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빨치산의 딸』로 알려진 작가 정지아가 32년 만에 낸 장편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다. 작년 9월에 출간되었고, 조선, 한겨레 등 주요 중앙 일간지들이 뽑은 ‘2022년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소설은 아버지가 지리산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시절과 그 이후 죽을 때까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주변 인물들을 통해 작가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삶을 그렸다. 소설 속에서 작가가 생각하는 아버지는 ‘빨치산’이라 아니라 우리 시대의 ‘평범한 아버지’였다.

소설에는 사회주의자라는 관념, 특히 ‘민중’은 돈 앞에 무력하고, 신자유주의라는 광폭 앞에는 그저 코미디일 뿐 진정한 “핵맹”은 호혜적 이타주의라는 인간의 본성에 기초한 삶의 방식, 그래서 “오죽했으면 글겄냐, 긍게 사람이제”라는 아버지의 삶의 철학,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 아버지를 조롱한 딸의 부끄러움과 후회와 반성이 오롯이 담겨 있다.화자는 아버지의 딸이다. 작가 자신을 가리킨다. 소설 속 이름은 고아리다. ‘아리’는 아버지가 활동했던 백아산의 ‘아’자, 어머니가 활동했던 지리산의 ‘리’자를 따서 이름지었다. 소설 속 아버지는 ‘고상욱’이다.

아버지는 사회주의자였다. 여순반란 사건 때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 활동하다가 조직 재건을 위해 “위장 자수”를 하고 이십여 년 간 감옥살이를 했다. 그렇다고 아버지는 자신이 꿈꾸어왔던 평등한 세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죽을 때까지 “뼛속까지 유물론자”였고 사회주의자였다.그런만큼 아버지는 매사에 진지했다. “처형 직전의 독립운동가나 학살당한 동지의 시신을 목도한 혁명가라 해도 믿을 만큼 진지하다 못해 비장”했다. 하지만 그러한 아버지의 삶의 방식은 386세대의 딸이 보기에는 진지함을 넘어 차라리 유머였다. 시골에 소쿠리 팔러 왔다가 막차를 놓쳐 잠 잘곳 없는 여자 방물장수를 하룻밤 재우는 일에도 “우리가 목숨 걸고 지킬라 했던 민중이여, 민중!”이라며 ‘민중’을 끌어들인다거나, 바짓가랑이에 붙은 먼지를 털어내는 일에도 그것은 인간의 시원이라며 함부로 털어내지 말고 사회주의자는 일상에서부터 유물론자로 살아야 한다는 논리 비약 앞에 딸은 깔깔! 웃음을 참지 못한다.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는 ‘민중’ 방물장수는 서까래에 걸어놓은 마늘 반접을 훔쳐 달아나 물정모르는 촌뜨기 사회주의자를 배신했고, 먼지가 인간의 시원이라는 것은 변증법적 해석이 아니고 과학적 방법에 의해 증명한 것이므로 사회주의적 삶의 방식과 아무 상관없는 그래서 아버지의 진지함은 늘 조롱당할 뿐이다.

이처럼 아버지의 유물론적 삶의 방식 하나하나에 코미디적 웃음거리로 묘사하는 대목에서 독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지 모른다. 심지어 아버지는 “유머러스하게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었으니 “뼛속까지 사회주의자”인 아버지의 혁명적 진지함이란 고작 이런 것인가 하며 딸은 진짓 냉소를 보낸다.하지만 아버지가 죽고 난 후 3일 간의 조문기간 동안 딸은 사회주의자로서 아버지의 삶을 다시 보게 된다. 아버지 주변 인물들이 헤쳐 모여 하듯 모여들며 그동안 몰랐던 아버지의 면모를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소설은 “나 잘났다고 뻔대며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다.”라고 작가는 ‘작가의 말’에 썼다.

이제 아버지는 딸의 새로운 기억을 통해 빨치산이 아니라 우리 곁의 보편적 아버지로 부활한다. 어딘지 모르게 한(恨)의 구색처럼 들리는 남도의 말투를 작가 특유의 문체로 펼쳐보이며 독자들을 사회주의자인 한 아버지의 삶 속에 끌어들인다.그리하여 딸은 조문하러 온 아버지의 친구, 동지, 지인들을 통해 백아산과 지리산을 날아다니는 혁명 전사 혹은 진지한 태도로 민중 운운해서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사회주의자의 모습보다 합리적 현실주의자, 뼛속까지 이타주의자인 사람좋은 아버지를 발견한다.

