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통화, 무너진 가치

"국가부도의 날" 이후 한국사회

1997년 12월 3일은 우리나라가 IMF협상안에 최종 서명하고 IMF 관리체제가 시작된 날이다. 사람들은 이날을 ‘국치’라고 불렀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쓰러지고 은행이 망하고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렸다. 당시 ‘명퇴’를 앞둔 제일은행 직원들의 ‘눈물의 비디오’(원제 내일을 준비하며)를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날의 재난은 국가경제 차원을 넘어, 우리 부부의 삶의 방식도 바꿔버렸다. IMF 구제금융은 우리 부부의 결혼 금반지마저 ‘시장’에 내다 팔게 만들었다. 백년가약의 금반지는, 그렇게 외화벌이를 위한 자원이 되었고, 사랑의 상징은 국가의 부채 속으로 사라졌다. '돈으'로 변신한 금반지는 3년 후 전능한 신이 되어 스스로 자기 복제자가 되어 '관계'를 규정하고 삶의 모든 ‘가치’를 재단하는 척도가 되었다.

IMF 구제금융 사태를 단순한 외환위기로만 볼 수 없다. 우리 사회를 전혀 다른 세상으로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들만 더 부유해지는 세상, 해고가 쉬워지고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실업이 일상이 되는 세상”, 누군가에겐 “내 계급이, 내 신분이, 싹 다 바뀌게 되는 세상”, IMF가 만들어낸 풍경들이다.

IMF 체제가 들어서고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불행하거나 고통받거나 희망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비정규직 비율이 40%를 웃돌고, 베팅에 성공하지 못한 자영업자들의 몫은 고스란히 가진자들의 부로 탈바꿈되고 그럼으로써 부의 분배는 점점 왜곡된다. 10%가 90%의 부를 차지하는 사회는, 너무 불평등하다.

사회는 시장만능주의가 판치는 약육강식의 정글로 변했고, 개인은 각자도생의 길만 찾을 뿐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 경제가 ‘사회’의 통제권을 빼앗았고, 극단적 개인주의가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앞사람만 보고 달리며 옆사람을 보지 않으려 한다. 계산 능력은 날카로워졌지만 말은 거칠어지고 감성은 차갑게 변했다. ‘사람’은 소비자로 대상화되었다

IMF 체제는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사람중심의 가치관을 붕괴시켜 결국 공동체를 해체했다.

그렇다면 21년 전 그날은 과연 막을 수 없었고 불가피했을까? 이 질문은,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보여준 그해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통해 ‘어쩌면’이라는 논쟁거리를 제공한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1997년 11월 5일 부터 IMF 협상안에 최종 서명한 1997년 12월 3일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1996년 12월 한국은 29번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우리나라도 본격적으로 세계화의 길로 접어들며 선진국이 되었다고 기뻐하였다. 언론들은 연일 아시아의 4 마리 용이라며 한국의 경제 전망을 장밋빛으로 물들여 놓았다. 1997년 1월 한보철강이 부도를 내어 연쇄부도의 위험이 있음에도 경제부총리는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은 튼튼하다며 큰소리치고 다녔다. 1997년 4월 기아차가 부도났음에도 여전히 그랬다. 환율이 올라가고 외환보유고가 자꾸 떨어질 때 언론들은 국민들의 호화 해외여행과 과소비만을 탓했다.

정치권은 한보와 기아차 사태의 원인(무분별한 차입 경영)이 된 허술한 금융감독 권한을 강화하기 위한 금융개혁법안도 내팽개친 채 그해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 올인하고 있었다. 사태 해결이 요원한 지경까지 왔다. 그렇다고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1997년도 이제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움직임은 한없이 더디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영화는 1997년 11월 5일, 미국 월스트리트 모건스탠리 본사 동아시아사업부가 한국 투자자들에게 한 통의 이메일을 보내는 장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모든 투자자는 한국을 떠나라. 지금 당장“. 같은 날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 (김혜수 분)은 외환위기 보고서를 작성하여 총장에게 보고하지만 책상 위에 놓인 채 며칠이 지나고 먼지가 쌓일 때쯤이면 위기의 내용이 업데이트된 수정 보고서가 다시 책상 위에 올려진다. 이것은 아마 외국투자자들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외환 위기의 징후를 읽어낸 최초의 보고서일 것이다. 그 후 10일이 지났다.

