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50년 전 1764년 영국의 제임스 하그리브스(James Hargreaves)라는 사람이 천을 짜는 방적기를 발명하고 그뒤 1780년대 제임스 와트(James Watt)가 증기기관을 발명했다. 이 증기기관은 제임스 하그리브스의 방적기에 동력을 제공해주며 ‘기계’가 되어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인 대량생산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이른바 산업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동시에 그 시기를 전후하여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가 왕정을 버리고 민주정을 채택한 통치제도가 도입되면서 한때 중세를 지배했던 귀족이 몰락하고 그들을 대신할 새로운 계급이 출현한다. 사람들이 그토록 미워하면서도 동시에 그토록 되고 싶은 욕망의 인간 대표, 자본가다. 그들은 권력을 등에 업어 경작지와 목장을 비합법적으로 사유화하고 그 위에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얼마후 그들은 세상의 지배자로 등극한다.
산업혁명은 자본가들의 주도로 본격적인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자리잡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경제형태, 즉 ‘시장 경제’의 출현으로 이제 세상의 질서는 ‘판매하고자 하는 사람’과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간의 사회적 관계로 재편되고 그 작동방식에 따라 우리의 삶이 규정되며 존재가 결정되어지는 사회, 즉 자본주의 ‘체제’가 된다. 하지만 이 체제는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많은 부작용을 동반했다.
그중 하나가 개인의 부속품화다. 노동자는 자신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자본가에게 제공하고 자본가는 그 노동자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공장을 지어 돈을 벌지만 노동자는 다시 자본가에 고용되는, 자신의 기술과 아이디어가 자본에 ‘포섭’되어 어쩔수 없이 노동력을 팔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노동의 가치보다 자본의 가치가 중요시 되어 노동자들은 도구로 전락했다.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이 현상을 ‘소외’라고 했다. 자기가 만든 것에 의해서 오히려 자기가 지배를 받는 시대의 인간 소외다.
거대한 기계장치 안에서 내 역할만 수행하면 되는, 여성의 가슴만 보고도 뺀치로 돌리려고 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성욕마저도 거세된 당시 근대사회의 노동자들의 모습을 『모던 타임즈』 에서 찰리 채플린은 슬프게 보여줬다.
산업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이 거대한 ‘기계’안의 부속품이 되고 있고 심지어 그런 부속품이 되기를 원한다. 좀더 큰 ‘기계’에 좀더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부속품이 되기를 지금 젊은이들은 꿈꾸고 있다.
반대로 이런 거대한 흐름에 저항하는 세력도 있었다.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즉 반자본주의 사회를 건설하려고 시도한 것이 그중 하나다. 이 사회주의 물결은 한동안 전세계를 집어삼킬듯 대단한 기세를 보였다. 물신 숭배를 타파하여 불평등을 없애며, 시장의 경쟁보다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사는 공동체적 삶을 추구하며 인간의 본래적 삶을 지향한다는 ‘가치‘ 때문이다. 칼 마르크스는 그러한 사회를 『독일이데올로기』 에 그렸다. “모두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오늘은 이 일을, 내일은 저 일을, 즉 아침에는 사냥을 하고, 오후에는 낚시를 한다. 저녁에는 소를 몰며, 저녁을 먹은 후에는 비평도 해본다. 그러면서도 사냥꾼도 아니고, 어부도 아니고 목동도 아니고 비평가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주의적 사회는 등장하지 못했다. 자본가를 물리치고 권력을 차지한 주체세력들이 독재자로 등극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을 무시한 채 도구화하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획일화로 권력을 집중화하고 수직적 계층 구조의 사회를 만들어 대중의 비평을 허락하지 않으며 자유를 억압하였다. 결국 그들 대부분은 1990년대 들어 몰락하였다.
이와 다르게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또다른 혁명적 시도도 있었다. 다름아닌 히피hippie 운동이다.
히피는 196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 LA 등의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어 기성의 사회 통념, 제도, 가치관을 부정하고 인간성 회복, 자연으로의 귀의 등을 주장한 운동이다.
