 단일염기다형성(SNP)은 모두 인간의 표현형 다양성과 환경 적응을 설명하는 중요한 유전체적 메커니즘이지만, 그 작동 방식과 진화적 속성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SNP는 DNA 염기서열의 특정 위치에서 단일 염기가 다른 염기로 치환된 유전적 변이를 의미하며, 이는 단백질 구조나 기능 자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적 차이로서, 자연선택의 결과로 오랜 시간 집단 내에 누적된다. 반면, 에피제네틱스는 DNA 염기서열이 변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전자 발현 수준을 조절하는 생물학적 현상이다. 주요 메커니즘은 DNA 메틸화, 히스톤 변형, 비암호화 RNA의 작용 등이 있다.
에피제네틱스는 환경 자극, 문화적 실천, 반복된 신체 활동 등에 의해 유도될 수 있으며, 일부는 세대를 넘어 후성적으로 전승되기도 한다. 요컨대, SNP가 '무엇이 쓰여 있는가'라는 유전 정보의 내용 그 자체를 바꾸는 것이라면, 에피제네틱스는 '그 정보를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조절 기제라 할 수 있다. 전자는 비교적 고정적이며 유전적 기반의 진화 경로를 형성하는 반면, 후자는 보다 유연하고 환경 반응적인 조절 시스템으로 작동하여, 생물체가 동일한 유전형을 가지고도 다양한 표현형을 나타낼 수 있게 한다.
대표적인 에피제네틱스 메커니즘인 DNA 메틸화, 히스톤 변형, 비암호화 RNA의 작용은 유전자의 발현을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세 가지 메커니즘은 유전자 염기서열 자체를 변경하지 않고도 유전자 발현을 정교하게 조절하는 생물학적 경로들이다.
첫째, DNA 메틸화(DNA methylation)는 DNA의 시토신(C) 염기에 메틸기(–CH₃)가 부착되어 유전자의 ‘전사(표현)’를 억제하는 방식이다. 메틸기는 탄소(C) 원자 1개와 수소(H) 원자 3개로 이루어진 작고 소수성(hydrophobic)적인 화학 작용기로, 분자적 크기는 작지만 그 기능은 크다. 메틸화는 주로 유전자의 프로모터(promoter)부위에서 발생한다.
(2) 아프리카인의 말라리아 내성 (HBB 유전자): HBB 유전자의 변이인 rs334는 겸상 적혈구 빈혈증을 유발하지만, 이형접합(한 개의 변이만 가진 경우)에서는 말라리아 기생충의 생존을 억제하여 말라리아 내성을 갖게 한다. 이는 이질우성 우세(heterozygote advantage)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3) 유럽인의 유당 분해 능력 (LCT 유전자): 유럽 농경·목축 문화에서는 성인기에도 락타아제 효소를 발현하는 LCT 유전자의 변이(rs4988235)가 널리 퍼져 있다. 이는 우유를 성인까지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며, 칼로리 확보가 어려운 고위도 지역에서 생존에 유리했다.
(4) 에스키모(이누이트)의 지방 대사 적응 (FADS 유전자): 고지방 식단을 유지하는 북극 지역의 이누이트는 FADS 유전자의 변이를 통해 포화지방산을 효율적으로 대사한다. 이는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고 에너지 생산을 극대화하는 데 기여한다.
(5) 아시아인의 알코올 분해 능력 (ALDH2 유전자): ALDH2 유전자의 rs671 변이는 알코올을 분해하는 능력을 떨어뜨린다. 이로 인해 동아시아 인구의 상당수는 음주 시 얼굴이 붉어지는 '플러시 반응'을 보인다. 비록 이 변이는 간 기능 저하와 관련될 수 있지만, 술 소비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각 지역 집단의 유전자 빈도 차이는 단순한 유전적 우연이 아니라, 특정 환경에서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표현형이 선택된 결과이다. 해녀 유전형 또한 이와 같은 진화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제주라는 환경과 잠수라는 생업이 어떻게 인간 유전자 풀에 흔적을 남겼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간주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유전자 빈도 차이가 단지 지역의 특수성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2.5절에서 살펴볼 바자우 집단과 같은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도 유사한 생리적 기능을 지닌 유전형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해녀 유전형이 인간의 보편적 적응 메커니즘, 즉 환경압력에 대한 자연선택의 결과로 형성된 지역 적응의 보편적 사례임을 입증한다. 이 연결은 제주 해녀를 단지 고립된 민속 현상이 아닌, 전 지구적 진화 법칙의 일부로 재조명할 수 있게 해준다.