1997년 11월 15일, 종합주가지수 583.8, 원달러 환율 792원, 외환보유고 150억 달러에서 시한폭탄 단추는 눌러졌다. 이날 자신의 책상 위에 놓여진 외환위기 보고서를 읽던 한국은행 총장(권재효 분)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재정국 차관과 금융실장, 청와대 경제수석 등과 모여서 대책을 논의하지만 통화정책팀장 한시현은 “국가부도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이라며 시한을 못 박는다. 그 시간이 지나면 한국 기업들은 국가로부터 수출과 수입을 보증 받지 못하는 사태, 곧 국가부도(default)에 직면하게 된다. 실제로 1997년 11월 21일이 되면 종합주가지수 415.2, 원달러 환율 1103원, 외환보유고 35억 달러까지 급격하게 떨어진다.

대책팀이 꾸려지지만 사태는 계속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대책팀 중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은 이 위기를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재정국 차관(조우진 분)은 어떤 의도가 있는지 몰라도 “시장의 혼란만 초래할 뿐 절대로 국민들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러던 중 미도파 백화점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굵직굵직한 기업들이 하나씩 쓰러져 간다. 진로, 한라, 해태, 급기야 재계 4위 대우가 무너진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이제는 어떻게든 ‘돈’을 구해 와야 한다. 여기서 대책팀은 두 개로 나뉜다.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해야 한다는 팀, 재경부 차관이다. IMF로 가서는 안 된다는 팀,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이다.

재정국 차관은 이 기회에 대한민국의 경제를 아예 새판으로 다시 짜되 그것은 대자본 중심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본시장 완전 개방, 기업구조 조정, 적대적 인수합병(M&A), 노동시장 유연화가 필수적이라는 뼛속까지 미국식 신자유주의 신봉자다. 그 대척점에 있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은 동남아시아 나라들이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고 난 후 벌어진 자본의 약탈적 행위를 이미 알고 있는 터라 우리 나라에게도 똑같은 조건을 내걸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서민과 중소기업을 살리고 차라리 국가부도를 선언하는 일이 있더라도, 결코 경제주권을 IMF에 내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두 사람은 위기 속에 사사건건 대립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재정국’으로 묘사되지만 ‘재경부 남대문 출장소’라는 비아냥 소리를 듣던 한국은행 소속 통화정책팀이 이미 IMF로 가기로 마음먹은 재정국의 차관을 이길 순 없다. 재정국 차관은, 유럽은행으로부터 100억달러를 빌려 급한 불을 끈 다음 국가 자산을 담보로 해외에서 ABS 채권을 발행하면 지금의 외환위기는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의 주장을, “나라 빚이 1,000억 달러인데 100억 달러로 해결하시겠다고? 그럼 나머지는 어떻 하실 겁니까~? 이 무슨 감성적인 얘기”냐며 이죽대는 말투로 무시하고, 일본 또는 다른 선진국과의 통화스왑을 체결하여 지금의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려는 청와대 경제수석을 단칼에 갈아치우고는 IMF 총재를 비밀리에 입국시키고 힐튼호텔에서 굴욕적인 협상을 벌인다.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은 6가지다. 자본시장을 완전 개방하고, 외국 기업들의 국내기업 인수와 합병을 쉽게 하고(M&A), 기업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11개 종합금융회사를 정리하고, 현재의 12%대 금리를 30%로 올리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정리해고를 쉽게 함으로써 ‘자본축적’의 걸림돌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은 ‘이것은 대한민국 서민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을 다 죽이는 일이고 IMF 설립 목적에도 위배되며 어떤 특정 자본(미국 재무부)의 이익을 위한 것일 뿐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라며 협상을 거부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재정국 차관은 “야 한시현, 이런 시건방진, 니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바뀌지 않아, 저리가! 까불지 말고!” 라며 협상 진행을 서두려고 하자 한시현은 그를 향해 “너는 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니”라며 거세게 저항한다. 그 순간 협상장에 팩스 한 장이 송부된다. 대한민국 신용등급 B 마이너스 등급으로 강등!! 개인으로 치면 빚을 갚지 못하는 상태에 빠진 경우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개를 다시 몽둥이로 두들겨 패는 꼴이다. IMF 총재는 협상에 서명하기 전 우선 해결해야 할 조건을 하나 더 추가할 것을 한국 측 협상단 대표에게 제안한다. 한시현!