히피 정신의 핵심은 사람들 사이의 위계질서나 수직적 계층 구조를 부정하고, 동등하고 평등한 사회를 꿈꾸었으며, 돈과 권력의 집중화에 반기를 들고, 전쟁에 반대한다. 그들의 이상은 모든 사람들이 수평적인 관계를 맺는 사회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 함께 지내면서 자발적으로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살고 정말 중요한 것은 이 우주와의 일체감을 만끽하는 상태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은 존 레논의 노래 <이매진>에 나오는 가사 그대로였다.
하지만 당시 기성세대는 마리와나 LSD 같은 마악을 하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고 있는 군인들을 비난하면서 전쟁을 반대하는 이 젊은이들이 굉장히 불온한 세력으로 보였다. 그래서 히피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 누군가 중에는 히피 정신이 너무 훌륭한데 LSD 같은 마약이 아니라 테크놀로지를 통해서 그것을 구현할 수 있다고 믿은 일련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인간은 모두 평등하고, 국경이나 언어가 더 이상 서로에게 장벽이 되지 않아야 하며, 자발적 참여와 느슨한 규제만으로 공동체 안에서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 데 테크놀로지가 기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테크놀로지에 광분했고 히피 정신을 테크놀로지를 통해 구현하면 너무 멋있겠다고 꿈꾼 사람들이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보라! 거대한 공동체, ‘꼬뮨’이다. 그 안에는 많은 규칙이 없다. 각자의 삶과 경험과 지식을 거기에 쏟아내고 있다. 몇 안 되는 느슨한 룰만으로 수억 명의 거대한 세계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다. 언어는 장벽이 되지 않았고, ‘다중’들은 거기서 수많은 정보를 얻으며 세상을 이해했다.
인터넷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위키피디아도 히피 정신에 부합하는 서비스다. 위키피디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사이트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보다 140배 이상 많은 사람이 이용한다. 참여, 공유, 개방의 정신으로 개인의 권위보다 다수가 만들어낸 집단지성의 결과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공유하고 모든 것을 개방하게 되면 그것이 정보의 비대칭성을 깰 것이라는 이 사이트의 핵심은 히피 정신이다. 그래서 그 이전까지 비지니스 영역에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단어들이 그 영역으로 엄청나게 들어왔다. 수평, 공유, 개방, 놀이, 의식의 확장, 동지애 등인데 모두 히피 문화에서 옮겨온 공동체 언어다.
테크놀로지들은 설령 그들이 자본가가 아니라도 그래서 땅을 사고 건물을 짓고 기계를 도입하고 사람을 고용할 능력이 없더라도 자신이 상상한 좋은 기술과 아이디어로 세상을 변화시켰다.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이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최초의 데스크톱이 나온 지 50년이 지난 세상은 이제 수억 명의 지구인이 하나로 연결되었다. 수많은 테크놀로지들은 수평적인 기회를 그들과 공유하며 기존의 자본권력과 동등한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것이 예전 히피들이 꿈꿨던 세상이었다. 이들이 진정한 혁명가들이다.
그리고 지금 시작되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은 그런 히피들의 꿈을 실현하는 데 진정 기여할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실물세계를 사물인터넷을 통해 고스란히 데이터화해서 온라인 세계와 일치시킨 세상에서 벌어지는 산업변화를 말하는데 기술적 결과물들의 집합체로서 사회변동의 거대한 전환이라 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이 그 ‘혁명’을 선도할 것이다.
블록체인은 개인의 예금, 부동산, 주식, 귀금속 등 자산을 인터넷으로 서로 연결하여 개인(P)과 개인(P)이 서로 직거래(그래서 P2P 방식이 된다)를 할 수 있는 중앙통제(중개자) 없이 바로 거래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시스템이다. 암호화 화폐는 블록체인이 잘 운영되게 하는 혈액과 같은 것, 곧 온라인 세계의 유통수단이다. 블록체인은 화폐와 금융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놀라운 기술이다.