2.5 바자우(Bajau, 바다 집시))와 비교: 수렴 진화의 관점
수렴 진화(convergent evolution)는 서로 다른 생물 집단이 유사한 환경압력에 적응하면서 비슷한 형질이나 유전형을 획득하는 진화 현상이다. 동남아의 바자우(Bajau, 바다 집시)는 수중 채집을 해온 해양 유목민 집단으로, 해녀와 유사한 생리적 특성을 보인다. 이들에게서도 PDE10A 유전자 변이와 비장 크기의 상관관계가 보고되었으며, 이는 해녀 사례와 유사한 지역적 적응으로 해석된다.
바자우인은 평균보다 비장이 50% 이상 크고, 이는 잠수 시 산소 저장량 증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이들의 생활 방식은 해녀와 유사하게 고빈도의 무호흡 잠수를 필요로 하며, 그 결과 자연선택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두 집단은 지리적으로 전혀 다른 환경에 살았지만, 유사한 생존 전략을 통해 유사한 유전형을 획득한 것이다. 이는 인간 유전체가 환경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적응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예이다.
2.6 해녀 유전자와 문화적 멸종이 유전자 풀에 미치는 영향
유전자의 생존과 유지 가능성은 그것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적·문화적 조건에 달려 있다. 제주 해녀에게서 관찰되는 잠수 적응 유전형은 특정 유전자의 SNP 변이에 기반하며, 산소 저장 및 심박수 조절과 같은 생리적 이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유전형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해당 표현형이 생존과 생업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는 문화적 맥락, 즉 수산물 채집을 중심으로 한 잠수 생활 환경이 전제되어야 한다.
오늘날 해녀 공동체는 고령화와 산업화의 영향으로 급속히 축소되고 있으며, 이는 곧 해녀 유전형이 적응적 우위를 누리던 특수한 환경의 붕괴를 뜻한다. 문화는 단지 생활양식이 아니라, 특정 유전형의 표현을 가능케 하는 생태적 맥락이기도 하다. 해녀의 반복적 잠수 활동은 PPARA, PDE10A 등과 같은 유전자에 존재하는 특정 단일염기다형성(SNP) 변이와 상호작용하면서, 고유한 생리적 표현형을 형성해왔다.
이러한 표현형은 문화적 실천, 즉 세대를 거듭하며 축적된 잠수 경험을 통해 발현되었으며, 이는 곧 해당 유전형이 선택적 이점을 지니게 되는 진화적 압력의 일부였다. 그러나 이제 그 문화가 사라지고, 표현형이 더 이상 실현되지 않는다면, 그 유전형도 생물학적 기능과 선택적 의미를 점차 상실하게 된다.
문화적 환경이 사라지고 자연선택의 압력이 약화되면, 유전형의 향방은 적응성과 무관한 무작위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이를 유전자 부동(genetic drift)이라 한다.
유전자 부동(genetic drift)은 자연선택과는 달리, 생존이나 번식의 유리함 여부와 무관하게 유전형이 ‘운에 따라’ 확산되거나 소멸되는 과정이다. 즉, 문화의 소멸이 유전 진화의 방향성을 잃게 만드는 현상이며, 해녀 유전자의 진화적 운명 또한 예측 불가능한 확률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게 됨을 의미한다.
특히 집단 규모가 작아질수록 이 효과는 증폭되며, 특정 유전형이 우연히 후세에 과도하게 반영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두 가지 대표적인 현상이 병목 효과(bottleneck effect)와 창시자 효과(founder effect)다.
병목 효과는 전염병, 산업화, 고령화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해 전체 집단의 수가 급감하면서 유전자 풀이 축소되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생존한 소수의 개체들이 전체 유전자의 대표가 되어 유전적 다양성이 급격히 감소한다. 한편, 창시자 효과는 제한된 수의 해녀가 새로운 마을 공동체를 형성할 때, 그들의 유전형이 원래 제주 해녀 집단보다 더 비정상적으로 높게 반영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처럼 유전형의 향방은 더 이상 적응도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우연적 사건의 산물로 전환된다.
