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는 두 분의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말합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던 시기였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늘 환한 웃음이, 달님같은 미소가 멈추질 않았습니다. 이웃끼리 서로 보듬어주는 사람사는 세상이었습니다. 경제정의가 실천되고 민주주의가 한츰 성숙해졌습니다. 그때 축구도 동시에 발전하였습니다.
선수들은 개인의 창발성이 존중되고, 잔디를 밟으면 소박한 자유를 느끼게 되는 그런 문화에 살았습니다. 악과 끈기, 전근대적 훈육과 체벌에서 벗어난 선수들은 상상력과 창조성을 발휘하며 스스로 기술을 키워나갔습니다. 그 결과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은 월드컵에서 2002년 4강, 2006년 1승1무 1패 아쉽게 16강 탈락, 2010년 원정 16강, 2012년 올림픽에서 동메달이라는 영광스런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 시기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뛰어난 선수들이 탄생하였습니다. 설기현, 안정환, 박지성, 이영표, 기성용, 이청용, 구자철, 지동원, 그리고 이근호 등. 그들은 메시와 호날두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았습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 축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였습니다. 10년의 민주주의가 10년의 한국 축구를 발전시켰습니다.
하지만 이후 정권이 바뀌고 여전히 정씨 일가와 고대 출신들이 지배하는 便한민국 축구협회는 과거 10년 간 쌓은 기술을 접목할 만한 제도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기술을 시스템화’하자는 연세대 출신 조광래 감독의 주장을 “뭔 개소리냐, 알아듣지 못하겠다.”라며 ‘고대 마피아’들에 의해 묵살되고 결국 조광래는 조용히 물러났습니다. 축구평론가 정윤수는 조광래를 보며 그는 ‘한국 사회의 이정표’라고 했습니다. ‘상상력은 자유가 있어야 발휘되고 축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필요하다’라고 조광래가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두 번의 민주 정권이 물러가고 진짜 자본의 대리인 이명박 정권이 ‘촛불’에 심하게 데이자 사람들의 자유가 탄압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독재의 향수가 그리워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다양성은 무시되고 획일화된 사고방식만 강박했습니다. 사물은 대상화되고, 사람은 타자화되어 영혼은 메말라 가기 시작했습니다. 의사결정은 전근대적 관습에 의존했습니다. 축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7080시대의 수준으로 회귀하였습니다. 뻥축구가 부활하고, 상대의 실수와 우연을 바라며, 승부에 연연하고, 정말 하류가 되어버렸습니다. K리그는 ‘전국대기업 축구선수권대회’이지 유럽이나 남미에서 보여주는 그런 종류의 리그가 아닙니다.
이번 아시안컵의 실패도 이명박근혜 정권 10년동안 사람들에게 강박했던 그 ‘진부한 방식’에 의존한 결과였습니다. 便한민국 축구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대회였습니다. 다시 민주정권이 들어섰지만 바뀐 것은 대통령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적폐 10년을 걷어내기에는 그 쌓인 쓰레기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便한민국 축구 선수들이 향하는 가치는 ‘잔디를 밟으면 느끼는 소박한 자유’가 아니고 ‘돈’을 향한 물질적 욕망, 그 욕망 속에 사회 곳곳은 악취가 뿜어져 나옵니다.
이제 便한민국 축구는 끝없이 추락할 것입니다. 태국 킹스컵, 말레시아 메르데카배에나 출전하는 그런 ‘똥류’급 수준으로 말입니다. 便한민국 축구는 그런 대회에나 가서 우승하는데 만족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便한민국의 축구는 추락한 것이 아닙니다. 나날이 변하는 세계 축구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 것 뿐입니다. 축구는 못하고 야구와 족구는 잘하는 쪽으로 말입니다.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고 화이부동(和而不同)하지 못하는 사회, 자유가 억압되어 창발성이 나타나지 않는 나라에서 축구는 못하는 쪽으로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놀느 토인비는 오랜 선조들로부터 전해진 이야기를 다시 우리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망해가는 문명들이 보이는 가장 일관된 특징은 표준화와 획일화 경향이다.” 그러면서 선수와 감독들에게는 아인쉬타인의 천재성과 차범근의 ‘5분의 기적’1)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구는 탄생 이래로 날씨가 단 하루도 똑 같은 적이 없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매일매일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스스로 진화해 왔습니다. 진화는 변화된 환경에 적응한 결과입니다.
마찬가지, 세계의 축구 환경도 나날이 변해 왔습니다. 기술은 발전하고 전술은 하루가 멀다하고 바뀌었습니다. 이 환경에 적응하는 선수와 개체군(집단)만이 선택되어 진화합니다. 나머지는 축구 못하는 선수와 개체군(집단)으로 살아갑니다. 아니면 족구 선수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영장류가 한쪽은 인류(homo)로 다른 한쪽은 원숭이로 분리되어 그렇게 살고 있듯이 말입니다. 그렇다고 인간과 축구선수는 고등동물, 원숭이와 족구 선수는 하등동물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과 그 적응능력에 따라 단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할 뿐, 그들도 하나의 살아있는 주체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결국 便한민국 축구는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便한민국은 ‘축구 못하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이 상태가 어느 정도 유지되면 便한민국에서 축구는 포기되고 ‘족구의 나라’로 변이(變移, variation)될 수 있습니다. 살피건데, 便한민국에서 단군 이래 단 한번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경제와 축구입니다. 경제는 한 번도 좋은 적이 없고, 변한 것이 있다면 족구였습니다.
그럼에도 <이방인>으로 유명한 알제리 출신 작가 알베르 카뮈가 “내가 지금 도덕과 윤리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은 전부 축구 덕택이다.”라고 말했듯이, 이탈리아의 맑시스트 지식인 안토니오 그람시가 축구를 “야외에서 행해지는 인간적 충실함의 완성본”이라고 했듯이, 便한민국에서 축구는 그 자체로 모든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족구는 그 다음입니다.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끝)
주1) 1976년 박스컵, 말레시아와의 경기 때 후반 6분을 남기고 1:4로 뒤진 상황에서 5분 동안 차범근 혼자 3골을 넣은 기적같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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