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리듬이 있었다."



리듬(아니면 음악이라고 불러도 좋다)이 아리랑이 되었건 클래식이 되었건 아니면 팝송과 트로트 뽕짝이 되었건 간에 선율의 아름다움과 황홀경을 느끼는 두뇌 영역은 그것이 인간이면 모두 똑같다고 할 수 있다.

피아노곡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연주하는 동안 청중중 이성간 입맛춤은 3번 있었고, 기쁨에 겨워 우는 사람 1명, “모야!”하며 연주 실력을 감탄하는 여인 1명, 따라부르는 사람 1명 등 모든 청중은 황홀경에 빠졌다.
소리의 본래적 기능은 집단 구성원간 위험 신호이며 협력을 위한 상호작용의 언어로서 생존 본능이다. 처음에는 '괙괙' 소리 지르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점차 다듬어지고 다듬어지면서 일정한 규칙이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어떤 것은 말과 문자로 어떤 것은 리듬이 있는 음악이 되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DNA는 ‘리듬’이 흘러나오면 기쁨에 빠지도록 염기서열의 한 분절에 기록함으로써 타인 또는 외집단의 공격본능을 약화시켰다.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나치 장교는 그의 피아노 소리에 감흥받아 오히려 그에게 먹을 것을 주며 두 사람은 잠시나마 전쟁의 참화를 잊고 두려움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포크송의 여왕 존 바에즈(Joan Chandos Baez)가 베트남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노래로 평화를 외친 것, 그의 연인 밥 딜런(Bob Dylan)이 ‘Blowin' In The Wind‘를 부르며 평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포탄이, 죽음이 필요합니까‘를 외친 것은 음악이 주는 생존 본능 때문이다. 저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누가 다투겠는가!
그래서 사람이 모이는 곳마다 싸우지 말 것을 다짐하며 노래는 흘러나오고, 힘들고 외로울 때 언제나 음악은 당신을 황홀경에 빠뜨리며 위로해 주는 것이다.

동시에 당신을 기쁘게 해주었다는 것, 때문에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하는 사람‘은 늘 구애의 대상이 된다. 음악처럼 다른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유전적 능력은 진화 과정에서 자연선택되며(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저작권으로 보호받는다) 그의 생존 능력이 단단해진 것이다. 3~5분짜리 소리 하나로 수억을 버는 것은 음악이 유일하지 않은가.
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고, 스트레스를 억제시켜 생존 본능을 강화시켜 준 것, 노래와 연주에 빠져 연인들끼리 자동적으로 입맛춤하게 함으로써 왕성한 번식 활동을 유도한 오랜 진화적 결과물치고는 그래도 모자라다.(끝)
20024.6.28.


댓글 쓰기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