더 나아가 최근의 유전학은 유전자 자체의 구조적 변화 없이도 유전자의 발현 여부가 조절될 수 있다는 메커니즘, 즉 에피제네틱스(epigenetics, 후성유전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같은 유전형을 가진 개인이라도 문화적 실천, 반복된 신체활동, 심리적 스트레스 등 환경적 요인에 따라 서로 다른 표현형을 나타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에피제네틱스(epigenetics)는 DNA 염기서열의 변화 없이, 유전자 발현이 조절되는 생물학적 현상을 뜻한다. 즉, A, T, C, G로 구성된 유전정보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어떤 유전자가 언제, 얼마나 발현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조절 시스템”이다. ‘에피(epi-)’는 그리스어로 “~위에(over, upon)”를 의미하는, 즉 “유전자의 위에서 조절하는 기제”라는 뜻이다.
참고로, 에피제네틱스(epigenetics)와 단일염기다형성(SNP)은 모두 인간의 표현형 다양성과 환경 적응을 설명하는 중요한 유전체적 메커니즘이지만, 그 작동 방식과 진화적 속성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SNP는 DNA 염기서열의 특정 위치에서 단일 염기가 다른 염기로 치환된 유전적 변이를 의미하며, 이는 단백질 구조나 기능 자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적 차이로서, 자연선택의 결과로 오랜 시간 집단 내에 누적된다. 반면, 에피제네틱스는 DNA 염기서열이 변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전자 발현 수준을 조절하는 생물학적 현상이다. 주요 메커니즘은 DNA 메틸화, 히스톤 변형, 비암호화 RNA의 작용 등이 있다.
에피제네틱스는 환경 자극, 문화적 실천, 반복된 신체 활동 등에 의해 유도될 수 있으며, 일부는 세대를 넘어 후성적으로 전승되기도 한다. 요컨대, SNP가 '무엇이 쓰여 있는가'라는 유전 정보의 내용 그 자체를 바꾸는 것이라면, 에피제네틱스는 '그 정보를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조절 기제라 할 수 있다. 전자는 비교적 고정적이며 유전적 기반의 진화 경로를 형성하는 반면, 후자는 보다 유연하고 환경 반응적인 조절 시스템으로 작동하여, 생물체가 동일한 유전형을 가지고도 다양한 표현형을 나타낼 수 있게 한다.
대표적인 에피제네틱스 메커니즘인 DNA 메틸화, 히스톤 변형, 비암호화 RNA의 작용은 유전자의 발현을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세 가지 메커니즘은 유전자 염기서열 자체를 변경하지 않고도 유전자 발현을 정교하게 조절하는 생물학적 경로들이다.
첫째, DNA 메틸화(DNA methylation)는 DNA의 시토신(C) 염기에 메틸기(–CH₃)가 부착되어 유전자의 ‘전사(표현)’를 억제하는 방식이다. 메틸기는 탄소(C) 원자 1개와 수소(H) 원자 3개로 이루어진 작고 소수성(hydrophobic)적인 화학 작용기로, 분자적 크기는 작지만 그 기능은 크다. 메틸화는 주로 유전자의 프로모터(promoter)부위에서 발생한다.
유전자 프로모터(promoter)는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핵심적인 DNA 서열로, 전사(transcription)가 시작되는 출발점을 의미한다. 전사란 유전자에 담긴 유전 정보를 DNA로부터 RNA로 옮겨 적는 과정으로, 단백질 합성의 첫 단계이다. 즉, 세포는 DNA에 저장된 정보를 필요에 따라 mRNA(전령 RNA)로 복사한 뒤, 그 정보를 바탕으로 단백질을 만든다. 이처럼 전사는 유전자가 기능을 발휘하는 출발점이며, 생명현상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프로모터는 이러한 전사가 시작되도록 하는 ‘신호등’의 역할을 한다. 보통 유전자의 상류, 즉 전사 시작점 바로 앞쪽에 위치하여 RNA 중합효소(RNA polymerase)와 여러 전사 인자(transcription factors)가 결합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진핵세포의 경우, ‘TATA box’라 불리는 특징적인 염기서열이 흔히 발견되며, 이는 RNA 중합효소가 전사 시작점을 정확히 인식하도록 돕는다. 이 외에도 CAAT box, GC box 등 다양한 조절 서열들이 존재하며, 각기 다른 유전자마다 고유한 조절 양식을 가지고 있다.
