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6일 밤, 한국병원 로비에서
그날 밤 나는 한국병원 1층 로비에 혼자 앉아 있었다. 바쁘게 움직이지만 한없이 더디고, 북적거리지만 별볼 일 없는 하루의 분주함이 사라진 종합병원의 로비는 고요하고 적막했다. 이따금 응급실에서 새어나오는 불빛과 긴박한 움직임만이 고요를 깨뜨일 뿐이다.
나는 응급실 쪽을 바라봤다. 위급한 환자들이 실려 오는 곳이다. 밤이 되자 긴장감은 낮보다 두 배 이상 높아지고, 그 풍경은 마치 운명처럼 사나웠다.
그 순간, 전날 사고가 떠올랐다. 소름이 끼쳐왔다. 1.5톤 화물트럭이 중앙선을 가로질러 달리는 내 차를 덮쳤다. 화물트럭은 30도의 경사면을 내려오면서 시속 50km 속도로 내 차 왼쪽 앞부분을 들이박았다. 이어서 운전석 도어와 강하게 부딪치며 화물 트럭의 오른쪽 앞부분이 내 차 운전석까지 파고들어왔지만 에어백이 터지는 바람에 내 몸에 닿지 않았다. 나는 피할 도리가 없었다. 파도에 의해 모래성이 힘없이 무너지듯 거대한 물체가 나를 향해 돌진해 왔고, 내 차는 길 옆 고랑에 그대로 쳐박혔다.
이 무슨 운명일까? 그 차가 조금만 늦었거나 내 차가 조금만 빨랐어도 나는 저 응급실로 실려가 내 목숨은 어느 의사의 손에 맡겨져 지금쯤 어떻게 되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생각하니 무서웠다.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병실로 가려는 순간 어린 아이들의 다급한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응급실 쪽이었다.
세 명의 아이들이 울면서 응급실로 실려가는 엄마를 따라가고 있었다. 엄마가 위급한 것이었다. 엄마는 젊었으나 남편은 보이질 않았다. 할머니가 아이들을 데리고 있었다. 세 아이 중 한 아이는 할머니 등에 업혔고, 두 아이는 할머니 손을 잡고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도 서러운 것일까? 아이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울었다. 다급하고도 악착스런 울음이었다. 엄마 어디가? 가지마! 마치 모자의 슬픈 이별처럼 느껴졌다. 링거가 꽂힌 채 침상에 누워 응급실로 들어가던 엄마가 몸은 그대로인 채 고개만 들어 아이들을 보며 손을 뻗어 보지만 손길이 닿지 않았다. 엄마는 서럽게 우는 아이들을 달래고 자기 품에 안아 보려고 했을 것이다. ‘걱정마, 이제 곧 집 에 갈거야’ 하는 듯 아이들을 안심시켜려고 다시 손길을 뻗어보지만 아픈 엄마는 힘이 부치다.
배 속부터 자식을 품고 살아온 나날들이 엄마의 슬픔이다. 저 어린 자식들을 두고 어디 간단 말인가? 자식들과 영원히 이별해야할지 모르는 두려움, 그것이 그의 죽음보다 더 몸서리쳐지는 단말마의 고통이다. 그러나 엄마는 지금 생명이 위급하다. 고개를 든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두려움과 고통이 뒤섞인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엄마와 세 명의 아이들은 점점 멀어져갔다. 그때 응급실 문이 열리고, 곧 닫혔다. 엄마의 모습이 사라지자 세 아이들의 울음은 더 커졌다. 운다고 엄마가 돌아와 그 아이들을 안아 줄 순 없다. 이제 엄마의 목숨은 의사에 맡겨졌다.
아이들의 울음은 응급실 문이 닫히고 한참후에야 멈췄다.
나는 멍하니 응급실 쪽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 안경을 고쳐 쓰고 응급실 반대 쪽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로 돌아와 누웠다. 나는 그 엄마를 치료하는 의사를 향해 내 마음을 마음으로 전했다. ‘살려서 아이들 곁으로 돌려보내주십시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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