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 여사와 독고 씨, 선한 본성의 천사들

이타성을 흔히 도덕성이라 부른다. 인간이 지닌 덕德을 말한다. 덕은 인류의 탄생과 함께 줄곧 진화하였고, 그 안에 내재된 많은 종류의 본성들이 도덕성을 심화시켰다. 감정이입으로서 공감능력, 타인의 관점 취하기로서 역지사지 원리 등이 그것이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이것을 ‘인간 본성의 선한 천사’라고 했다. 이 도덕성은 반대되는 감정, 즉 폭력, 이기심, 위선, 거짓말 등을 조절하며 생존을 위한 우리 모두의 적응 능력을 높여주었다. 인류가 지금까지 겪어온 수많은 폭력과 전쟁, 숱한 위기에 쓰러지지 않고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본성으로서 이런 도덕 감정 때문이다.
최근 40만 부가 넘게 팔려 벚꽃 모양의 에디션까지 인쇄한『불편한 편의점』(김호연, 나무옆의자, ’21.4.20.)은 이 공감 능력과 역지사지라는 인간 본성의 이타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등장 인물들의 이타성을 통해 코로나로 인한 비관주의보다 세상은 아직도 살만하다는 낙관주의가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이성은 날카로워졌지만 그만큼 감성도 따뜻하게 진화했다는 작가의 인식이 소설 속에 녹아 들어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주인공인 염 여사와 독고 씨를 중심으로 각각의 사연 있는 인물들이 등장하여 현실적인 문제를 풀어가는 휴먼스토리가 된다.
어느 낯선 부인의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준 노숙자 독고 씨, 그런 그가 고마워 성실하고 정직한 것 같아 마치 나에게는 ‘이타성의 관대함의 한도’는 없다는 듯 자신의 편의점에 알바로 채용한 염 여사, 그 편의점을 찾는 사연 있고 혼술하러 오는 사람들 상호간 오해하고 이해하고 다시 충돌하고 그러나 결국 독고 씨에 의해 설파된 역지사지 논리로 그들 모두는 다시 삶의 희망을 찾는다는 다소 감동적인 이야기다.
소설은, 이 사연 있고 일상에 지쳐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앉아 혼술 먹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소소하고 찐한 일상의 언어로 그렸다. 편의점 이름은 ‘allways’이고 서울 숙명여대 인근 청파동 골목에 있다.
편의점 ‘allways’에 혼술하러 오는 사람들 눈에는 세상은 비관주의로 가득하다. 나라 안으로는 단군 이래 경제는 단 한 번도 좋아진 적이 없고, 물가는 올라가고, 회사에서의 승진은 자꾸 탈락되고, 집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속 썩인다. 나라 밖에서는 기후변화로 지구가 물 속에 잠길 것 같고, 북한은 핵 폭탄을 만들어 남한을 공격할 것 같고, 중동 국가들은 매일 싸우고, 일본은 지지리도 말 안 듣고,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는 언제 끝날 것인가?
이 비관주의 앞에 염 여사와 독고 씨가 마치 구원의 천사처럼 나타난 것이다.
염 여사는 편의점으로 왕창 돈 벌 생각이 없다. 염 여사 자신은 평생 교사 연금으로 몸 하나 건사하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그녀는 매출이 떨어져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갈 곳이 없어지는 것이 걱정이다. 직원들은 이곳이 직장이고 이 편의점이 아니면 가족과 자신의 생계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염 여사는 잘 알고 있다. 사업자금을 위해 호시탐탐 편의점을 노리던 아들이 어머니 염 여사를 설득하는 데 끝내 실패한 것도 이런 염 여사의 ‘경영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지지리도 말 안 듣는 아들 놈과 오지게도 잘난 딸년보다” 편의점 직원들이 가족 같고 편하다,고 염 여사는 말한다. 직원들의 일자리가 없어질까봐 편의점을 팔 수 없다는 염 여사, 세상에 이런 사장도 다 있나 싶다.
독고 씨는 알콜성 치매로 말도 어눌하고 오랜 노숙자 생활로 인한 ‘인지 능력’ 퇴화로 과연 손님을 제대로 상대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독고 씨는 노숙자인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며칠 만에 편의점 일을 모두 파악하고 술도 끊고 점차 편의점 생활에 적응해 간다. 오히려 독고 씨는 사연 있고 일상에 지쳐 혼술하러 오는 사람들을 가족같이 대하며 그들을 향해 어눌하지만 묘한 말투로 역지사지라는 자신만의 삶의 철학을 얘기한다. 혼술족들은 그런 독고 씨에게 매력을 느끼고 독고 씨를 향해 우정과 치유의 손을 내밀며, 자신들도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도덕 감정의 유전자를 깜빡거렸다.