특히 최근 에피제네틱스(epigenetics) 분야에서는 이 프로모터 영역이 전사 조절의 가장 중요한 무대라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 후성유전적 조절 방식 중 하나인 DNA 메틸화(methylation)는 바로 이 프로모터 부위에서 주로 발생한다. DNA에서 시토신(Cytosine)이라는 염기에 메틸기(-CH₃)가 붙게 되면, 해당 부위에 전사 인자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전사가 억제된다. 이는 곧 그 유전자가 ‘침묵(silenced)’된다는 의미이며, 단백질로 전환되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예를 들어, 암세포에서 종양 억제 유전자의 프로모터가 비정상적으로 메틸화되면, 이 유전자는 전사되지 않고 침묵 상태에 빠진다. 그 결과 세포의 이상 증식이 억제되지 않아 종양이 형성될 수 있다. 반대로, 분화가 진행되는 줄기세포에서는 특정 유전자의 프로모터가 선택적으로 탈메틸화되어 해당 유전자가 발현됨으로써 특정 조직 세포로 분화하게 된다. 이는 생물학적 발달, 환경에 따른 반응, 그리고 학습과 기억의 형성 등 다양한 생명현상에서 핵심적인 기제로 작용한다.
결론적으로, 유전자 프로모터는 단순히 전사의 출발점이라는 기술적 의미를 넘어, 세포가 외부 신호에 반응하고 자신을 조절하는 정교한 생명 시스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메틸화와 같은 에피제네틱스 조절 기제가 이 부위에서 작동함으로써, 유전자는 단순한 정보 저장소를 넘어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기능하는 유기체적 주체로 작동하게 된다.
프로모터는 이러한 전사가 시작되도록 하는 ‘신호등’의 역할을 한다. 보통 유전자의 상류, 즉 전사 시작점 바로 앞쪽에 위치하여 RNA 중합효소(RNA polymerase)와 여러 전사 인자(transcription factors)가 결합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진핵세포의 경우, ‘TATA box’라 불리는 특징적인 염기서열이 흔히 발견되며, 이는 RNA 중합효소가 전사 시작점을 정확히 인식하도록 돕는다. 이 외에도 CAAT box, GC box 등 다양한 조절 서열들이 존재하며, 각기 다른 유전자마다 고유한 조절 양식을 가지고 있다.
특히 최근 에피제네틱스(epigenetics) 분야에서는 이 프로모터 영역이 전사 조절의 가장 중요한 무대라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 후성유전적 조절 방식 중 하나인 DNA 메틸화(methylation)는 바로 이 프로모터 부위에서 주로 발생한다. DNA에서 시토신(Cytosine)이라는 염기에 메틸기(-CH₃)가 붙게 되면, 해당 부위에 전사 인자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전사가 억제된다. 이는 곧 그 유전자가 ‘침묵(silenced)’된다는 의미이며, 단백질로 전환되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예를 들어, 암세포에서 종양 억제 유전자의 프로모터가 비정상적으로 메틸화되면, 이 유전자는 전사되지 않고 침묵 상태에 빠진다. 그 결과 세포의 이상 증식이 억제되지 않아 종양이 형성될 수 있다. 반대로, 분화가 진행되는 줄기세포에서는 특정 유전자의 프로모터가 선택적으로 탈메틸화되어 해당 유전자가 발현됨으로써 특정 조직 세포로 분화하게 된다. 이는 생물학적 발달, 환경에 따른 반응, 그리고 학습과 기억의 형성 등 다양한 생명현상에서 핵심적인 기제로 작용한다.
결론적으로, 유전자 프로모터는 단순히 전사의 출발점이라는 기술적 의미를 넘어, 세포가 외부 신호에 반응하고 자신을 조절하는 정교한 생명 시스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메틸화와 같은 에피제네틱스 조절 기제가 이 부위에서 작동함으로써, 유전자는 단순한 정보 저장소를 넘어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기능하는 유기체적 주체로 작동하게 된다.
유전자 프로모터 부위가 메틸화되면 전사 인자가 결합하지 못하고, 결국 해당 유전자는 발현되지 않는다.
이로써 유전자 자체는 존재하지만 '읽히지 않는 상태', 즉 기능적으로 침묵(silenced)하게 된다. 제주 해녀의 경우, 반복적 무호흡 잠수, 수중 채집 노동, 저온 수압 적응과 같은 고유한 문화적 행위가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에피제네틱 경로를 활성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PPARA 유전자의 프로모터 메틸화를 감소시켜 지방 대사 및 산소 효율성 관련 유전자 발현을 증가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단순한 생리적 훈련을 넘어서, 환경 자극이 유전자 조절 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진화적 의미를 갖는다.