한시현 팀장은 협상팀에서 제외된다. 그럼에도 한시현은 마지막까지 IMF로 가는 것을 막아보고자 ‘국가부도 이후 한국경제 예측 보고서’를 만들어 IMF 이후 한국사회가 어떤 세상이 되는지 기자들을 모아놓고 설명회를 갖지만, 다음날 방송과 신문들은 그 내용을 하나도 보도하지 않았다. ‘보고서’가 예측한 IMF 이후 한국사회는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들만 더 부유해지는 세상, 해고가 쉬워지고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실업이 일상이 되는 세상”이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당시 ‘유일하고도 정확한’ 예측 보고서였던 것이다.

1997년 12월 3일 한국은 IMF로부터 55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결정한다. 이듬해부터 IMF가 구제금융 조건으로 내건 항목 하나하나를 이행하기 시작하자, 실업자는 130만 명에 육박하고 자살률은 전년대비 42% 증가했다는 자막이 나온다. 가슴이 먹먹하고 영화는 마치 고개 숙인 패배자의 모습처럼 쓸쓸하게 끝난다.

IMF 체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양극화, 비정규직, 정리해고(명예퇴직) 등으로 상징되는 1998년 이후 세상의 풍경은 형태만 다를 뿐 작동방식은 오히려 더 정교하게 입체적으로 움직이며 빛보다 빠르게 우리들을 어디론가 밀어내고 있다. 이런 세상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영화를 보며 한번쯤 되돌아보자. 그러나 영화를 봐야할 이유는 이것만이 아니다.

나는 영화를 보다가 위기에 스러지는 어느 중소기업 사장의 좌절과 고통, 그가 가족 앞에서 흘리는 눈물을 보며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고 자신의 회사가 생산하는 그릇들을 미도파 백화점에 어음을 담보로 납품하게 되었다며 마냥 좋아만 하는 중소기업 사장 한갑수(허준호 분)는 결국 미도파 백화점의 부도로 그 어음이 휴지조각이 되고 돈을 구할 길 없어 극한 선택을 하고자 자신의 아파트 난간에 서지만 아이들의 방문 여는 소리에 그만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고 흐느끼는 장면에서 당시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는 노래가 귀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 나도 모르게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IMF로 가는 길을 막지 못해 자책하던 한시현은 사표를 쓰고 집으로 가는 데 1층 로비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오빠를 만난다. 오빠는 다름 아닌 바로 그 중소기업 사장 한갑수다. 한국은행에 다녔고 그래서 은행의 높은 사람들을 많이 알 것 같은, 그러나 거대 금융자본에 저항하다 패배의 쓰라린 잔을 마신 동생 한시현에게 오빠 한갑수는 “한번만 살려달라”며 대출을 부탁한다. 어린 아이들을 놔두고 세상을 뜨는 일은 가장으로서 용서할 수 없는 일,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지막으로 여동생을 찾은 것이다. 한갑수는, 여동생이 대출 부탁을 위해 은행장에게 무릎까지 꿇며 빌었을지 모를 어느 은행으로 가서 대출을 받고 기사회생하였으나 우리 나라가 IMF으로부터 굴욕적인 조건으로 돈을 꾸었듯, 그도 그렇게 결국 ‘돈’ 앞에 고개 숙일 수밖에 없었다. IMF 이후의 세상은 지금까지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진짜 ‘돈’의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이제 그 돈은 스스로 복제하고 자기증식하면서 사회적 신분과 관계를 규율하며 인간의 생명조차도 지배하는 전능한 힘을 가진 신이 된다. 돈 앞에 고개 숙이게 만드는 물신숭배(Fetishism)의 세상이 바로 IMF 체제가 만들어놓은 사회다. 이리하여 성공의 잣대는 오로지 은행의 통장 잔고로만 증명되어야 하고, 적고 많음에 따라 서열이 매겨지고 다시 상위 서열로 올라가거나 그 자리를 지키거나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고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다. 약육강식의 정글, 이것이 정말 한시현이 예견한 세상이 아니었을까. (끝)

*2018년 12월 내가 가입한 밴드에 올린 글을 다시 이곳으로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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