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을 향한 여성의 소란스러움이 매력적인 이유

‘사실’과 ‘당위’의 문제가 있다. 데이비드 흄의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fallacy)를 말한다. 어떤 ‘사실’(is, 사실 명제)을 근거로 도덕적 ‘가치’(ought, 가치 명제)판단을 이끌어내는 논리적 오류다. 예를 들어, 출산과 그에 따른 젖먹이는 여성만이 갖는 생물학적 특징이다. 그러므로 양육도 ‘여성만이 해야 한다’는 식의 가치 판단을 이끌어내는 시도가 자연주의적 오류다. 부모는, 자식에 대해 똑같이 50%의 유전자를 투자하였으므로, 그 투자분의 복지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서로 협력하여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모두에게 유리함에도 인류 대부분의 역사는 그러지 않았다.

양육과 함께 전통적인 가사일은 여성의 역할이라는 이런 도덕적 오류는 20세기 후반까지 이어졌고, 일부 후진국과 몇몇 이슬람 국가에서는 지금도 그런 인식이 퍼져 있다. 물론 가사일은 여성의 솜씨가 남성보다 뛰어나고 여러 분야에서 남성과 여성의 성 격차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윤리적인 문제는 다르다.

그럼에도 인류 역사는 이러한 생물학적 차이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구분하였고, 남성은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하여 여성의 노동, 자유, 성을 통제하여 왔다. 이것은 성차별을 가져왔으며, 여성은 오랫동안 아무 권리도 없는 ‘굴종과 예속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귄위주의적 가부장제에 억눌려 자유를 상실한 채 뿌리깊은 불평등을 감내해야 했다. 과거 여성은 주부, 어머니, 성적 파트너로만 간주되었다.

참다못한 일부 여성, 그중 “인류 진보의 선구자” 메리 울스턴 크래프트가 1792년 『여성의 권리옹호』 라는 책을 내면서 저항이 시작되었다. 페미니즘의 서막이 울린 것이다.페미니즘은 여성 해방 이데올로기로서 성 차별 없는 남성과 여성의 평등권 운동을 말한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대개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적 설명1)과 충돌하기도 했다. 성을 나눈 이유가 진화과정에서 생존 전략으로서 나름의 효율적 기능이 있기 때문일 텐데, “초기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완전한 양성 평등을 주장하며,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거나 기피”하였다. 특히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인간 본성에 대한 괴벽스런 교의”에 몰두했다.

하지만 현대의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성차와 사회적 성역할을 구분하며, 과학과의 협력을 통해 여성 해방의 근거를 강화하고 있다. 이제 많은 여성은 인간 본성으로서 “여성성女性性이 발현되길 원한다.” 여성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인정받아 일을 하고, 여성 고유의 능력인 출산을 통해 아이를 갖고, 이타주의로서 관대함과 헌신의 도덕 감정으로 남녀 간 평화와 조화를 이루며, 삶의 가장 큰 선물인 사랑할 자유’라고 말할 수 있다. 남녀의 성 격차가 바로 여성성이다.

이러한 사랑과 모성이라는 여성성은 ‘약 2억 년 전 최초의 포유류에서 진화한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이제 여성은 그것이 자기 안에 내재된 밖으로 “표현”되어질 수밖에 없는 본성임을 발견하게 된다. 귀족부인의 “단정함이나 명료함보다 자유를 향한 ‘여성’의 탄식 섞인 소란스러움이 매력적”인 이유는 이 여성성의 발현 때문이다. 잠시, 여성은 ‘바느질을 멈추고 밖으로’ 나아가서 외친다. 사랑할 자유를. 동등하게 일할 자유를. 자신들에 대한 성적 편견을 버릴 것을. 어머니, 노동자, 정치가로.서 그때마다 다르게 불리워지기를. 동등한 양육과 자식 투자와 헌신에 대해서, 기타 가사노동에 대해서 화폐적 가치를 인정할 것을.

이리하여 여성의 권리와 권익은 신장되었다. 여성은 자신들에게 조건없는 모든 자유를 허락하지 않으면 ‘출산하지 않겠다고 협박’(?)하여 투표권을 얻었고, 성차별 금지법을 만들었다. 여성은 전 세계 노동력의 40%, 국회의원의 5분의 1을 차지한다. 우리 나라는 더 높다. 박근혜는 우리 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었다. “여성의 자유 때문에 인간의 조건이 무한히 풍부해졌다.” 진작 그렇게 했으면 세상은 정말로 살만했을 것을.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이다. 대한민국 사회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페미니즘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휴머니즘’의 하위개념이라는 웃지못할 무식을 드러내더니, 지금은 ‘우리 나라에 구조적 성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세계에서 가장 유이(遊移: 흐리멍텅)한 분석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세계 1위의 선진국 북유럽에서도 달성하지 못한 목표를 대한민국이 유일(唯一)하게 ‘성차별을 타파’해냈다는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그의 논거를, 어떤 통계가 그의 불합리한 인식을 해체할 수 있을까?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자매지인 <마니에르 드 부아르> 2022년 특별호, 『페미니즘, 미완의 투쟁』 을 요약 편집한 것이다.페미니즘에 관한 총 23편의 글로 엮어진 단문집이다. 성차별, 섹슈얼리티, 성매매, 페미니즘의 역사, 종교의 여성 혐오와 차별, 강간, 젠더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끝)

📌 주(註)

1) 과학적 방법이 인간의 본성을 발견하였다. 17세에 태동한 계몽주의 사상으로 사람들은 권위, 카리스마, 미신 등의 망상을 떨져버리고 세계를 이해하는 데 이성의 기준만 적용할 수 있었고, 과학은 그 이성을 정밀하게 작동시켰다. 과학은 많은 지식을 습득하게 하였고, 그 지식은 우리 안에 내재된 보편적 인간 본성의 존재를 발견하였다. 뇌의 물리적 메커니즘에 의거한 생각, 감정 (인지 신경과학), “우리 가슴에 주입되어 있는” 본능(진화 심리학), 우리를 묶어주는 도덕 감정, 우리를 가르는 이기심(사회 심리학)의 인간 본성을 발견한 것이다.(스티븐 핑커) 과학은 인간 행동의 대부분이 환경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생물학적 본성에 토대를 두고 있음을 밝혔다. 사랑, 모성, 질투, 욕망, 폭력, 등등

*2022년 4월 대학교 밴드에 올린 글을 다시 이곳으로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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