둘째, 히스톤 변형(histone modification)은 DNA가 감겨 있는 히스톤 단백질의 꼬리 부분에 아세틸기, 메틸기 등이 부착되어 DNA와의 결합 상태를 느슨하게 하거나 강화시키는 작용이다. 예를 들어, 히스톤 아세틸화가 증가하면 DNA가 더 쉽게 풀리며 해당 유전자의 발현이 촉진된다. 제주 해녀는 수십 년간 지속된 잠수 활동을 통해, PPARA 또는 PDE10A 유전자 주변 히스톤의 구조 변형을 유도했을 수 있으며, 이러한 구조 변화는 산소 절약형 생리 반응을 장기적으로 강화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셋째, 비암호화 RNA(non-coding RNA)는 단백질을 만들지 않지만 유전자 발현 조절에 핵심적이다. 특히 miRNA는 표적 mRNA에 결합하여 번역을 억제하거나 분해시키는 기능을 하며, 제주 해녀에게는 산소 소비나 심박수 조절 관련 mRNA의 발현 속도나 지속 시간을 조절하는 데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miRNA 기반의 조절은 체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단기간의 산소 부족 상태에서도 생존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에피제네틱스(epigenetics) 조절 메커니즘은 같은 유전형(genotype)을 지닌 사람이라도, 해녀처럼 특정 문화적 실천을 지속해온 집단이 유전자 발현 방식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이러한 차이는 일부 후성적 경로를 통해 세대를 넘는 생리적 특성의 전승으로 이어질 수 있어, 제주 해녀는 유전자와 문화,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공진화(co-evolution)의 중요한 사례가 된다.
그러나 문화적 실천이 중단되면, 이러한 발현 조절 신호도 사라지게 된다. 유전형는 여전히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발현시키는 생물학적 회로는 비활성화되며, 표현형의 실현 가능성은 현저히 감소한다. 따라서 해녀 유전자의 운명은 단지 염기서열의 지속 여부가 아니라, 그 표현을 가능케 했던 문화적·생태적 경험의 지속 여부에 달려 있다. 해녀 문화의 소멸은 해녀 유전형의 자연선택 환경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다.
해녀 유전형의 소멸은 단지 한 유전자의 사라짐이 아니라, 인간 문화와 환경이 장기간 상호작용한 결과물의 단절을 의미한다. 따라서 해녀 유전자에 대한 연구는 과거 생존 전략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넘어, 생물다양성과 문화다양성을 동시에 보존해야 하는 인류학적 과제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 표현형이 사라지면 유전형도 진화적 의미를 잃는다. 해녀의 유전적 유산은 문화적 지속성 안에서만 그 생물학적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3. 결론
해녀 유전자는 제주 해녀들에게서 통계적으로 높은 빈도로 발견되는 유전자 변이(variant)를 의미한다. 해녀 유전자는 염기서열의 작은 차이(SNP)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것은 수 세기 동안 제주 바다에서 살아온 여성들의 생존 전략이 유전학적 흔적으로 새겨진 것이며, 유전자와 환경이 어떻게 공진화(co-evolution)하는지를 보여주는 지역 적응의 보편적 사례로 평가된다.
