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마농과 아주망

제주시 동문시장에서 봄나물인 꿩마농과 냉이를 사왔다. 백수인 주제에 고기는 먹을 수 없고 풀이라도 뜯어야 살 수 있겠기에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시장에 갔지만 그것은 핑계일 뿐 우리 몸은 계절에 따라 신체리듬을 맞춰야 하고 그래서 봄 기운을 받고 더운 여름을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봄나물은 늦은감이 있다. 입춘이 지났어도 눈이 여러 번 오는 바람에 나물들이 땅속에는 있되 눈속에 파묻혀 나오지 못하다가 이제야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벌써 봄 밥상에 올라와야할 들미나리는, 시장통 할망(할머니의 제주어) 왈 “눈 볼근 사람이 눈 밸랑 봐야 겨우 볼 수 이수다.”(눈目 좋은 사람이 눈 크게 뜨고 자세히 찾아봐아 볼 수 있다)라고 말할 정도다.

꿩마농은 작은 소쿠리 하나에 5천 원, 냉이는 2천 원이다. 시장통 할망이 손으로 깨끗하게 다듬었기 때문에 별로 손 안 들여 먹을 수 있다.

흔히들 꿩마농을 달래라고 하지만 꿩마농과 달래는 엄연히 다르다. 꿩마농은 ‘두껍고 굵으며’ 달래는 그냥 ‘좀질고 얄룹’다(가늘고 얇다는 제주어). ‘눈 밸랑’ 보지 않아도 제주 사람이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내 분류법이니 사실 꿩마농이 달래다.

할망은 꿩마농을 ‘두껍고 굵은거’하고 ‘좀질고 얄룬거’ 두 가지로 구분해서 팔고 있었지만 둘 다 ‘꿩마농’이다. 그래서 가격은 똑같다. 나는 두껍고 굵은 꿩마농을 샀다.

그러나 꿩마농의 사용가치는 나한테만 있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때 어떤 아주망(아줌마의 제주어)이 할망 앞에 가서는 자기도 꿩마농을 사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할망이 꿩마농을 검은 ‘비니루’(제주사람들은 '비닐 봉투'를 흔히 '비니루'라고 부른다)에 담아 아주망한테 건네주는 과정에서 할망 앉은 자리에 꿩마농 세 가닥이 바닥에 있는 것을 아주망이 발견하고는 그것도 자기가 산 것이라고 하며 검은 ‘비니루’에 담을 것을 요구했다.

꿩마농 세 가닥이 무슨 대수일까 생각할지 모르지만 꿩마농은 하나하나 떼어내어 손질해야 하고 그때마다 뿌리에 묻은 흙을 일일이 털고 물에 씻어야 하는 정말 ‘귀찮음’의 손노동이다. 부엌일이 어디 쉬운 것이 있겠습니까. 그런만큼 무엇이든 ‘코코리’(아주 세세히의 제주어) 다듬는 일은 정말 힘들다. 그래서 꿩마농 한 가닥의 가치는 매우 높다할 것이다. 만약 꿩마농 세 가닥을 무침으로 만들어 먹을 경우 ‘창지 쪼근’(창자 작은) 사람은 한 끼의 식사도 해결할 수 있다. 아주망은 꿩마농의 가치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주망의 인상 착의를 슬쩍 곁눈질 했다. 썬그라스에 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한국의 아줌마다. 그러니까 뻬딱구두(하이힐)에 껌을 씹으며 재래시장 바닥을 휘젓고 다니다가 할망들한테 물건 가격을 깎아버리거나 한 줌 더 얹힐 것을 강박하는 그런 아줌마의 모습이었다. 할망들한테는 무서운 강적, 그런 여성을 아내로 둔 남편한테는 최고의 살림꾼이다.

이리하여 세 가닥의 꿩마농을 앞에 둔 할망과 아주망 사이에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할망은 바닥에 있는 꿩마농 세 개는 금방 자기가 다듬은 것이라고 했다. 아주망은 ‘비니루’에 담다가 떨어진 것이라고 우겼다. 옥신각신, 두 사람은 말로 싸우기 시작했다.

싸움의 결과는 어떻게 됐는지 나는 모른다. 늘 그래왔듯이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의 아줌마’가 이겼을 것이라고 짐작해보지만 싸움이 끝나기 전 시장 골목을 빠져나와 집에 와서 꿩마농 무침에 냉이국을 끓여 아내와 맛있게 먹었을 뿐 시장통에서의 소란스러움이 어디 하루 이틀이겠는가!! (끝)

*2023년 3월 내가 가입한 네이버 밴드에 올린 글을 다시 이곳으로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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