그 결과, 50대 생계형 알바 오선숙은 아들과 화해하였고, 매일 밤 혼술을 하던 의료기기 판매원 경만은 예쁜 중학생 두 딸을 위해 술을 끊었고, 감수성 고갈로 글을 쓸 수 없었던 작가 인경은 ‘독고 씨의 삶’을 주제로 다시 글을 쓸 수 있었다. 염 여사의 배려로 직원들은 편의점을 평생 직장처럼 여기게 되었다.
이제 세상은 염 여사와 독고 씨에 의해 발현發現된 공감 능력과 역지사지라는 선한 본성의 이타성에 의해 비관주의에서 낙관주의로 흐르기 시작했다.
이런 성향은 ‘염 여사와 직원 간’에, ‘독고 씨와 편의점을 찾는 사연 있는 사람들’ 간에 상호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호혜적 이타주의1)라는 또다른 도덕 감정으로 작동하여 그들 모두의 생존 조건을 한단계 더 상승시켰다.
이것은 코로나로 인한 고통과 슬픔에 빠진 사회를 방치하는 것은 곧 자신의 생존 조건도 약화시킬 터 지금 상황에서 이를 조절하고 통제할 ‘우리의 선한 본성’인 도덕 감정을 작동시키는 상호 호혜적 이타성이 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리하여 청파동 골목 편의점 ‘allways’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도덕적인 사람들이 사는 곳이 되었다. 호혜적 이타성의 순환적 상호작용 속에 세상은 진보하고, 하나의 성향으로서 이 도덕적 행위의 범위는 이제 ‘이웃 동네로, 지역 사회로, 국가로, 더 나아가 모든 인류로 확대’될 것이다. 그러므로 염 여사와 독고 씨가 ‘선한 본성의 천사’다. (끝)
📌 주(註)
1) 언젠가 자신을 도와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자신을 희생하여 다 른 개체(사람)을 돕는 행동. 호혜적 이타주의는 희생과 보답의 상호 교환이다. “네 가 내 등을 긁어주면 나도 긁어주마”라는 말로 압축된다.
'호혜적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는 겉보기에는 이타적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미래의 보상을 기대하는 전략적 이타성이 작동하는 진화적 행동양식이다. 이 개념은 진화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Robert Trivers)가 1971년 발표한 논문 「The Evolution of Reciprocal Altruism」에서 처음 이론화되었으며, 이후 진화심리학과 사회학에서도 핵심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트리버스에 따르면, 어떤 생명체가 타인에게 이익을 주되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나중에 받을 수 있다면, 당장의 손해는 장기적 이득으로 상쇄될 수 있다. 이러한 상호성의 메커니즘은 특히 동일한 개체들이 반복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조건, 그리고 상대를 인지하고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다시 말해, ‘나는 오늘 너를 도와주지만, 내일은 네가 나를 도와줄 것이다’라는 암묵적 교환 계약이 성립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실제 자연 생태계에서도 광범위하게 관찰된다. 예를 들어, 흡혈박쥐는 사냥에 실패한 동료에게 피를 나누어주며, 훗날 자신이 사냥에 실패했을 때 보상을 받는다. 인간 사회에서도 친구 간의 선물 교환, 마을 공동체의 품앗이, 국가 간 원조 정책 등은 이러한 전략적 이타성의 연장선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은 단순한 유전적 친족이 아닌 타인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불리해 보이지만, 장기적인 신뢰와 평판, 상호보상 시스템이 작동하는 집단 내에서는 생존과 번식의 확률을 높이는 전략이 된다. 특히 인류는 언어, 기억, 감정, 그리고 규범적 제재 체계를 통해 ‘무임승차자(free-rider)’를 식별하고 배제함으로써 이러한 상호성 전략을 보다 정교하게 발전시켜왔다.
결과적으로 호혜적 이타주의는 단순한 도덕적 행위가 아니라, 생물학적 적응성과 문화적 진화를 함께 설명하는 통합적 개념이다. 이타성은 결코 이기심의 반대편에 있지 않다. 오히려 진화는 ‘신뢰 가능한 이타성’을 선택했고, 우리는 그것을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계승하고 있는 셈이다.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Wikipedia (한글)↩
*2022년 6월 내가 가입한 밴드에 올린 글을 다시 이곳으로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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