아버지는 국민학교 동창 박한우와는, ‘반동신문 조선일보 보지마라, 한겨레 보다가 빨갱이로 소문난다’며 서로 흉을 보며 매일 티격태격 싸우지만 “그래도 사람은 갸가 젤 낫아야.”라며 사상과 사람을 별개로 보는 합리성의 소유자였고,보증을 서줬더니 야반도주해버린 먼 친척을 원망도 하지 않고 대신 돈을 갚아야 하자 이를 “악다구니”하는 어머니를 향해 “자네 혼차 잘 묵고 잘 살자고 지리산서 그 고생을 했는가? 자네는 대체 멋을 위해서 목심을 건 것이여!”라고 물으며 아버지는 서운해하거나 상처받지 않고 “오죽했으면 글겄냐!”는 식의 뼛속까지 이타주의자였고,

보급투쟁 중 순경 한 사람을 붙잡았으나 순경을 그만둔다는 조건으로 그를 풀어주었는데 다시 그 순경이 은혜를 갚으려고 쌀 한 뒷박 지고 와서는 자신도 빨치산이 되겠다는 것을 극구 말렸는데 나중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질 게 뻔한 전쟁”이었다는 냉정한 현실주의자였으며,“순갱은 사램 아니다냐?”라며 자신을 감시하는 형사들과도 술을 마시고, 인심만 안 잃으면 빨갱이도 난세에는 목숨을 부지하며 한 때 적이었던 사람들과 아무렇지 않게 어울리고 살 수 있었던 아버지는 “긍게 사람이제.”라며 그들도 사람이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사람이니까 실수를 하고, 배신을 하고, 살인도 하고, 그래서 용서도 한다”는 우리 민족 특유의 ‘용서의 미덕’을 믿었다.

마을 사람들의 어려운 부탁에 아무말 없이 머슴처럼 달려드는 오지랖 넓은 아버지, 그래서 그런 아버지가 이해할 수 없다는 386세대의 딸로부터는 ‘도대체 무슨 이익이 된다고 하며’ 조롱을 당하면서도 “오죽했으면 글겄냐!”, 진보 보수를 구분하지 않고 사람의 도리를 중요시 했던 “긍게 사람이제!”라는 휴먼니스트인 아버지, 장례 3일간 딸이 느낀 아버지는 갑자기 무언가 알 수 없는 입체적 존재감으로 다가왔다.아버지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사상이 아니다. 좌익 세상이 되면 우익 친구를 도와주고, 우익 세상이 되면 좌익 친구를 도와주는 세상, 서로 어울리는 세상이 아버지가 꿈꾸던 세상이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려고 어쩌면 지금의 신자유주의 하에서도 가능한 가난한 자도 인간 대접받는 세상에 불과한 그런 세상을 만들려고 사회주의에 발을 디뎠고, 그렇게 선택한 싸움에서 쓸쓸하게 패배하였다.그 패배의 책임이 빨갱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딸에게까지 굴레를 씌웠다. 딸은 그 굴레가 무거웠고 빨치산의 딸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여전히 허우적거리는 중이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아버지 때문에 집안은 패가망신했다. 큰집의 큰아들은 연좌제에 묶여 사관학교를 합격하고도 신원조회에 걸려 입학거절당해 결국에는 암까지 얻어 이제 곧 세상을 뜰 예정이고, 작은아버지는 이 모든 것을 아버지 탓하며 술에 취하지 않고는 한시도 견딜 수 없다.그렇다고 아버지를 비아냥거릴 자격이 딸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괴물처럼 확장하는 자본주의의 기세 앞에 절망이든 회한이든 어떠한 서글픈 감정을 잠시나마 느끼기는 했어도, 결과적으로 옳았든 틀렸든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지키려” 했기 때문이다.

대신에 딸은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서울을 꿈꾸며 지금보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쉰 넘어서야 행복도 아름다움도 거기 있지 않다는 것,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성장을 막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래서 딸은 “사램이 오죽했으면 글겄냐, 긍게 사람이제!”라는 아버지의 말을 이해했어야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일간의 장례기간 동안 그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그 순간 딸은 자신의 “시간 속에 존재한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장에 간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는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누룽지를 먹으며, 아버지 무등을 타고 어머니 마중을 나갔다. 때로는 함박눈이 쏟아지기도 하고 때로는 반딧불이 총총하기도 했다. 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아버지의 등을 자장가 삼아 어린 딸은 까무룩 잠들었다.” “딴 집 애기들은 엄마가 젤 좋다는디 우리 딸은 당신이 최곤갑소이.”

“사무치게, 라는 표현은 과하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야말로 긴긴 밤마다 그런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으리라. 그 당연한 사실을,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야 겨우 깨닫는 못난 딸”이었다.”“아버지는 나의 우주였다. 그런 존재를, 저 육신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하게 시간과 공간의 한 지점을 점령하고 있는 육신이 내일이면 몇줌의 먼지로 화할 것이다.” 아버지가 말한 ‘인간의 시원’으로 말이다.

아버지의 삶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아버지, 아버지 딸, 참 오래도 잘못 살았습니다. 그간의 오만을, 무례를, 어리석음을 용서해주길 바랍니다.”어디선가 울음 같기도 노래 같기도 한 소리가 들렸다. 딸을 부르는 소리였다. 노래였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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