해녀 유전형은 PPARA와 PDE10A 같은 기본 유전자 내 SNP 차이로 표현되며, 이 표현형은 해녀의 강한 잠수 반응이라는 생리적 적응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해녀라는 직업과 문화가 사라지면, 이 유전형도 더 이상 선택받지 못하고 유전자 풀에서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는 유전형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발현될 환경이 사라지면 더 이상 진화적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앞서 2.6절에서 논의한 유전자 부동과 표현형 상실의 연장선상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것이 더 이상 생존 환경에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유전자는 진화의 흔적을 간직하지만, 그것을 현재로 되살리는 힘은 문화적 실천에 달려 있다. 따라서 해녀 유전형의 과학적 가치를 보존하고자 한다면, 이 유전형에 대한 문화적 맥락과 사회적 관심 또한 함께 계승되어야 한다. 해녀 유전자 보존은 단순한 유전적 다양성 유지가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환경에 반응하고 적응하며 진화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이자, 사라져가는 유전-문화의 공진화 관점에서 재조명되어야 할 인류 진화사의 한 장면이다. (끝)
둘째, 히스톤 변형(histone modification)은 DNA가 감겨 있는 히스톤 단백질의 꼬리 부분에 아세틸기, 메틸기 등이 부착되어 DNA와의 결합 상태를 느슨하게 하거나 강화시키는 작용이다. 예를 들어, 히스톤 아세틸화가 증가하면 DNA가 더 쉽게 풀리며 해당 유전자의 발현이 촉진된다. 제주 해녀는 수십 년간 지속된 잠수 활동을 통해, PPARA 또는 PDE10A 유전자 주변 히스톤의 구조 변형을 유도했을 수 있으며, 이러한 구조 변화는 산소 절약형 생리 반응을 장기적으로 강화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셋째, 비암호화 RNA(non-coding RNA)는 단백질을 만들지 않지만 유전자 발현 조절에 핵심적이다. 특히 miRNA는 표적 mRNA에 결합하여 번역을 억제하거나 분해시키는 기능을 하며, 제주 해녀에게는 산소 소비나 심박수 조절 관련 mRNA의 발현 속도나 지속 시간을 조절하는 데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miRNA 기반의 조절은 체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단기간의 산소 부족 상태에서도 생존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에피제네틱스(epigenetics) 조절 메커니즘은 같은 유전형(genotype)을 지닌 사람이라도, 해녀처럼 특정 문화적 실천을 지속해온 집단이 유전자 발현 방식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이러한 차이는 일부 후성적 경로를 통해 세대를 넘는 생리적 특성의 전승으로 이어질 수 있어, 제주 해녀는 유전자와 문화,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공진화(co-evolution)의 중요한 사례가 된다.
그러나 문화적 실천이 중단되면, 이러한 발현 조절 신호도 사라지게 된다. 유전형는 여전히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발현시키는 생물학적 회로는 비활성화되며, 표현형의 실현 가능성은 현저히 감소한다. 따라서 해녀 유전자의 운명은 단지 염기서열의 지속 여부가 아니라, 그 표현을 가능케 했던 문화적·생태적 경험의 지속 여부에 달려 있다. 해녀 문화의 소멸은 해녀 유전형의 자연선택 환경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다.
해녀 유전형의 소멸은 단지 한 유전자의 사라짐이 아니라, 인간 문화와 환경이 장기간 상호작용한 결과물의 단절을 의미한다. 따라서 해녀 유전자에 대한 연구는 과거 생존 전략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넘어, 생물다양성과 문화다양성을 동시에 보존해야 하는 인류학적 과제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 표현형이 사라지면 유전형도 진화적 의미를 잃는다. 해녀의 유전적 유산은 문화적 지속성 안에서만 그 생물학적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3. 결론
해녀 유전자는 제주 해녀들에게서 통계적으로 높은 빈도로 발견되는 유전자 변이(variant)를 의미한다. 해녀 유전자는 염기서열의 작은 차이(SNP)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것은 수 세기 동안 제주 바다에서 살아온 여성들의 생존 전략이 유전학적 흔적으로 새겨진 것이며, 유전자와 환경이 어떻게 공진화(co-evolution)하는지를 보여주는 지역 적응의 보편적 사례로 평가된다.
해녀 유전형은 PPARA와 PDE10A 같은 기본 유전자 내 SNP 차이로 표현되며, 이 표현형은 해녀의 강한 잠수 반응이라는 생리적 적응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해녀라는 직업과 문화가 사라지면, 이 유전형도 더 이상 선택받지 못하고 유전자 풀에서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는 유전형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발현될 환경이 사라지면 더 이상 진화적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앞서 2.6절에서 논의한 유전자 부동과 표현형 상실의 연장선상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것이 더 이상 생존 환경에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유전자는 진화의 흔적을 간직하지만, 그것을 현재로 되살리는 힘은 문화적 실천에 달려 있다. 따라서 해녀 유전형의 과학적 가치를 보존하고자 한다면, 이 유전형에 대한 문화적 맥락과 사회적 관심 또한 함께 계승되어야 한다. 해녀 유전자 보존은 단순한 유전적 다양성 유지가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환경에 반응하고 적응하며 진화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이자, 사라져가는 유전-문화의 공진화 관점에서 재조명되어야 할 인류 진화사의 한 장면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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