이제 사람들은 은행이 관여하지 않아도 송금할 수 있고, 암호화 화폐로 물건값을 결제하고 그것은 금이나 달러처럼 축적수단이 아니므로 가치 하락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다수의 계정으로 운영되므로 하나의 중앙서버에서 모든 데이터를 관리하는 현재의 시스템이 비해 해킹당할 위험이 없이 매우 안전하다. 모두 온라인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인력, 에너지, 비용이 발생하지 않으며 따라서 이를 통제하기 위한 중앙화된 자본과 권력이 필요하지 않다. 이로써 권력은 분산되고, 개인과 자본권력이 동등해지며 세상은 점점더 평등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화폐와 금융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국가가 통제해야지 개인에게 화폐와 금융에 관한 권한을 주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에게 화폐와 금융에 관한 권한을 주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가 아니라 지금처럼 국가가 모든 화폐와 금융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만약 금융감독원 같은 곳이 은행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충돌할 때 기업의 편에 서게 되면, 개인은 뭘 해야 되는가? 어떻게 저항할 수 있는가?
블록체인은 개인의 예금, 부동산, 주식, 귀금속 등 자산을 인터넷으로 서로 연결하여 개인(P)과 개인(P)이 서로 직거래(그래서 P2P 방식이 된다)를 할 수 있는 중앙통제(중개자) 없이 바로 거래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시스템이다. 암호화 화폐는 블록체인이 잘 운영되게 하는 혈액과 같은 것, 곧 온라인 세계의 유통수단이다. 블록체인은 화폐와 금융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놀라운 기술이다.
이제 사람들은 은행이 관여하지 않아도 송금할 수 있고, 암호화 화폐로 물건값을 결제하고 그것은 금이나 달러처럼 축적수단이 아니므로 가치 하락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다수의 계정으로 운영되므로 하나의 중앙서버에서 모든 데이터를 관리하는 현재의 시스템이 비해 해킹당할 위험이 없이 매우 안전하다. 모두 온라인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인력, 에너지, 비용이 발생하지 않으며 따라서 이를 통제하기 위한 중앙화된 자본과 권력이 필요하지 않다. 이로써 권력은 분산되고, 개인과 자본권력이 동등해지며 세상은 점점더 평등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화폐와 금융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국가가 통제해야지 개인에게 화폐와 금융에 관한 권한을 주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에게 화폐와 금융에 관한 권한을 주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가 아니라 지금처럼 국가가 모든 화폐와 금융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만약 금융감독원 같은 곳이 은행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충돌할 때 기업의 편에 서게 되면, 개인은 뭘 해야 되는가? 어떻게 저항할 수 있는가?
그래서 블록체인이 합법적으로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과 화폐마저도 자본권력과 개인들간 서로 권한을 분산해서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균형갖춘 사회가 개인들에게 좀더 나은 사회가 아닐까?라는 새로운 질문, 55년 전, 히피들이 기존의 위계질서를 부정하고, 돈과 권력의 집중화에 반기를 들고 사람들이 수평적인 관계를 맺는 평등한 사회를 꿈꿨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제4차 산업혁명에 의해 구현되는 세상, 즉 모든 사람들이 수평화되고, 권력이 분산되고, 개인이 자본권력과도 동등한 경쟁을 하며 싸울 수 있는 히피정신을 이어받은 테크놀로지들이 꿈꾸는 세상은 언제 올 것인가? 이게 혁명이면 내년에 올까? 그렇지 않다. 아마 수십 년이 더 걸릴 것이다.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단, 그게 더 나은 세상이라고 믿는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동참하면 혁명은 이루어진다. 1987년 6월, 그 뜨거운 뙤약볕 아래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결국 혁명을 완수한 것처럼 말이다.
혁명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오기를 바라는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으로 시작된다. 체 게바라가 말한 것처럼 사과는 그냥 떨어지지 않고 누군가가 흔들어서 원하는 사과를 떨어뜨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끝)
* 이 글은 정재승 교수의 책 『열두 발자국』 (어크로스, 2018) 291-320쪽과 영상을 참조하여 요약 편집하였으며 2023년 8월 내가 가입한 대학교 네이버 '밴드'에 올린 글을 다시 이곳으로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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